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신다는 것

왜 우리는 술을 찾게 되는 걸까

by 권권우

잊고 싶은 일이 나를 괴롭히거나, 보고 싶은 사람이 생각나거나, 당장 해야 할 일이 나를 짓누를 때 술 생각이 난다. 같이 마셔줄 누군가를 찾고 싶은데 영 찾아지지가 않으면 그 생각은 더욱 간절해진다. 정 답이 안 나오면 집 근처 밤 10시까지 영업하는 카페를 가서 하이볼을 시킨다. 위스키 샷을 추가해서. 주머니 사정만 허락한다면 한도 없이 계속 마시고 싶은 맛있는 하이볼을 마시니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항상 친절하게 미소 짓는 카페 사장님과 이런저런 대화도 나누고, 그 다음엔 샷 추가를 하지 않은 하이볼을 한 잔 더 마신다. 때론 친한 친구보다 개인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과 대화할 때 더 속내를 털어놓기가 편하기 때문에, 살살 술기운이 올라오고 있기 때문에 별 소리를 다 하다 보니 어느새 영업 시간은 끝나간다. 이 곳은 엄연히 술집이 아닌 하이볼을 파는 ‘카페‘이므로, 또 낮엔 멀쩡한 모습으로 다시 와야하므로 결코 취객으로 남을 수는 없다. 영업 시간이 끝나기 10분 전, 다음 날 영업을 준비해야 하는 사장님을 위해 자리를 비우고 집에 돌아온다. 술도 들이키고 소리도 내는 내 목구멍 덕분에 많이 기분이 나아졌다. 나도 그만 잠에 들어야지, 또 내일을 살아야 하지 않겠나.


하이볼 얘기만 잔뜩 늘어놨지만 요지는 주종이 아닌 음주 행위이다. 그리고 사실, 나의 음주는 결국 소주로 돌아온다. 한국인과 소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지 않나. 나는 소주가 맛있다고 느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지만 가장 자주 찾는 술은 단연코 소주이다. 왜? 결국은 또 그만한 게 없거든.


맛은 음식에서 찾으면 되고, 술은 취하게 해 주면 그만이다. 맥주는 맛있지만 취하기 전에 먼저 배가 불러 버리고, 위스키나 고량주는 소주보다 훨씬 맛있고 도수도 높기 때문에 취하기도 좋지만 너무 비싸다. 도수도 약하고 값도 비싼 와인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결국 술기운을 느끼기 위해서는 소주만 한 것이 없다.

어디 그뿐인가? 저 실험실 알코올 같은, 풍미 따위 안 느껴지는 그 기묘한 맛은 한식과 절묘하게 어울린다. 삼겹살, 회, 한식의 각종 얼큰한 국물요리들을 양주와 마실 수는 없지 않은가.(물론 마실 수 있지만 보통의 경우엔 좀 그렇다.) 특히 나 같은 진성 한식파라면. 아까도 말했듯이, 내가 찾는 술의 기능을 가장 확실하게 수행하는 녀석은 역시 소주밖에 없다는 것이다.


술은 취하게 해 주면 그만이다. (고급 양식, 일식 요리들을 양주 혹은 사케 등과 페어링하는 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음주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그건 그냥 미식 행위다.) 주량이 그렇게 세지도 않지만 또 약하다고 얘기하기도 어려운, 한 상위 40% 정도에 들 법한 주량을 가진 나에겐 취하기 위해서 소주만큼 적합한 주류가 없다. 그럼 왜 그렇게 취하고 싶은가? 취하면 기분이 좋으니까. 좋은 일이 있을 땐 더 기분 좋아지고 싶으니까 마시고, 슬픈 일이 있을 땐 기분이 나아지라고 마시고, 아무 일도 없을 때 심심하니까 마시고. 그냥 마시는 거다. 인생 뭐 있냐. 하루하루 그냥 버텨가며 사는 거지. 물론 건강도 생각해야겠지만 아무튼 완전히 금주하고 사는 건 불가능할 것 같다.


이런 나를 보면 주변인들은, 내가 술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말라고 타박을 한다. 근데 진짜로 나는 취한 걸 좋아하는 거지 술 마시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 두 가지는 분명 다르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나의 술, 소주는 진짜 맛이 없다. 단 한 번도 맛있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소주를 내 혀와 목구멍에 닿게끔 하는 방식으로 섭취하기보다 차라리 주사기에 담아서 혈관에 그대로 꽂고 싶다. 그럼 맛없는 맛은 안 느끼고 술기운만 느낄 수 있을 거잖아. 미친 사람 같은가? 아주 틀리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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