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 사라 스튜어트, 데이비드 스몰 / 시공주니어>
그림책 <도서관>의 표지는 조금 독특합니다. ‘도서관’이라는 커다란 제목 아래에 한 여자가 걸어갑니다. 한 손으로는 책을 펼쳐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수십 권의 책을 쌓아 올린 수레를 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자의 얼굴이 책에 파묻혀 있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보통의 그림책 표지에서 주인공의 얼굴을 드러내는 것과 사뭇 다르지요. 대신 표지에서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은 바로 책입니다.
책으로 가득한 서가가 그려진 면지를 지나, 속표지에도 여자가 등장합니다. 이번에도 여자는 벤치에 앉아 책 읽기에 푹 빠져서 얼굴이 보이지 않습니다. 두 번째 속표지에서도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여자가 보이지만 역시나 책 읽기에 푹 빠져서 얼굴을 볼 수가 없습니다. 판권 페이지에 이르러서야 그녀에 대한 작은 정보를 알 수가 있습니다. 손바닥만 하게 그려진 도서관 색인카드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거든요. ‘사서이자 독자이자 친구인 진짜 메리 엘리자베스 브라운을 기념하기 위하여 To the memory of the real Mary Elizabeth Brown, librarian, reader, friend (1920-1991)’ 이제 우리는 이 이야기가 엘리자베스 브라운에 대한 이야기인 걸 알 수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브라운은 늘 책을 읽고 있습니다. 같은 시대를 사는 여자아이라면 어릴 때는 인형놀이를 하고, 사춘기가 되면 이성에 눈을 뜨고, 적당한 나이에 결혼을 하고, 장을 보러 다니고, 집안을 청소하는 일에 몰두했을 겁니다. 그런데 엘리자베스 브라운은 다릅니다. 늘 책을 끼고 삽니다. 인형 놀이에도, 데이트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엘리자베스 브라운은 책의 세계에 그야말로 푹 빠져 살았습니다. 걸어 다니며 책을 읽다가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시장에 가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청소기를 돌리다가 문설주를 들이받기도 하고요. 세월이 흘러 그녀는 나이가 듭니다. 집안은 그녀가 사랑하는 책들로 가득 찹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책을 모두 사회에 기증하기로 합니다. 이렇게 해서 ‘엘리자베스 브라운 도서관’이 탄생하게 된 거지요.
<도서관>은 사라 스튜어트가 쓰고, 남편 데이비드 스몰이 그린 그림책입니다. 둘은 <리디아의 정원> 등 여러 좋은 작품을 함께 작업했는데, 이 책에서도 글과 그림의 호흡이 찰떡처럼 잘 어우러집니다. 각 장면은 때로는 정교하고 때로는 거칠게 완성되어 있는데, 능숙한 붓놀림과 다채로운 구도가 인상적입니다. 무엇보다 생동감 넘치는 인물의 움직임 표현이 놀랍습니다. 주인공 곁을 늘 맴도는 곰돌이 인형과 고양이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빠뜨릴 수 없고요.
사라 스튜어트는 엘리자베스 브라운의 일대기를 쫓아가면서 그녀가 얼마나 책을 사랑했는지 에 얽힌 다양한 일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언뜻 이 책이 실존인물의 삶을 다룬 전기로 느껴지게끔 하는 장치입니다. 그러나 이 책이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창작물임을 우리는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브라운이 태어날 때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며, 신화에서처럼 황새가 물어다 주었다고 묘사한 장면이 특히 그렇습니다. 결국 우리는 작가가 판권에서 언급한 ‘메리 엘리자베스 브라운’이 실존인물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작가가 메리 엘리자베스 브라운(1862-1952)이라는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새롭게 창작한 것이 아닌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주인공 메리 엘리자베스 브라운과 출생연도가 다른 실존인물 메리 엘리자베스 브라운은 실제로 결혼도 하지 않고, 학업과 교육에만 전념하다가, 노년에 모교인 시드니 대학교에 연구재단을 만들어 사회 공헌을 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아마도 작가는 실존인물에게서 영감을 받아 이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책벌레 이야기를 썼고, 한 인물의 남다른 일생을 소개하기 위해 전기 형식을 빌려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는 이 그림책을 통해서 엘리자베스 브라운이라는 한 여성이 조금은 우스꽝스럽고 조금은 고집스럽게 책과 사랑에 빠진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습니다. 또한 사회적 통념을 뛰어넘는 엘리자베스 브라운의 삶이 스스로를 기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이웃에게 공헌하는 값진 결과를 불러왔다는 이야기에 감동을 받습니다.
자, 이제 책을 덮고 표지를 다시 살펴봅니다. 책에 가려진 사랑스러운 책벌레의 얼굴은 누구 얼굴일까요? 어쩌면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책을 사랑하는 여러분의 얼굴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 ‘To the memory of the real Mary Elizabeth Brown, librarian, reader, friend (1920-1991)’는 영문 원서에 있는 내용입니다. 한국판에서는 ‘메리 엘리자베스 브라운 위인전~’로 시작하는 서지 정보로 의역이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