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티 응우엔 킴, 『세상은 온통 과학이야』
마이 티 응우엔 킴. 이름만 보면 베트남계이지만 독일에서 수백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화학자다.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MIT에서 연구 활동도 했다는 이력은,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유튜브 채널과 이 책에 대한 신뢰감을 한껏 높여준다. 적어도 헛소리는 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주는 것이다. 물론 하버드대 박사학위와 신뢰 사이의 관계가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세상은 온통 과학이야“란 제목은 이 책의 내용을 말하는 게 아니다. 온통 과학인 세상을 전제로 하고, 그 과학을 이해하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혹은 과학의 방법을 이해함으로써 세상을 과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거나. 말하자면 책의 제목은 이 책의 전제, 또는 이 책을 통한 결론이다. 독일어 원제가 ”Die kleinstegemeinsame Wirklichkeit“인데, 이걸 찾아보니 파파고도 구글번역기도 ”가장 작은 공통 현실“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책 내용에 비추어 유추해보면 ”현실의 최소공통분모“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바로 그게 이 책에서 얘기하고 있는 과학이다.
이 책은 과학의 어떤 분야에 대한 내용을 전달하지 않는다. 대신 과학적으로 생각하고, 데이터를 읽고 비교하고, 판단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런 내용들이다.
알코올이 다른 마약보다 더 심각한 피해를 입힌다는 주장에 대해서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폭력 사태가 벌어지면 비디오 게임이 청소년들의 폭력성을 조장한다고 비난하는데, 실제 데이터는 청소년들의 폭력성과 비디오 게임의 소비가 정반대의 경향을 보인다. 어떻게 된 것인가? 심리학의 (일부) 연구 방법은 무엇이 잘못되었고,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배워야 하나?
남녀 간의 임금 차이는 실재하는가? 그건 얼마나 되나? 계산하는 방법은 과학적인가? 이 무한 논란의 고리는 어떻게 끊을 것인가?
거대 제약회사의 속셈은 무엇인가? 대체의학은 과연 믿을 만한 것인가? 믿고 안믿고를 떠나 대체의학이 허가받는 범위는 도대체 어디까지인가?
예방접종은 안전한가? 왜 우리는 예방접종을 믿어야 하나?
IQ는 유전되는가? 아니 이 물음은 잘못되었다. IQ는 유전성이 얼마나 있는가? 이게 정확한 질문이다. 왜 그런가? 뭐가 다르기에. 이게 정말 중요하다.
여자와 남자는 정말 다른가? 뇌의 차이를 설명하는 데이터를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또는 차이가 없다는 데이터는 또 무엇을 의미하나?
연구에서 동물실험 과연 필요한 것인가? 동물살해의 1%도 되지 않는 동물실험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동물실험이 없으면 과학의 발전은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가짜 뉴스는 어떤 것인가? 그걸 판별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가짜 뉴스와는 싸워야 하나, 무시해야 하나? 과학은 어떻게 판별할 것인가? 그러니까 과학이란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이 글들을 읽으며 아주 조금 과장되게 이야기하자면 ‘감동’했다. 그게 아니라면 내 마음이 자꾸 뛰는 것은 설명할 수가 없다. 과학이 왜 필요한지, 과학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과학적으로 용감하다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겸허하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배우고, 또 설명하기에 정말로 적절한 이야기들이다.
이 책은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고, 막 mRNA 백신이 개발되어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들이 예방접종을 시작하던 무렵에 쓰였다. 불과 몇 년 되지도 않았지만 까마득해 보이기도 한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과학에 대한 요구도 많았고, 의심도 많았던 시기였다. 그래서 더욱 이런 책이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시기를 거치고 난 후에는 더욱더 필요해진 책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