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거는 용기

by 김광훈 Kai H

후배가 이탈리아 여행 중에 식당에 들렀다. 대부분의 동양인이 그렇듯 밥이나 먹고 가려니 생각하고 웨이터들도 형식적으로 응대했다고 한다. 그녀가 용기를 내어 와인을 추천해달라고 하자 눈이 반짝 빛나며 말이 엄청나게 많아졌다(talkative). 이탈리아는 사실 와인의 원조라 할 수 있다. 좋은 와인도 프랑스 못지 않다. 다만 상업적으로 덜 알려져 낮게 평가되어 있다는 피해 의식과 경쟁 의식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렇다 보니 와인 얘기만 나오면 대화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 예전에 청담동에서 매주 와인 모임이 있었는데 그 때 마셨던 토스카나의 끼안티 클라시코, 피에몬테의 바롤로가 특히 기억이 난다.


낯선 타인에게 말을 거는 것도 때로 용기를 필요로 한다. 특히 연인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연령대에 함께 속해 있다면 쉽지 않다. 아무래도 사심을 가지고 접근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의도가 쉽게 노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회를 잘 포착하면 가능하다. 굿윌 헌팅처럼 하버드 여대생에게 지적으로 깊은 인상을 주거나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에서와 같이 열차 옆자리에서 심하게 다투는 중년 부부 사건과 같은 계기가 있으면 된다. 하지만, 서로 타인에 대한 호기심이 없으면 대화가 계속 이어지지는 않는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2년 동안 무명 영화 감독으로 좀처럼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해변을 산책하다가 말동무가 된 사람이 알고 보니 영화광인데다 손꼽히는 갑부였다. 스필버그의 영화에 대한 열정에 감동한 그는 제작비 일체를 부담하기로 했다. 세계적인 거장의 탄생도 이런 작은 용기에서 비롯된다.


유명 영화 배우였던 말론 브란도는 익명으로 타인에게 햄으로 말을 거는 걸 즐겨했다고 한다. 특히 말년에는 인터넷을 광적으로 좋아해 채팅 방에서 맹활약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무튼 말을 거는 용기가 없으면 이성 친구를 사귈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듯하다. ‘너 아직 여자 친구 없지?’라고 말할 때 You are still between girls, right?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참신하다. Girl대신 jobs을 넣으면 ‘구직 활동 중이지?’라는 뜻. 실업자라 하는 것보다 훨씬 배려가 깊은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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