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청, 공포의 정치학

최경식, 《숙청의 역사: 세계사편》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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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청(肅淸)의 뜻을 찾아봤다.

‘권력자가 조직 내의 반대파나 불순분자를 제거하거나 처형하는 행위’로 정의되어 있다. 권력자가 권력의 유지와 조직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을 말한다.


이른바 ‘공포의 정치학’이라고 하는 숙청이 역사 속에서는 많이 벌어졌다. 권력이란 그 속성상 나누기 힘들고, 그렇기 때문에 권력의 장악, 유지 등에는 거의 숙청이라는 과정이 본질적으로 포함될 수밖에 없는 지도 모르겠다.


최경식의 《숙청의 역사: 세계사편》은 세계사에서 커다란 전환의 계기가 된 숙청, 그 여파가 커다란, 혹은 엄청난 살육이 벌어진 숙청 10개를 다루고 있다. 프랑스대혁명 시기 로베스피에르의 쟈코벵당이 지롱드당 등을 솎아낸 공포 정치에서 시작해서 1989년 중국의 민주화를 요구한 시민들과 청년들의 요구를 탱크와 총으로 진압한 천안문 사태까지다.


이 가운데는 진짜 정의에 가까운 숙청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예를 들어 로베스피에르의 공포 정치라든가, 히틀러가 자신을 지지했지만 권력을 유지하는 데 걸림돌이 된 룀과 돌격대에 대해 숙청 작업을 한 ‘장검의 밤’, 스탈린이 트로츠키로부터 시작해서 부하린 등 정적들을 차례로 제거한 작업, 김일성이 6.25 중에, 그리고 그 이후에 박헌영을 비롯한 남로당 계열과 연안파, 소련파, 갑산파 등을 제거하면서 유일 체제를 만들어나간 것 등은 분명 권력 내부에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다른 세력을 폭력적으로 제거한 숙청이다.


그런데, 드골이 2차 세계대전이 독일 부역자들을 처벌한 것이나, 칠레에서 피노체트가 쿠데타를 일으켜 민주세력을 잡아가두고 처형한 일, 캄보디아에서 벌어진 폴 포트의 ‘킬링 필드’, 호메이니의 이란 이슬람 혁명 같은 것들은 권력 내부나 권력 주변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프랑스의 드골이 민족반역자를 처벌한 일은 숙청이라기보다는 ‘숙정(肅正)’에 가깝고, 피노체트의 경우는 어떻게 보든지 쿠데타다(그래서 이 책보다는 《정변의 역사》에 어울리는 내용이다) (아, 그리고 김일성의 숙청이 왜 세계사편에 들어가 있는지도 약간은 의문이다).


그래도 여기에 다룬 내용들은 의미가 있다. 역사가 무시무시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렇게 느낀다면 역사를 제대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각성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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