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물고기는 어디로 갔을까

사자의 공원, 그 개천의 앙증맞은 피라미들

by 김광훈 Kai H

오랜 직장 생활 동안 ‘전설적인 고객’을 많이 만났다. 한 번은 휴대폰 신제품에 채용되는 부품을 승인받기 위한 감사가 예정돼 있어 회사에 비상이 걸렸다. 회사의 한 해 농사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물량이었기 때문이다. 몇 번 위기의 순간이 있었지만, 팀이 준비와 대응을 잘해 무사히 넘어갔고 합격 판정을 받을 수 있었다.



까다로운 고객이라도 일단 업무 시간이 끝나면 친구가 된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그의 고향이 레바논임을 알게 됐다. 지금은 국가 위상이 예전만 못하지만, 성경에도 여러 차례 등장할 정도로 오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이 나라는 페니키아 문명이 꽃피던 지역이다.



페니키아는 우수한 항해술과 해상무역으로 카르타고라는 식민지를 세워 500년이나 번성했고 한니발 장군은 알프스를 넘는 전격 작전으로 로마의 간담을 서늘케 하기도 했다. 이 고객과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와 중동의 파리라고 불리던 베이루트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도 난다. 미국 시민권자인 그가 교전 중이던 레바논을 방문했다가 잠시 억류됐던 에피소드도 들려줬다.



필자가 신입사원 시절에 만났던 J. 다얀이라는 AMD(美 반도체 기업) 디렉터가 그의 절친인데 안대 착용으로 유명했던 ‘7일 전쟁의 영웅’ 모셰 다얀 국방상의 조카란 것도 처음 알게 됐다.



나는 어느 편도 아니지만 이번 전쟁으로 민간인 특히 여성과 어린이들의 희생이 이어지는 게 안타깝다. 더 큰 문제는 역사적으로 워낙 오랫동안 얽히고설킨 관계라 누구도 해법을 제시할 수 없고 또 한편이 완전히 소멸되지 않는 한 끝날 수 없는 갈등이라는 데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도 총성만 들리지 않을 뿐, 남북은 물론 주변국과의 부단한 신경전이 진행되고 있다. 또 국내의 직역 간 갈등, 끊임없는 정쟁 등 뭐 하나 순조로운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 소상공인은 이보다 더 큰 사투를 벌이고 있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 입구에 3개의 커피 전문점이 영업 중이다. 바로 옆엔 편의점도 있다. 요즘은 편의점에서도 커피를 판매하고 있어 사실상 100미터 이내에 네 개의 가게가 있는 셈이다. 여러 브랜드 아파트가 밀집해 있어 장사가 될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커피 가게가 있던 자리에 치맥집이 저렴한 가격과 좋은 재료로 승부를 걸었지만 1년도 안돼 문을 닫고 말았다.



필자도 1인 기업 운영자지만 요즘 업종을 불문하고 장사하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대형 쇼핑몰에 입점한 상인들도 형편은 별반 다르지 않다. 매출에 따른 수수료 실적이 일정 수준에 이르지 못하면 퇴출된다는게 이들의 고민이다. 게다가 영업시간이 긴 업종 특성상 직원을 둘 수밖에 없는데 예전보다 인건비가 올라 어려움이 많다.



점심 식사 후 산책하는 공원의 실개천에 사는 물고기를 바라보며 이런 무거운 마음을 달래곤 한다. 우기에 제법 많았던 피라미들은 개천이 완전히 바닥을 드러내면 자취를 감춘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주인공이 센트럴 파크 호수에 있던 오리가 겨울에 어디로 가는지 의문을 가졌던 것처럼 나도 겨울이면 사라지는 피라미들의 행방이 궁금했다.



알고 보니 피라미는 작지만 비교적 환경 변화에 강한 생존력을 가지고 있어 물이 부족해지면 대사 속도를 줄이고, 좁은 공간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적응력을 키운다. 우리 소상공인들도 이들의 기운을 받아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길 바란다. 작은 생명도 큰 도전에 맞서 싸우듯, 우리 역시 역경 속에서 피어나야 한다. 그 희망을 놓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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