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ineVet Aug 10. 2021

<루카>와 퀴어

소수자성을 중심으로 <루카> 되짚기

<루카> 스틸컷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0. <루카>는 명백하게 소수자의 이야기다. ‘바다괴물’이란 소수자성 외에도 “마을에 어울리지 않는다”라는 소리를 듣는 줄리아, 지체장애인으로 태어난 줄리아의 아빠까지 영화는 소수자들을 비추고 있다. 이번 글에서 다뤄보고 싶은 건 <루카> 속 이런 퀴어적 모먼트들이다.




1. 트위터를 둘러보다가 아직 보지도 못한 드라마 [마인]의 장면 캡처를 우연히 보게 됐다. 김정화 배우가 “내가 원한 건 세상의 인정 따위가 아닌, 네가 용기를 내주는 것”이라 말하는 장면이었다. 움직이는 영상도 아니고, 단순히 멈춰있는 사진을 지나치듯 본 것이지만 그 대사와 표정은 뇌리에 박혔다. 그리고 그 트윗을 보면서 떠올린건 <루카> 속 루카-알베르토의 대립 장면이었다.


루카와 알베르토는 학교에 가는 것에 대해 다투다가, 알베르토가 줄리아에게 바다괴물로서 정체성을 드러내게 된다. 그때 루카는 자신을 숨기며 알베르토를 향해 “바다괴물이다!”라고 외친다. 둘 다 ‘바다괴물’이란 소수자성을 공유하지만, 주류 사회에 편입하고 싶어하는 인물과 주류 사회에서 도망치고 싶어하는 인물로 대립한다. 그리고 주류 사회에 편입하고 싶어하던 루카는 결국, 자신의 소수자성을 숨기고 알베르토를 배척하게 된다.


이 장면이, 너무 비극적이고 마음 아팠다. 배척당하는 알베르토에게 악역들이 작살을 던지지만, 알베르토는 미동도 하지 않으며 다만 루카를 돌아보기만 한다. 자신의 편이 됐어야 할 아버지에게 이미 버림받은 적 있는, 알베르토에게 두려운 것은 세상의 혐오보다 소수자 간 연대의 좌절이다.




2. 영화에는 크게 두 번, 루카의 환상적인 상상 장면이 등장한다. “베스파는 자유”라 적힌 포스터를 보며 여행을 떠나는 상상과 줄리아에게 별에 관해 듣고 과학으로 확장되는 상상. 두 장면의 공통점은 루카가 소수자성을 감춘 ‘인간화’ 상태를 그리고 있단 점, 그리고 여행을 꿈꾼다는 점이다. 결국, 이 상상은 “억압으로부터의 탈출”이란 루카의 염원이 내재해 있다. 상상 장면들의 아름다움은 기저에 깔린 간절한 정서에서 비롯된다. 다만 두 장면의 의의와 성질은 묘하게 다르다. 전자가 알베르토의 꿈에 전이되어 꾸는 탈-사회, 탈-현실적인 공상에 가깝다면, 후자는 인간 사회를 겪으면서 주류 공동체 편입을 향해 발 딛고 싶어하는 욕망이 내재한 상상에 가깝다. 특히 과학을 접하면서 학문을 향한 탐구심이 발휘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후에 뚜렷한 상상이 나오지 않는 이유엔 작품 분위기의 흐름에 의한 것도 있겠지만, 루카가 성장하면서 상상이 현실에 가까워지는 과정 중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3. 두 번째 볼 때, 영화에서 스포츠 경기가 클라이맥스를 장식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스포츠 경기, 특히 경주 형태의 경기는 어떻게 보면 ‘공정성’의 상징이다. 동일 조건 아래에서 누가 먼저 도착했는지만 따지면 되기 때문이다. 근데, <루카> 속 경기는 사실 그렇게 공정하지 않다. 악역 에르콜은 나이가 더 많단 점에서 육체적으로도 우위에 있고, 자전거도 더 좋은 자전거를 이용하며, 사회적 지위를 활용해 부정을 저지르곤 한다. 결국 ‘별종들’인 루카와 알베르토, 줄리아가 에르콜을 상대로 쟁취한 승리는 차별과 불공정을 딛고 이겨낸 승리이다. 우리는 겉보기의, 허울뿐인 공정을 부르짖기보단 공정 속에 숨은 맥락을 볼 필요가 있다.




4. 영화의 결말이 너무 좋았다. 바다괴물 사냥에 앞장서던 줄리아의 아빠가 작살을 내려놓는 것도, 알베르토가 그 아빠와 함께 인간 사회에서 앞으로를 그려나가게 된 것도, 평범한 사람들 중에 이미 바다괴물이 있었다는 소소한 유쾌함(이면서 큰 함의)도, 둘의 헤어짐과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는 따뜻함도, 도망의 수단 베스파를 택하지 않고 사회로의 한 발짝인 학교를 택한 루카와 그를 지지하는 주변인들도, 둘의 이별 장면에서 비에 맞아 바다괴물로서 정체성이 드러나는 장면들도, 떠나는 기차에서 둘이 함께 시간을 보냈던 섬을 다시 한번 바라보는 시선도. 한 장면 한 장면이 너무나 소중하게 가슴안에 남았다. 따스함과 간절한 감정으로 그린 서사, 정말 소중했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울었다.



p.s.

줄리아네 고양이 너무 귀엽다. 오프닝 물고기들도 너무 귀엽다. 루카랑 애들도 너무 귀엽다. 너무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p.p.s.

프라이드의 달에 이 영화가 찾아왔다는게 참 절묘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캐릭터를 마무리하는 아름다운 방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