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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필 Sep 11. 2024

글쓰기와 썸 타기 시작했다.

나에게 글쓰기는 늘 숙제 같았다.

지금은 추억이 되어버린 일이지만, 한 때 나는 글쓰기에 소질이 있는 아이였다.


'글 잘 썼어? 그럼 책도 많이 읽었겠네?'라고 물을 수도 있겠다.


이실직고 말하자면 어릴 적 나는, 책과 거의 연을 끊고 지냈었다. 늘 머릿속 어딘가에는 '책을 읽어야 해!'라는 부담감이 떠돌아다녔다. 대뇌에서는 '어서, 의자에 앉아 책을 읽어!'하고 명령했지만, 어린 나는 끝내 그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글짓기 대회나 독후감 경연에서 늘 상을 받곤 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저 '글쓰기에 소질이 있었나 보다.' 하는 결론을 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 당시 글쓰기는 늘 등 떠밀려 억지로 나가는 맞선자리 같았다. 글짓기 대회에 나가야 하니까, 방학 숙제니까, 선생님이 시키니까 하는 것일 뿐이었다. 당연하게도 재미가 없었다. 여전히 머릿속 한편엔 '책을 많이 읽어야 해.' 하는 기분 나쁜 의무감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었을 때,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짓기 대회도 아니고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도 아니다. 내가 쓰고 싶어서, 글로써 내 생각을 기록하고 싶어서 시작한 자발적 글쓰기다. 독서에 대한 의무감은 여전히 남아있다. 하지만 더 이상 강제 맞선이 아니다. 이제는 글쓰기와 진짜로 썸 타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어느 순간 기록하고 싶어졌다. 글쓰기에 대한 설렘이 생겼다. 책을 읽다가 감명 깊은 구절을 만나면 글로써 기록하고 싶어 졌다. 작은 노트 하나를 샀다. 오른손에는 볼펜을, 왼손에는 책을 들고, 새로 산 노트에 메모하며 읽기 시작했다. 이게 글쓰기와의 첫 데이트였다. 현재는 볼펜대신 세련된 키보드를 두드리며 데이트하고 있다.


아직 글쓰기가 마냥 친숙하지는 않다. 여전히 글보단 영상이 더 재밌고, 책 읽기보다는 온라인 게임이 더 짜릿하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오랜 시간 그야말로 책과 담쌓고 지내던 내가, 지금은 책 읽기 뿐만 아니라, 글쓰기와 썸까지 타고 있다. 이보다 긍정적인 변화가 과연 있을까? 이제는 더 이상 의무감에 얽매인 글쓰기는 없다. 자발적 글쓰기로 성장하는 나만 있을 뿐이다.


글쓰기와의 썸은 시작되었다. 우리의 데이트 버스는 이미 출발했고, 앞으로의 여정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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