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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림 Mar 23. 2020

우리가 울 수 있는 공간






    출국장까지 배웅 나온 엄마를 마지막으로 바라볼 땐 최대한 밝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의 웃음에도 엄마의 눈에는 걱정이, 입에는 어정쩡한 미소가 아슬하게 달려 있을 뿐이었고, 엄마의 두 팔은 어색한 팔짱으로 꼭 묶여 있었다. 엄마, 나 잘 다녀올게. 나는 공항 직원에게 여권과 표를 내보이고 유리벽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에 휩쓸려 꼬불꼬불한 줄을 서고, 앞으로 앞으로 조금씩 밀려가면서도 눈은 계속 유리벽으로 향한다. 손가락 굵기보다 더 얇은 투명한 틈새 사이로 혹시라도 엄마가 보일까, 나는 눈을 못 뗀다. 그럴수록 야속하기만 한 유리벽, 투명하지만 너무도 얇은 틈새, 벽에 시선을 둘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마주치는 들뜬 여행자들의 표정에 속이 울렁거린다.


    나는 참지 못하고 울어버렸다. 그건 엄마를 홀로 두고 외국으로 떠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이제 혼자 해내야 하는 두려움, 그리고 어떤 이유에선지 모를 막연한 슬픔 때문이었다. 아, 어쩌면 석 달 전 돌아가신 아빠 생각에 울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빠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얼마나 많은 울음을 참았던가. 하지만 어쨌든 유리벽을 넘어온 이곳, 곧 이곳을 떠나버릴 사람들 틈은 울 수 있는 곳이었다. 울어도 괜찮은 곳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내리고, 또다시 비행기를 타고. 열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계속 울었다. 비행기 창문에 얼굴을 묻고 울다가 기내식을 주면 그걸 받아먹고 또 울었다. 옆에 앉은 인도 아저씨가 말없이 휴지를 건네주시면, 나는 그걸 붙잡고 또 조용히 울었다. 비행기에서 내리면, 라오스에 도착하만 한다면 절대로 울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





*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말 잘 듣는 착한 딸이 되기엔 너무 못됐었고,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아 오기엔 공부 말고도 하고 싶은 일 많았다. 게다가 점점 머리가 커면서 모든 결정을 스스로 하려 들었다. 라오스로 떠나는 일도 혼자 결정한 일이었다.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는 일, 그것도 남을 돕는다는 근사한 이유로 떠나는 일은 스물두 살이었던 나에게 설레는 일이었고, 나는 그 설렘으로 더욱 강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아빠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이후, 떠나는 일은 설레는 일만은 아니게 되었다. 그건 꼭 몰래 도망가는 일처럼 느껴졌다. 마음껏 울 수 있는 데로.


    아빠를 떠나보낸 우리 가족들은 모여서 울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누구도 먼저 이거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이었는데, 라든가 아빠가 보고 싶다, 라는 말을 꺼내놓지 않았다. 더 잘해 드리지 못했다는 한숨 섞인 후회의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건 남은 가족들이 서로를 생각하는 배려였다. 다가 강해지길 원했던 나는 다른 가족들보다 더욱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

    긴 시간 끝에 비엔티안, 그리고 당분간 머물러야 할 숙소에 도착했다. 그곳엔 말이 전혀 통하지는 않지만 참 착해 보이는 현지 친구들 넷이 살고 있었다. 우리는 가까스로 헬로, 하고 인사했고 서로의 이름을 익혔다. 나는 좀 씻고 싶다고, 씻을 수 있냐고 물었다. 샤워, 샤워. 배스, 배스, 하면서. 하지만 친구들의 표정은 난감하다는 표정이다. 나중에 보니 며칠 째 단수가 이어져서 물을 쓸 수 없다고 했다. 열두 시간의 비행, 너무 더운 날씨에 온 몸이 찐득이는데도 씻을 수 없다니.


    챙겨 온 물티슈로 대충 얼굴과 목을 닦고 어두컴컴 불빛 아래에 앉아 핸드폰을 켰다. 나는 엄마한테 국제전화를 걸었다. 어, 미림아. 잘 도착했어? 엄마 목소리가 반가우면서도 또 마음이 복받쳐 올랐다.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잘 도착했다고, 여기 친구들도 친절하고 좋다고 말씀드렸다. 그래도 엄마 목소리에는 걱정이 서렸다. 엄마 목소리를 계속 듣다간 비행기에서 했던 다짐을 어길 것 같아, 나는 서둘러 전화를 끝냈다. 엄마, 그런데 나 좀 힘들어.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요.





*

    라오스에서의 시간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온지도 몇 년이 지난 다음에야 그날 일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엄마는 뚝 뚝 잘 끊기는 딸과의 통화 후에 엉엉 울었다고 하셨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민망 정도로, 힘들다는 딸의 말에 아이처럼 엎어져 우셨댔다. 아마도 엄마 나처럼 속에 쌓아둔 것들을, 모든 슬을 토해내셨을 것이다.


    그렇게 엄마와 나는 그 불투명한 유리벽에 숨어 울었다. 강하지 못했던 우리는 그렇게 서로 몰래 울었던 것이다.





*

    금도 나는 못됐고, 대부분의 일을 혼자 결정하고, 속에 있는 얘기를 엄마한테 잘 꺼내놓지 못지만. 더 이상 함께 붙잡고 울어야 할 때를 미련하게 놓치고 싶지는 않다.


    같이 겪은 아픔은 같이 슬퍼하는 일로 회복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울 수 있는 공간은 깊고 어두운 혼자만의 공간이나 배려라는 이름 뒤에 감춰둔 검은 데가 아니라, 맞잡은 손과 함께 숙인 머리 사이의 공간, 같은 슬픔을 둔 공간, 부끄러움을 넘은 친밀한 공간이다.





ⓒBo Ki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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