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는 모든 것이다(Barbie is everything)! 지난 19일에 개봉한 영화 <바비(Barbie)>의 포스터 문구는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바비의 세계에서 주류는 바비이고, 바비는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 이 간단명료한 프로모션은 프랑스, 이탈리아, 태국,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세계로 뻗어 나갔다. 단, 우리나라에서만 빼고.
<바비>의 배급사인 워너브라더스코리아가 12일에 게재한 포스터에서 ‘바비는 모든 것(Barbie is everything)’은 그저 ‘바비’로, ‘그는 그냥 켄(He’s just Ken)’은 ‘켄’으로 일축됐다. 포스터 문구가 직역되면 불편함을 느낄 누군가 때문에 한국에서 원작의 바비는 한순간에 주체성을 잃었다. 역설적으로 영화의 홍보 문구조차 그대로 번역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보수성은 바비가 모든 것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바비>의 메시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바비랜드에 살고 있는 바비(마고 로비)는 분홍색 드림하우스에서 토스트와 우유로 아침을 시작하고, 분홍색 스포츠카에 올라타 해변을 가로지르는 그야말로 핑크빛으로 물든 삶을 살고 있다. 바비 월드의 주인공은 수많은 바비들이다. 대통령 바비, 물리학자 바비, 판사 바비, 변호사 바비, 의사 바비, 인어 바비들이 바비 월드를 이끌어가는 실질적인 주체다. 그러나 켄(라이언 고슬링)은 그저 켄이다. 켄은 바비가 비치 발리볼을 즐길 때 한쪽 구석에서 바비를 응원하는 보조적인 존재다. 켄은 바비의 환심을 사기 위해 얼굴에 미소를 띄운 채 바비에게 인사를 건내고, 무리하게 서핑을 시도하기도 한다. 바비와 켄의 관계에서 주도권은 바비에게 있다. 서핑을 한 후 켄이 바비에게 건내는 대사(“정말 용감했지?”)나 바비의 허락을 구하는 대사(“오늘 너의 집에 가도 돼?”)에서 알 수 있다.
영원히 행복할 것만 같았던 바비 세계의 평화는 바비 세계가 현실 세계와 연결되며 균열이 생긴다. 하이힐 모양대로 까치발 모양이던 발이 평평하게 변하고, 다리에는 셀룰라이트가 생긴다. 전형적인 바비(typical barbie)의 모습을 유지하지 못할 것 같아 두려움을 느낀 바비는 괴짜 바비를 찾아가 인간 세계로 가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이때 괴짜 바비는 바비에게 인간 세계로 가려면 하이힐과 슬리퍼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하는데, 바비가 하이힐을 선택하려 하자 하이힐을 선택하면 현실 세계로 갈 수 없다고 말한다. 사회가 형성한 불필요한 여성성(=하이힐)을 뿌리쳐야만 현실 세계에 발을 내딛을 수 있음을 시사한 그레타 거윅 감독의 메시지다.
현실 세계는 바비가 머물렀던 바비랜드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역대 대통령부터 금융인, 국회의원 모두가 남성이다. 바비가 여성-남성의 우위가 전복된 현실에 이질감을 느끼는 한편, 켄은 가부장제에 금세 적응한다. 켄은 가부장제 아래에서는 바비랜드처럼 수동적 존재가 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현실 세계에서는 여성 의사를 보고도 여기 의사가 어디 있느냐며 성차별적인 행태를 일삼는다.
바비가 현실을 직시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바비를 만든 장난감 회사 마텔(Mattel)의 실체를 목격하고 나서다. 바비가 이상적인 여성을 형상화한 장난감임에도 불구하고, 마텔 경영진은 모두 남성이다. 마텔 경영진은 바비의 상품성에 주목할 뿐이지 자신들이 만든 인위적인 여성성이 현실의 여자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다. 상품화된 바비는 남성들이 보기 좋다고 생각하는 미적 기준이다. 영화 초반부에 완벽해 보였던 바비랜드도 실은 남성이 바라는 여성상 혹은 여성들 사이에 자리 잡은 구시대적 환상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까치발 모양으로 고정된 발 모양이나 전형적인 바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사회가 정해놓은 하이힐이라는 틀에 발을 끼워 넣을 때, 여성들은 그것이 행복이라고 착각할 수 있으나 삐걱거리는 구두굽과 욱신거리는 발의 통증을 감수해야 한다. 바비가 마텔 본사에서 자력으로 탈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비랜드에서 현실세계로 넘어올 때 괴짜 바비가 준 슬리퍼 덕분이었다.
영화 <바비>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특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물론 나는 그레타 거윅 감독의 열광적인 팬이니 그의 작품인 것만으로도 영화를 감상할 충분할 이유가 되었지만, <바비>가 단순히 여성-남성 성별 미러링을 시도하는 진부한 블랙코미디가 될까 걱정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바비>를 풍성하게 만든 요소는 이전과 달리 변화한 현실이다. 워너브라더스라는 대형 영화제작사, 마고 로비, 라이언 고슬링과 같은 할리우드 배우가 주연 배우를 맡고, 두아리파, 빌리 아이리시 등 유명 가수가 ost에 참여하며 <바비>는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다. 북미 첫 주차 오프닝 성적도 1억 5500억 달러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이전에는 비주류의 목소리로 취급받았던 메시지가 이제는 보편적인 메인스트림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무엇보다 영화 <바비>의 성공이 ‘주체적인 여성’, ‘코르셋을 조이지 않아도 되는 여성’이 주류가 되는 사회가 머지않았음을 뜻하는 것 같아 기쁘다. 나도 대학 입학 후 ‘바비’가 되기를 자처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철없던 새내기 시절의 나는 꾸밈을 자유의 상징이라고 착각했었다. 꾸미지 않으면 대학생다움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매일 얼굴에 분칠하고, 아이라인을 그리고, 마스카라를 발랐다. 곧 1학기 시험기간이 되었다. 두 시간밖에 자지 못한 몽롱한 상태에서 나는 바로 몸을 누이지 못하고 화장을 지우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했다. 세면대에 고여있는 파운데이션이 뒤섞인 뿌연 물과 거울에 비친 벌게진 내 얼굴을 보는 순간, 내 스스로가 분장을 하고 다니는 광대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기심에 가입했던 연합동아리에서도 나는 우스꽝스러운 분칠을 그만두지 못했다. 남자애들은 맨 얼굴에 단정한 셔츠와 슬랙스를 걸치고 나왔지만, 화장을 하지 않고 나온 여자애들은 한 명도 없었다. 나도 덩달아 꾸밈노동에 동참했다. 시험 기간에 밤을 꼬박 샜을 때도 뻑뻑한 눈에 렌즈를 우겨넣고 다크서클을 감추려고 컨실러를 찍어 발랐다.
그렇게 꾸밈에 집착하던 어느 날, 미니스커트를 입고 동아리 모임을 가던 중이었다. 지하철 계단을 올라오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고개를 숙여 내 치마 속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그 날 밤, 난 그 청색 미니스커트를 버렸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명확히 깨달았다. 나는 내가 좋아해서 여성스러운 화장을 하고, 성적 대상화되는 옷을 입었다고 생각했지만. 나의 선호는 사회가 만든 인위적인 여성성일 뿐 내 자의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 나의 기호를 사회에 부합하도록 통제하면서 불행한 삶을 살 필요는 없다는 사실이다. ‘여성스러워야 한다’는 압박감을 벗어던진 삶은 훨씬 자유롭고 해방감이 느껴졌다. 불필요한 코르셋을 벗어던졌더니 아침에 발표자료를 볼 시간이 생겼고, 저녁에는 매일 화장을 했을 때보다 빠르게 씻고 휴식 시간을 길게 누릴 수 있었다. 3년이 흐른 현재에도 아직 고정된 여성성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사회가 정형화한 여성에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인식한 순간부터 내 삶은 조금 더 행복해졌다. <바비>에서 그레타 거윅 감독이 제4의 벽을 허물고 관객에게 계속 말을 걸었던 이유도 그만큼 감독이 영화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간절해서였지 않았을까. 영화 결말에서 바비들은 서로에게 세뇌당했다는 사실을 알려주어 본래 직위와 권위를 되찾는다. 나 또한 바비랜드가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살기로 결심하며 내 삶의 주도권을 되찾았기에 더 많은 여성들의 연대를 환영하는 바다. Babie is everything. 바비는 모든 것이고, 바비는 뭐든지 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