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8. 민주주의란 대통령을 파면할 수 있는 권리이다

탄핵은 민주주의의 실패가 아니라 작동의 증거다.

by 나그네 한

사진 출처: https://biz.heraldcorp.com/article/10458399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헌법 위에 있을 수는 없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며, 대통령의 권한 역시 헌법이 허락한 범위 안에서만 행사될 수 있다. 헌법은 인간의 욕망을 통제하기 위해 존재한다. 누구도 그 위에 설 수 없다는 선언, 그것이 헌법의 출발점이자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하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주어진 헌법적 한계를 무시한 채, 스스로가 법의 위에 있는 존재처럼 행동했다. 그는 비상계엄이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고 주장했지만, 그 권한은 아무 때나 휘두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헌법과 계엄법은 분명히 말한다. 비상계엄은 전시, 사변, 혹은 그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 즉 적과의 교전이나 사회 질서의 극단적인 붕괴가 실제로 발생했을 때만 가능하다. 그것도 국무회의의 실질적인 심의와 국무위원들의 동의, 국회에의 즉각적인 통보라는 엄격한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권력의 칼은 아무렇게나 휘두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법은 그것을 최대한 제한하고, 신중하게 통제하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국무회의는 형식만 갖춘 채 실질적 심의 없이 지나갔고, 국회에는 알리지 않은 채 오히려 계엄군을 동원해 국회를 봉쇄했다. 유리창을 부수고 국회 건물에 진입한 군인들,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 국회 담장을 넘는 국회의원들. 이 모든 광경은 계엄이 아니라 내란이었다. 이는 단순한 절차 위반이 아니라, 헌법을 파괴하고 권력을 탈취한 중대한 범죄 행위다.


헌법재판소는 분명히 말했다.



“피청구인은 군경을 동원하여 국회 등 헌법기관의 권한을 훼손하고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함으로써 헌법수호의 책무를 저버리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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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은 평생 법을 다루며 살아온 사람이다. 검사의 권한으로 수많은 사람을 기소했고, 때로는 정의의 얼굴로, 때로는 권력의 입으로 법을 사용했다. 그런 그가 정말 계엄 선포가 불법임을 몰랐을까? 오히려 그는 법의 통제를 받으며 살아온 것이 아니라, 법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도구화해 온 사람에 가깝다. 법은 그에게 정의의 기준이 아니라, 정적을 누르고 자신의 위치를 강화하는 수단이었다.


더 놀라운 건 그를 지지하는 정당, 그리고 그 안의 수많은 법조인들이다. 이들 역시 계엄의 절차와 요건, 법적 한계를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말한다. ‘비상계엄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므로 탄핵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정말 몰라서 그런 말을 한 걸까? 그들이 정말로 무지했다면, 그들이 합격했다는 사법고시의 수준을 다시 검토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들 역시 알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침묵했고, 방조했고, 때론 옹호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법 위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헌법은 그 어떤 권력도 마음대로 휘두르지 못하게 한다.



“대통령의 권한은 어디까지나 헌법에 의하여 부여받은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자연스레 1980년 5월, 또 다른 계엄의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 피살 이후 혼란의 정국에서, 전두환과 신군부는 군을 동원해 권력을 찬탈했다. 그들은 계엄령이라는 외피를 쓰고 민주공화국의 헌법을 유린했다. 국회는 해산되었고, 언론은 침묵을 강요당했으며, 시민들은 공포 속에 숨을 죽였다. 광주에서는 계엄군의 총칼 앞에 수많은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여름이 다가오던 5월, 한 도시의 울부짖음이 산 너머로 들리지 않았던 시대. 그건 단지 한 도시의 학살이 아니라, 민주주의 전체의 붕괴였고, 침묵을 강요당한 전국의 절망이었다.


그 시기의 사람들은 어땠을까. 라디오를 틀면서도 볼륨을 줄였고, 식탁에 둘러앉아도 정치 얘기를 하지 않았으며, 신문을 읽으며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수 없었다. 광주의 시신 위로 무거운 침묵이 덮였고, 서울의 거리엔 그 침묵이 공기처럼 흘렀다. 사람들은 말하지 않음으로써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 기억은 뿌리처럼 남아, 결국 1987년 6월, 수백만 시민의 발걸음으로 피어올랐다. 헌법을 찢어발긴 자들은 몰락했고, 시민은 광장의 주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2025년의 이 사건은 그때의 기억을 다시 불러왔다. 다시금 대통령이 국회를 봉쇄하고, 계엄령을 선포하며, 헌정을 유린하려 했다는 사실. 이것은 단순한 정치적 실패가 아니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목을 조르는 폭력이었다.



“피청구인의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행위에 해당합니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선거로 권력을 뽑는 것만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대통령조차 법 위에 설 수 없음을 명백히 하는 체제다. 국민은 대통령에게 권력을 위임하지만, 그 위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그가 헌법을 위반하고 국민의 신임을 저버린다면, 국민은 대통령을 파면할 수 있어야 한다. 탄핵은 민주주의의 실패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작동이다.



“그 자체로 헌법질서를 침해하고 민주공화정의 안정성에 심각한 위해를 끼쳤습니다.”



“피청구인은 국회의 권한 행사가 다수의 횡포라고 판단했더라도 헌법이 예정한 자구책을 통해 견제와 균형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였어야 합니다.”


사진 출처: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88008.html



대통령을 파면하는 것은 정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정치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며, 법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선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민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았다는 역사적 증거다.


민주주의란 대통령을 파면할 수 있는 권리이다.


이 권리는 피를 흘려 얻었고, 침묵 속에서 기억되었으며, 마침내 오늘 작동했다. 2025년 4월 4일의 이 선고는 단지 한 사람의 파면이 아니라, 다시금 "우리는 주권자다"라는 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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