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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업사이클링의 과거와 미래

by 이계원

폐건물 폐공장이 업사이클링으로 달라지고 있다. 쓸모를 다한 장소들이 시민과 지역사회를 위한 문화예술공간, 휴식공간, 복합공간 등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역사를 보전하면서도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공간 업사이클링 사례와, 공간 업사이클링이 나아갈 방향, 도시재생사업 전략으로써 더욱 다변화될 공간 업사이클링의 미래까지 가늠해 본다.


다양한 국내외 공간 업사이클링 사례들을 통하여 공간 업사이클링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1. 공간 업사이클링 외국 사례


영국 런던 배터시발전소


2006년 경인가 아주 오래전에 영국 출장을 간 적이 있었다. 런던 템즈강가에 있는 배터시 화력발전소를 재개발하려고 한다고 어떻게 개발을 하면 좋을지 아이디어를 주면 좋겠다고 해서, 다른 회사 담당자들과 같이 여러 명이 갔었다. 먼저 현장을 보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큰 화력발전소를 보러 갔다. 템즈강가에 방치된 낡은 건물은 4개의 큰 굴뚝을 가지고 있었고, 오래된 폐건물처럼 보였다. 공장 굴뚝에 올라가면 조망이 다 보인다고 올라가 보라고 권해서, 낡은 화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100m가 넘는 고공에서 부실해 보이는 널빤지 같은 것을 건너서 공장 굴뚝에 도착했다. 고소공포증이 있어 많이 무서웠지만 출장 간 거라서 무섭다는 이야기는 차마 못하고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런던 템즈 강이 한눈에 보이고 조망이 매우 좋았다. IT기술을 활용해 첨단복합단지로 개발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해 주고, 20년 가까이 잊어버리고 있었다.


최근에 공간 업사이클링 사례를 찾다 보니 영국 런던의 배터시발전소가 성공사례로 나타났다. 배터시발전소는 과거 화력발전소로 사용되었다. 완공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벽돌식 건물이었으며 아르데코 양식의 내부공간과 장식으로 유명했다. 배터시 화력발전소는 1930년대 A동, 1950년대 B동으로 건설되어 영국 런던의 주요 전력 공급원이었으나 굴뚝에서 나오는 환경오염 등 시대에 맞지 않아 1980년대에 폐쇄되었다.


사진 출처 : 배터시 화력발전소(2012년), 위키백과


40년간 흉물로 방치되었던 발전소가 10년간의 도시 재생작업을 거쳐 대규모 상업, 주거, 레저, 사무공간 등 복합문화공간으로 2022년 9월 공개되었다. 공간 내부는 발전소가 처음 건설되었던 1930년대의 화려한 아르데코 양식을 반영한 터빈홀 A와 1950년대에 완공된 터빈홀 B로 나뉘어 있는데, 두 개의 터빈홀과 화력발전소라는 물리적 환경을 살리면서 현대적 디자인으로 업그레이드해 기존의 흔한 복합상업공간과 차별화된 공간을 보여준다.


사진 출처 : 배터시발전소 내부, 배터시발전소 홈페이지


배터시발전소는 단순 복합쇼핑몰이 아닌 지역개발의 허브가 되고 있다. 오래된 발전소 단독 개발이 아니라 지역전체를 개발해 주상복합 아파트, 사무실, 쇼핑몰, 레저시설 등이 들어와 배터시발전소를 중심으로 15분 거리 안에서 사람들이 일하고, 먹고, 놀고, 쇼핑하고, 쉴 수 있는 모든 기능들을 제공하고 있다.


사진 출처 : 배터시발전소 외관, 배터시발전소 홈페이지


2024년에 다시 가본 배터시발전소는 상전벽해라는 말이 그대로 들어 맞게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가 되듯이 낡은 발전소가 럭셔리한 주상복합단지로 변해 있었다. 20여 년 전 무서워하면서 올라갔던 낡은 탑은 전망탑이 되어 있었고, 무너져 가던 낡은 건물 내부는 호화롭게 바뀌어 있었다. 그래도 기존의 벽면을 일부 남겨 놓아 배터시발전소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한눈에 보이도록 해 놓았다. 과거의 전통을 일부 보존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새로운 시대 상황에 맞게 공간을 업사이클링하여 공간 활용성을 증대시켜 놓았다.


사진 : 배터시 발전소, 이계원, 2024년


2. 공간 업사이클링 국내 사례


서울 스타벅스 경동1960


최근 서울에 핫한 공간으로 스타벅스 경동1960점이 있다. 일반적인 스타벅스 건물 하면 생각나는 전형적인 모습에서 많이 벗어난 곳이다. 대부분의 스타벅스 카페는 도시 중심부 교통이 편한 곳의 최신건물 1층에 위치한 경우가 많은데, 스타벅스 경동1960점은 특이하게도 재래시장인 경동시장 3층에 있다. 들어가는 입구에 금성전파사라고 LG전자에서 하는 레트로풍 복합문화공간이 있어 스타벅스 경동1960점과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사진 : 경동시장과 스타벅스 경동1960점 입구, 이계원, 2024년


스타벅스 경동1960점 문을 열고 들어서면 생각지도 못한 낯선 넓은 계단식 공간이 펼쳐진다. 오래된 극장건물을 리모델링 한 실내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갑자기 토끼굴에 떨어져서 보게 되는 기묘한 풍경들 같다. 분명히 그 입구는 한약 냄새가 나는 오래된 재래시장 안이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선 세계는 진한 커피 향이 나는 묘하게 세련된 공간이다. 계단식 극장 건물이라는 기존 건물의 형태를 최대한 살려서 디자인적으로 새롭게 공간을 업그레이드시켰다. 넓은 공간이지만 계단의 단차를 이용하여 가족이나 지인들이 모여 오붓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테이블과 좌석을 배치하여 놓았다. 또 극장이라는 창이 없는 어두운 공간을 따스한 조명으로 업그레이드하고, 높은 층고를 살려 개방감을 극대화하였다.


사진 : 스타벅스 경동1960점 내부, 이계원, 2024년


스타벅스 경동1960점이 주는 시사점이 있다. 재래시장과 대기업 브랜드의 협업으로 흥미로운 상생모델을 추구하고 있다. 시장 상인들 간에 젠트리피케이션 같은 불협화음도 일부 있지만, 새로운 공간 업사이클링으로 젊은 세대들이 자주 가지 않던 재래시장으로 호기심을 가지고 유입하게 만들었다는 점이 더 중요한 시사점인 것 같다.


부산 모모스 커피


부산이 고향인 지인에게 부산의 도시재생 사례가 될 만한 곳을 물어보았다. 모모스 커피라는 곳을 알려 주었다. 2007년에 부산 온천장옆 4평짜리 작은 창고 가게에서 시작하였다고 하는데, 커피에 진심이어서 카페, 로스트리, 교육, 온라인 사업까지 다양하게 확장하고 있다. 부산 온천장 본점의 경우 작은 테이크아웃 가게로 시작했다고 하는데 입구와 안의 느낌이 많이 다른 것 같다. 안으로 들어오면 일본 애니메이션 첸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온천장의 느낌이 나는 것 같다.


사진 : 모모스커피 온천장 본점, 모모스커피 홈페이지


가장 부산스러운 풍광을 가진 영도 물양장에서도 모모스커피는 스페셜티 커피 문화를 알리고 있다. 바닷가라는 특성을 일반적인 카페의 경우는 넓은 해변이 보이는 그림 같은 풍광으로 자랑하겠지만, 모모스 커피는 특이하게도 낡은 배들이 정박되어 있는 소형선 부두의 독특한 풍광을 보여 주고 있다.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는 풍광인데도 커피 향기와 묘하게 어울리는 생동감 넘치는 항구 도시 부산이라는 도시 특성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사진 : 부산 모모스커피 영도점, 이계원, 2024년
사진 : 모모스 커피, 모모스커피 홈페이지


커피에 진심인 모모스 커피는 전 세계 최고 수준인 '올해의 로스터'로는 선정되었는데, 이는 커피도시 부산의 위상을 반영한 결과로도 보인다. 부산이 멋진 바다뿐만 아니라 커피와 그에 어울리는 공간으로 도시재생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으면 좋겠다.


3. 공간 업사이클링이 나아갈 방향


공간 역사성의 보전과 새로운 해석


사람이 공간을 추억하게 만드는 것은 꼭 물리적으로 눈에 보이는 건축물만은 아닐 수도 있다. 그 공간을 스쳐 지나가는 향기가 오래된 추억을 소환할지도 모른다. 스타벅스 경동1960점에 있으니까 그윽한 커피 향과 갓 구운 빵의 향기가 났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의 향기를 통해 유년을 떠올리는 것처럼, 누군가 은은한 커피 향 속에서 어린 시절 부모님과 손 잡고 왔던 쌉쌀한 인삼 향이 나는 재래시장의 추억을 떠 올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 스타벅스 경동 1960점 입구, 이계원, 2024년


스타벅스 경동1960점도 재래시장 안의 오래된 극장건물이었지만, 오히려 그 장점을 더 잘 살렸다. 극장의 계단과 어두컴컴한 공간을 프라이빗한 좌석배치와 조명을 업그레이드하여 공간을 업사이클링했다.


사진 : 스타벅스 경동1960점 내부, 스타벅스 홈페이지


새로운 기술과 디자인의 접목


모든 건물은 지어지는 시대의 디자인과 기술을 반영하고 있다. 스타벅스 경동1960점도 오래된 극장의 원형을 살려 리모델링하였지만, 극장 내부에는 레트로한 디자인에 첨단 기술들을 접목할 수 있도록 업사이클링하였다. 예를 들어 휴대폰을 이용해 사이렌오더로 주문하면 극장 벽면에 닉네임이 뜨는 식으로 젊은 세대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다.


사진 : 스타벅스 경동1960점 전광판, 이계원, 2024년


스타벅스 경동1960점 입구에 있는 LG전자의 금성전파사 새로고침센터는 첨단 가전제품들을 레트로한 디자인과 감성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보기에는 오래된 가전제품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최신기술 전시체험장이다.


사진 : 금성전파사, 이계원, 2024년


도시재생의 미래


국내외 사례를 통하여 공간 업사이클링이 나아갈 방향을 정리해 보았는데, 사실 공간 업사이클링 고려해야 할 핵심 요소가 있다. 공간 업사이클링은 어느 하나의 건물에 대한 업사이클링이 아니라 지역과 같이 발전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한동안 낙후된 지역의 도시재생이라고 오래된 건물 외관에 벽화를 그리는 것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낡은 벽면 외관이 그대로 보이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예쁘게 페인트 칠을 한다고 내부의 누수와 불편함을 숨길 수는 없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이 있지만, 맛있지 않은 음식은 외양이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한두 번 먹고 나면 더 이상 손이 가지 않게 된다. 도시재생도 결국 겉과 속이 다 같이 업그레이드되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


국내외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낙후된 건물은 주변을 슬럼가로 만들지만, 지역의 역사성을 살려 잘 개발하면 주변 상권을 살리면서 도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다. 도시재생사업의 확대와 함께 공간 업사이클링이 지역 차원으로 잘 발전해 나가면 좋겠다.


글 : 이계원(공유경제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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