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라 터크먼의 『독선과 아집의 역사』

바바라 터크먼의 『독선과 아집의 역사』

by ENA

[1]

『8월의 포성』으로 제1차 세계대전 발발의 역사를 세세하게 기록한 바바라 터크먼이 조망하고 있는 역사의 몇 장면이다. 통치의 실패에 관한 역사다. 통치의 실패, 즉 실정(失政)의 원인을 폭정, 야심, 타락, 독선으로 정리하고 있는 그녀는, 그 중에서도 독선에 집중하고 있다. 많은 사건을 두루두루 다루고 있지는 않다. 단 네 사건만, 1권에서는 트로이 목마에 관한 이야기, 르네상스 시기의 교황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미국독립전쟁을 야기한 영국 지도부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트로이 목마에 관한 이야기는 사실 잘 와 닿지 않는다. 신화와 사실이 엉켜 있어서 그럴 수도 있고, 트로이의 몰락이 과연 독선인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르네상스 시기 여섯 교황에 관한 이야기는 타락에 관한 이야기로 읽힌다. 식스토 4세, 인노첸시오 8세, 알렉산드로 6세, 울리오 2세, 레오 10세, 클레멘스 7세. 대부분 이곳저곳에서 접했던 교황들인데, 이들을 한데 묶어 놓으니 당시 교황들, 사실은 교회의 타락상이 확연히 드러난다. 터크먼은 이러한 그들의 타락, 그리고 독선이 프로테스탄트의 분리로 이어졌다고 단언하고 있다.


1권에서 흥미 있는 부분은 단연 미국독립전쟁에 관한 이야기다. 이게 흥미 있는 이유는, 서술의 관점을 미국이 아니라 영국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서 독립 전쟁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관해서는 적지 않게 읽었다. 그런데 그렇다면 영국은 왜 그렇게 놔두었는가, 혹은 그렇게 만들었는가에 대해서는 별로 읽은 바가 없다. 터크먼은 바로 그 부분을 긁어주고 있다. 영국 지도층 모두가 아메리카에 대해 강압적인 조치를 찬성하지 않았지만, 대체로는 아메리카 식민지에 대한 독선적 생각이, 독립은 거의 꿈꾸지 않았던 식민지민들이 총을 들게 만들었다. 터크먼은 그것을 고의적이지 않았지만, ‘제도적인 독선’, ‘유능한 지도자가 없어 허역함’을 드러냈다고 쓰고 있다. 미국독립전쟁에 관해서 새로운 시각에서 보게 된 것은 이 책을 읽은 보람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2]

바바라 터크먼의 『독선과 아집의 역사』에서 핵심은 베트남 전쟁으로 하염없이 끌려들어간 미국 대통령 3인(과 지도부)의 독선과 아집이다. 두번째 파트가 오롯이 그것에만 집중하고 있고, 양 뿐만 아니라 파고드는 강도에 있어서도 제일 집요하다. 첫번째 파트에서 다루었던 르네상스 시기의 여섯 교황이나 미국독립전쟁을 불러일으킨 영국의 오만은 분명 독립적인 부분이지만, 어쩌면 이 부분에 대한 부연 설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바바라 터크먼의 권력에 대한 경고인 셈이다(물론 그녀의 경고는 미국의 권력 집단에 대한 것이었겠지만, 그게 이렇게 다른 언어로 번역되면 보편적인 것이 된다).


그녀가 언급하고 있는 세 사람의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이 존 F. 케네디, 린든 존슨, 리처드 닉슨이다. 실질적으로 베트남 전쟁에 본격적으로 발을 담그기 시작한 존 F. 케네디 대통령, 공중폭격과 지상군 파견으로 전쟁을 본격화한 린든 존슨 대통령, 그리고 발을 빼야 하는 상황에서도 끝내 발을 빼지 못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었다. 사실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신념과 같았던 베트남에서의 프랑스 철군을 그 이후의 대통령이 프랑스의 강력한 항의와 협박에 따라 무효화시켰던 것부터 시작한다면 아이젠하워나 트루먼 대통령까지 소환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에 대해서 언급은 하지만, 베트남 전쟁과 관련해서 독선과 아집에 사로잡혀 엄청난 인명 피해와 전비와 함께 남베트남의 공산화를 막지도 못한 책임은 이 세 대통령에게 돌려야 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 세 대통령이 베트남에 개입하고 전쟁에 돌입하고, 이끌어 나가게 된 요인은 서로 다를 수 있다. 아슬아슬하게 대통령에 당선되었던 존 F. 케네디는 우파로부터의 공격(아직 메카시의 유령이 어른거리던 시기였다)을 우려했고, 이미 결정된 사항에 대해서 아직은 돌려놓을 생각이 없었다. 베트남의 상황에 대해서 미국이 발을 빼야 하는 것은 인식하고 있었으나, 그 결정은 재선 이후로 미루었다. ‘위대한 미국’을 제창하고 저 먼 아시아 귀퉁이의 한 나라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는 평판은 얻기 싫었고, 또한 그게 재선에 걸림돌이 될 거라 믿었다. 그래서 미적거렸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린든 존슨은 철두철미한 정치적 인간이었다고 평가한다(데이비드 핼버스탬의 『최고의 인재들』에서도 똑 같은 평가였다). 케네디의 남은 임기를 이어받았을 때는 전임자의 정책을 바꾸지 않았고, 압도적인 표차이로 선거에서 승리하고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에는 업적(전쟁의 승리)에 집착했다. 그래서 상황을 바로 보지 못했고, 평가에 휘둘렸다. 그러고는 결국에는 늪에 빠져버렸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반전 기운이 민주당 내부에서도 드높아지면서 재선 도전마저 포기하고 만다.


그러고 나서 취임한 리처드 닉슨은 전임자가 보여준 명백한 교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독선에 사로잡혀 있었다. 북베트남과의 강화를 내세웠으면서도 그것을 실현할 수단은 군사적 위압이라고만 생각했고, 추진했다.


베트남이 그 전쟁에 걸었던 것은 미국이 걸었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것이었다. 쿠바 위기 때 미국이 걸었던 것이 소련이 걸었던 것에 비해 컸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결국은 그렇게 될 것을 미국은 보지 못했다. 그것을 지적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눈을 감고 귀를 닫았다. 그것은 끊임없는 과잉 반응과 미국의 위대함에 대한 환상, 아둔함, 반성적인 사고의 결여로 인한 지도자들의 독선과 아집이었다. 정치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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