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성민 Aug 19. 2024

새로운 '관계'의 무게

넷플릭스 <더 인플루언서>


좋아하는 선배 연출 두 사람의 <더 인플루언서>는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공개 이후로 줄곧 넷플릭스 시청 순위 1위를 굳건히 지키면서, 모든 종류의 관심은 환금성을 갖는다는 프로그램 안의 논리를 프로그램 외적으로도 증명하고 있다.


사실 나 같은 대부분의 범부는 1회만 봐도 기가 쪽 빨리지만, 회차가 거듭될수록 결국 보편적인 화법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넓은 영향력을 증명한다는 사실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순간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나 역시도 다 보고 나서 '유명한 건 알았지만 관심은 없던(화장을 안 하니까)' 이사배의 유튜브 구독버튼을 누르게 되었다. 조만간 메이크업에 도전할지도. (아님)


내게는 딴 세상 같던 '인플루언서' 시장에 대한 의외의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유튜브 라이브, 아프리카 TV, 트위치(치지직) 등에서 먹방을 하고, 메이크업 방송을 하고, 게임 방송을 하고, 기타 규정할 수 없는 것들을 하는 수많은 '방송'들이 기존의 '콘텐츠'의 확장이라고 생각해 왔다. '방송'이란 이름부터가 그렇고, 다들 이 모든 것을 뭉뚱그려 '콘텐츠'로 묶으니까. 즉 기존의 영화, 드라마, 예능의 확장이라고.


그러면서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누군가가 엄청나게 많은 양의 음식을 먹는 모습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시청'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건 수많은 콘텐츠 제작자들에게는 때로 아득한 일인데,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수억 제작비를 들여 수십수백 명 스탭들과 몇날며칠 밤을 새 만든 작품보다, 유튜버 한 사람이 노트북 앞에서 카메라를 켜놓고 음식 먹는 두세 시간짜리 영상이 조회수가 수십 배씩 더 잘 나온다는 사실은 종종 말로 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끼게 하니까. 그 유튜버들도 저마다의 고민과 고충을 거쳐 그 자리에 올랐겠지만, 반대쪽의 이들이 느끼는 무력감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히 유튜브라는 같은 플랫폼 안에서는 그 격차가 더 실감 나는데, 창의력과 제작력이 돋보이는 '기획물' 장르의 채널이나 웰메이드 '웹드라마' 채널들은 '혼자 말하는' 채널의 조회수나 구독자수에 한참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머리로는 이해하는 지점들이 있었다. 드라마나 영화는 집중해서 봐야 하는 반면, 그냥 편하게 켜놓고 가볍게 시청할 수 있는 '화이트 노이즈'나 '밥 친구' 같은 콘텐츠를 필요로 하는 맥락이 있다고. '콘텐츠'로 이해한 지점은 그냥 그 정도였다.


그런데 <더 인플루언서>를 보고 있으니, 이건 '콘텐츠'의 확장이라기보다는 '관계'의 확장, 혹은 대체더라. 서사가 잘 갖춰진 완성된 이야기는 이 세계에서는 인기가 없다. 교류할 여지가 없으니까. 예능에서도 '시청자 참여'는 매력적이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성공하기 어려운 위험한 장치일 때가 많은데, 유튜브 라이브처럼 모든 시청자가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준비한 구성에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포함된다는 것은 결국 연출자 입장에서 품질을 보장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 애초에 꼼꼼히 짜인 '콘텐츠'를 선보이는 것이 목적이 아닌 '인플루언서'는 시청자들과 더 자유롭게 소통한다. 처음부터 갈 곳이 정해져 있지 않으니까. 여행지에서 길을 잃는 경험은 종종 매력적이지만, 출근길에 길을 잃으면 큰일이다.


<더 인플루언서>에서 결승까지 올라온 '인플루언서'들 역시 2시간을 완벽하게 채울 '볼거리'를 꼼꼼하게 준비해 왔다기보다는, 자신을 보러 온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놀 준비를 해 온 것에 가까웠다. 처음에는 '이거 스탠드업 코미디 아냐?'라고 생각했다가, 금방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스탠드업 코미디는 고도로 치밀하게 구성된 쇼다. 하지만 '인플루언서'의 무대는 관계다. '보여줄 것들' 사이에 빈자리가 많아야 더 자유롭게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다. 이들은 관객을 무대로 올리고, 질문을 받고, 과자와 술을 나눠 먹는다. 심지어 가장 완성도 높은 콘텐츠를 준비해 온 이사배의 무대도 일방적인 '쇼'가 아니라, 끊임없이 관객들과 소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 보였다. '밥 친구'는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밥 먹을 때 마주 앉는 '친구'였던 거다.


아마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었을 텐데, 나는 워낙 시간이 나면 혼자 뭘 읽고 보며 '혼자 노는' 게 디폴트인데다, 게임도 시대를 지배한 지 오래인 온라인 게임보다는 혼자 완성도를 즐기는 콘솔게임만 하는 사람이다 보니 이걸 깨닫는 데 오래 걸렸다. 뉴미디어에서 '쌍방향 소통'이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게 온전한 '관계'의 대체일 거라는 걸 상상을 못 한 거다.

이걸 오해하면 넷플릭스 <밴더스내치> 같은 변종 인터랙티브 콘텐츠로 불시착하게 된다. 나 자신이 연출자의 한 사람이었던 인터랙션 예능 <두니아> 이후, "사람들이 웰메이드 콘텐츠에서 상호작용까지 원하면 이걸 보는 게 아니라 게임을 하지. 훨씬 더 재밌는 게임이 많은데. 비디오는 그냥 편하게 누워서 보고 싶은 거다. 태도가 다르다. 콘텐츠의 영역을 오해하면 안 된다."라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그 상호작용의 대상이 '콘텐츠'라고 생각해서 생긴 한계였다. 그 대상이 '사람'이면 이건 관계의 형성이 된다. 게임이나 인터랙티브 무비와는 다른 영역이었던 거다.

미디어학에서 기존의 매스미디어 스타들, 연예인들에 대해 대중이 갖는 과장된 친밀감 (우연히 거리에서 연예인을 마주치면, 연예인은 처음 보는 입장인데도 가까운 사이인 것처럼 반갑게 아는 척을 하는 장면)을 '의사관계(pseudo relationship)'라고 지칭하곤 했는데 , '인플루언서'는 수시로 채팅을 통해 실제 대화를 주고받는 유명인이니 그 관계는 가짜도 아니다. 확장된 진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방송에 등장하는 '뽀구미'의 경우에도, 주변의 놀리기 좋은 어린 여성과 짓궂은 오빠들 사이에서 흔히 보이는 관계 양상이 그의 채널 안에서 그대로 재현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인플루언서'와의 관계는 '1대多'의 관계고, 한쪽의 의지 하에 고도로 통제된 면만을 통해 이루어지는 관계이며, 공개된 유명인과 익명의 다수의 관계라는 점에서 현실의 인간관계와는 당연히 다르다. 다만 그만큼 현실의 인간관계처럼 피곤하지도 않고, 관계에 드는 노력도 훨씬 적으며, 익명의 입장에서는 편리한 유익 만을 취할 수 있는 관계다. '귀찮음'이 모든 명분을 압도하고, 그중에서도 '타인에 대한 노력'은 끝을 모르고 홀대받는 시대에 이 얼마나 매력적인 대용품이란 말인가. 반대쪽에 노출되어 있는 '인플루언서'는 일방적으로 그 모든 위험성과 수고를 감당해야 하지만, 그 모든 것은 환전이 가능하기에 가치가 있다. 말 그대로 진짜 '친구비'인 것이다. 


이사배가 빛나는 지점도 거기에 있었다. 라이브 방송 미션에서 졸음을 참으며 '사배 언니'를 위해 유튜브창에 버티고 있던 구독자들과, 그런 '꼼화아가씨들'을 보며 미안한 마음에 눈물까지 보이던 그의 모습에서 새로운 시대 새롭게 확장된 이 '대체 관계'의 또 다른 무게감을 느꼈다.


그게 어떤 형태든 진짜 관계는 무겁다. 사람이 사람과 사이를 맺는다는 것은 무거운 일이다. 그 무게가 '인플루언서'의 관계 안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목격했던 것이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반짝이던 순간이었다. 우리는 새 시대에 이런 관계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