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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함께 읽기-쓰기-살아가기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쓰기를 어떻게 바꿀까 >김성우 (2024, 유유)

by 엄마오리

시작은 알파고의 등장이었다. 2016년 세계 최정상급 바둑기사인 이세돌과 최첨단 AI간의 대결은 인공지능의 도래를 알린 역사적 사건이다. 전 세계적 주목을 받았던 대국은 알파고의 4승 1패로 막을 내렸다. 특정 분야에 뛰어난 기능을 가졌던 인공지능은 이후 2022년 12월 오픈AI의 챗GPT로 발전하면서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을 일으키고 있다. 몇 개의 프롬프트로 글과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인간이 해야 할 일을 대신 해 주는 ‘생성형 인공지능’의 등장은 인류 지성의 지형도를 흔드는 지각변동을 일으키며 그에 따른 담론도 다양하게 생산하고 있는 중이다. 인문교양서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쓰기를 어떻게 바꿀까> (김성우, 2024, 유유)는 새로운 읽기-쓰기를 위한 상상력을 제시하며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깊이 탐색한다.


“특정한 시대를 선언하는 일은 사회적 변화의 반영이면서 거대한 욕망의 분출입니다”(p.36) 저자는 ‘인공지능의 시대’가 다가왔다는 의미를 되짚고 ‘읽고 쓰는 인공지능이 등장한 지금, 나 자신의 읽기-쓰기를 어떻게 재발명할 것인가’(p.60)라는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책은 인간과 인공지능의 읽기-쓰기의 차이를 탐색하고, 프롬프트에 대한 환상, 인간과 기술의 관계, 새로운 리터러시의 생태계 등에 대한 다양하고 실천적인 담론을 제시한다.


인간의 일을 기계가 대신 해 주는 기술의 발전이 있을 때마다 직업의 소멸을 운운하며 걱정과 근심, 때로는 공포를 표명하는 이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는 19세기 러다이트 운동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그 역사가 깊다. AI가 일자리를 대체하며 경제적 불평등, 노동 소외, 지적 재산권의 침해 등을 초래한다는 주장은 네오-러다이트로 명명되며 세를 키우고 있기도 하다. 김성우는 이러한 주장들에 대해 “어떠한 기술도 홀로 작동하지 않으며, 기술 또한 사람과 자연·행성과 우주를 연결하는 거대한 그물망을 이루며 진화한다는 사실”(p.41)을 들며 인공지능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화두를 던지고 그를 위한 다양한 사실과 데이터들을 제공한다. 국내외에서 진행되고 있는 연구들과 그를 바탕으로 인공지능이 텍스트를 생성하는 과정을 상세히 기술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문과 독자라도 어렵지 않게 생성형 인공지능의 과업수행을 이해할 수 있다.


인공지능에 의해 바뀌게 될 리터러시의 생태계에 대한 저자의 의견도 흥미롭다. 저자는 읽기와 쓰기를 중심으로 생성형 인공지능이 추동하는 변화를 매개, 전도, 속도, 저자성과 윤리라는 측면에서 정리한다. 인공지능을 매개로 하는 읽기의 증가는 독자의 읽기 장벽을 낮춰줄 수 있지만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게 하는 정독은 대폭 줄어들 것이라고 말한다. 읽기에서 쓰기로 넘어갔던 전통적인 글쓰기 방식 또한 쓰기->읽기로 전도되고, 생산성에 가치를 두는 세태는 이해를 위한 숙고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인공지능을 저자로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서 표절에 대한 논란까지, 현재성을 담보한 책의 내용은 이미 인공지능을 사용해 읽고 쓰는 일을 하고 있는 독자들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프롬프트를 사용해 쓰기를 수행한 ‘인공지능 챗봇 글쓰기 실험’ 또한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프롬프트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직접 수행해 보여준 이 사례를 통해 프롬프트를 ‘엔지니어링’의 측면이 아닌, ‘비판적인 프롬프트 리터러시’로 정의해야 한다고 작가는 주장한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읽기-쓰기에 관한 이론서로서의 위치는 물론 실용서로서의 미덕도 놓치지 않는 지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의 삶에 뛰어든 인공지능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사람들과 그에 관련된 에피소드로 챕터를 시작하는 구성은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내용에 호기심과 질문을 유발하게 해 주며 독자의 관심을 자연스럽게 본문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책은 손이 가기 쉽지 않지만 쉽게 읽히기 때문에 부담스러움을 덜한다. AI를 경유한 읽기와 쓰기에 특화된 책이지만 인공지능 전반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데도 도움이 된다. 수업을 하는 듯 독자에게 직접 말 거는 듯한 문체와 다정함을 잃지 않는 저자의 시선은 인공지능에 대해 거리감을 가지고 있던 독자에게도 마음의 벽을 허물어 이해의 폭을 넓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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