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데르트바서와 숲(2) 왜 훈데르트바서는 ‘비’에 집착했는가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에게 문제는 비가 아니라 도시였다. 그는 비를 사랑했지만, 도시가 비를 대하는 방식을 혐오했다. 비는 자연의 순환이지만, 현대 도시는 그 순환을 단절하는 장치로 설계되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의 도시 비판은 1958년 발표한 선언문 「Verschimmelungsmanifest gegen den Rationalismus in der Architektur(건축 합리주의에 반대하는 곰팡이 선언)」에서 이미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직선을 단순한 형태가 아니라 문명의 태도로 규정하며 이렇게 쓴다.
„Die gerade Linie ist gottlos und unmoralisch.“
(직선은 신성모독적이며 비도덕적이다.)
이 문장은 오랫동안 과장된 수사로 인용되어 왔지만, 훈데르트바서를 연구한 미술사·건축사 연구자들은 이를 문자 그대로의 도덕 명제로 보기보다, 전후 유럽의 합리주의 건축과 기능주의 도시계획에 대한 은유로 해석한다. 1950년대 오스트리아와 독일은 전쟁 이후 대량 주거 공급을 위해 국제주의 양식과 기능주의 건축을 적극 수용했고, 반복 가능한 직선과 표준화된 모듈은 효율과 복구의 상징이었다. 훈데르트바서는 바로 그 ‘효율의 미학’이 인간의 감각과 자연의 운동을 억압한다고 본 것이다.
건축사가들은 그의 직선 비판을 “형태의 문제를 통해 권력 구조를 비판하는 전략”으로 해석한다. 직선은 단지 기하학적 요소가 아니라, 중앙집중적 계획, 균질화된 주거 단지, 그리고 표준화된 인간상을 전제하는 근대적 통치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이 맥락에서 보면, 그의 선언은 반(反)근대적 낭만주의라기보다 근대 합리성의 정치성을 폭로하려는 퍼포먼스적 과장에 가깝다.
그러나 동시에 학계에서는 그의 비판이 지나치게 이분법적이라는 지적도 존재한다. 일부 건축 이론가들은 직선 자체가 억압의 상징이라는 주장은 역사적·기술적 맥락을 단순화한다고 본다. 근대 건축의 직선은 산업화와 대량 주거 문제에 대응한 사회적 해결책이기도 했으며, 위생과 채광, 구조 안정성이라는 실질적 성과를 낳았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직선은 권력의 도구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복지의 장치이기도 했다.
또 다른 비판은 그의 자연 개념이 본질주의적이라는 점이다. 자연을 곡선과 불규칙성으로 환원하는 순간, 자연 역시 하나의 미학적 표상으로 고정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자연에는 직선적 구조—결정 구조, 식물의 섬유 배열, 지질 단층—도 존재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훈데르트바서의 직선 비판은 과학적 진술이라기보다 상징적 선언에 가깝다.
그럼에도 그의 문제 제기가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그가 직선을 단지 형태가 아니라 물의 흐름과 시간의 감각을 차단하는 구조로 읽었기 때문이다. 비는 곡선을 따라 스며들고, 토양은 불균질한 표면에서 물을 붙잡는다. 반면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는 빗물을 직선적 배수 체계로 가속시킨다. 오늘날 도시 침수와 열섬, 불투수면 증가가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그의 직선 비판은 문자 그대로의 기하학을 넘어서 수문 순환을 차단하는 도시 설계 방식에 대한 선취적 비판으로 다시 읽힌다.
결국 그의 선언은 이렇게 재해석할 수 있다. 직선이 죄라는 말은 기하학의 문제가 아니라, 생태적 관계를 고려하지 않는 설계 태도에 대한 윤리적 경고였다. 그는 건축의 형태가 세계관을 드러낸다고 보았고, 그 세계관이 자연의 순환을 배제한다면 그것은 미학이 아니라 정치의 문제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의 급진성은 오늘날 다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직선을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직선이 무엇을 끊고 무엇을 연결하는지를 묻고 있는가. 훈데르트바서가 겨냥한 것은 선의 형태가 아니라, 선이 만들어내는 관계의 구조였다.
훈데르트바서는 1972년 2월 27일(뒤셀도르프) TV 프로그램 「Wünsch dir was」를 계기로 쓴 「Dein Fensterrecht – Deine Baumpflicht(너의 창문 권리 – 너의 나무 의무)」에서 ‘창문 권리’를 제안한다. 거주자는 자기 창문에서 팔이 닿는 만큼의 외벽을 스스로 꾸밀 권리가 있으며, 이를 금지하는 규정은 “무시되어야 한다”는 식으로까지 말한다. 이 선언은 단지 장식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획일적 파사드가 독점해온 ‘표면’의 권력을 개인과 식생에게 되돌려주려는 정치적 제안에 가깝다.
그가 같은 글에서 반복하는 핵심 문장은 더 직접적이다.
„Freie Natur muss überall dort wachsen, wo Schnee und Regen hinfallen … / Was waagrecht unter freiem Himmel ist, gehört der Natur.“
(자유로운 자연은 눈과 비가 떨어지는 어디에서나 자라야 한다… / 하늘 아래 수평인 것은 자연의 것이다.)
여기서 비는 상징이 아니라 기준이 된다. 하늘에 열려 있어 강수가 직접 닿는 모든 표면—지붕, 테라스, 가로의 수평면—은 사유재산의 ‘완성된 면’이 아니라, 자연이 다시 돌아올 권리가 있는 접면이라는 주장이다. 다시 말해, 그에게 지붕은 ‘건물의 끝’이 아니라 생태의 시작점이다.
이 생각이 실제 건축으로 구현된 대표 사례가 훈데르트바서 하우스(Hundertwasserhaus, 빈)이다. 이 주거 건물은 1983~1985년 사이에 건설되었고(기초석 1983년 8월 16일, 1986년 2월 17일 입주자에게 공식적으로 소개), 계획·실시설계 과정에서 건축가 요제프 크라비나(Josef Krawina)와 페터 펠리칸(Peter Pelikan)이 협업했다. 이 건물은 ‘유기적 곡선’으로만 유명한 게 아니다. 바닥이 일부러 고르지 않게 설계되고(그는 “고르지 않은 바닥은 발에 대한 신의 멜로디”라고 말한다), 지붕에는 흙과 잔디층이 올라가며, 발코니와 옥상 테라스에는 수목과 관목이 다수 배치된다. 단순한 조경이 아니라 비가 떨어졌을 때 스며들고 머무를 ‘두께’를 건축이 다시 확보하려는 실험이다.
이때 그가 붙인 이름이 ‘Baummieter(나무 세입자, tree tenants)’다. 이 말이 “나무가 임대료를 낸다”는 뜻으로 들리면 모호해지는데, 핵심은 관계를 뒤집는 명명이다. 보통 도시는 나무를 ‘시설물’처럼 심고 관리한다. 그러나 그는 나무를 건물 바깥 장식으로 취급하지 않고, 건물 안쪽의 창가·테라스·외벽 앞에 ‘거주 공간’을 배정받는 입주자로 상상했다. 그리고 그 나무가 “임대료를 낸다”고 말할 때의 ‘임대료’는 돈이 아니라 도시가 매일 무상으로 받아온 생태적 기능—그늘과 증산 냉각, 공기 정화, 빗물의 지연과 완충, 심리적 안정—을 가리킨다. 즉 인간이 나무에게 ‘자리를 내어주면’, 나무는 도시 전체에 혜택을 되돌려준다. 그가 “Tree tenants are the ambassadors of the free forests in the city(나무 세입자는 도시 속 자유로운 숲의 대사다)”라고 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이 문단의 결론은 단순히 “녹화가 멋지다”가 아니다. 훈데르트바서에게 비가 닿는 표면의 권리를 돌려주는 일은, 도시가 자연을 ‘밖으로’ 밀어내는 구조에서 자연과 함께 사는 구조로 태도를 바꾸는 일이다. 지붕이 흙을 갖는 순간, 비는 더 이상 재난을 만드는 속도가 아니라, 다시 순환으로 돌아갈 시간을 얻는다.
비가 닿는 표면이 자연의 권리 영역이라면, 다음 질문은 구체적이다. 그 표면을 누구의 ‘자리’로 만들 것인가. 훈데르트바서는 1980년대 초 여러 글과 인터뷰에서 “Tree Tenants are the Ambassadors of the Free Forests in the City(나무 세입자는 도시 속 자유로운 숲의 대사다)”라는 표현을 반복하며, 나무를 조경의 객체가 아니라 도시의 내부로 ‘입주’하는 존재로 재정의한다. 그는 그 맥락에서 이렇게 말한다.
„Nur wenn du den Baum liebst wie dich selbst, wirst du überleben.“
(너 자신처럼 나무를 사랑할 때에만 살아남을 것이다.)
도덕적 훈계처럼 들리지만, 여기서 사랑은 감상이 아니라 생존 조건을 인정하는 태도에 가깝다. 나무는 도시를 아름답게 “꾸며주는” 부속물이 아니라, 도시가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로 하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나무의 그늘은 표면의 온도를 낮추고, 증산은 열을 ‘빠져나가게’ 만들며, 잎과 가지는 공기 중 입자와 오염을 붙잡고, 뿌리와 토양은 물의 속도를 늦추어 강수의 폭력을 완충한다. 그가 ‘숲의 대사’라고 부른 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도시가 잃어버린 숲의 기능—기후 조절, 수분 조절, 미세한 생태적 연결—을 나무 한 그루가 도시 내부에서 대표해 수행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무 세입자(Baummieter)’라는 말은 “나무가 임대료를 낸다”는 낭만적 표현이 아니라, 관계를 뒤집는 정치적 언어다. 보통은 인간이 건물을 소유하고, 나무는 관리 대상이 된다. 하지만 훈데르트바서는 나무에게 주소를 부여한다. 테라스와 창가, 외벽과 옥상에 토양과 물길을 마련해 나무가 살아갈 권리를 건축 안으로 들이는 순간, 나무는 “장식”이 아니라 “입주자”가 된다. 그리고 도시가 그 입주자에게 공간을 제공하는 대가로 돌려받는 것이—그가 말한 ‘임대료’—바로 그늘, 냉각, 정화, 지연, 회복 같은 생태적 서비스다. 이 명명은 도시가 자연을 ‘외부’로 몰아내는 관성을 끊고, 자연을 도시의 내부 구성원으로 인정하라는 요구다.
이 논리는 앞서 논의된 ‘나무 세입자’ 개념과 직접 맞물린다. 나무를 입주자로 받아들이는 것은 결국 건축이 어떤 종류의 ‘피부’로 기능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훈데르트바서는 인간이 세계와 만나는 층위를 다섯 겹의 ‘피부’로 설명한다. 여기서 ‘피부’는 단순히 보호막이 아니라, 외부와 내부를 조절하고, 숨 쉬고, 교환하고, 감각을 매개하는 경계다. 이 다섯 겹의 피부 이론은 앞서 비판적으로 검토한 ‘직선 비판’을 보다 구조적으로 뒷받침한다. 직선이 억압적이라고 느껴지는 이유는 그것이 여러 피부 사이의 교환을 단절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이 이론은 분명히 보여준다.
가장 직접적인 생물학적 경계다. 숨과 땀, 감각, 체온 조절이 이 층에서 일어난다. 그는 건축을 논할 때도 이 감각을 출발점으로 놓는다. “사는 것”은 무엇보다 몸의 리듬을 유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옷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기후에 대한 응답이며,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적 위치를 드러내는 또 하나의 경계다. 추위를 막고, 햇빛을 가리고, 때로는 타인의 시선을 조절한다. 즉, 옷은 환경과 사회를 동시에 상대하는 피부다.
여기서 집은 ‘비를 막는 껍데기’가 아니라, 몸과 자연 사이의 교환을 설계하는 피부다. 집이 숨 쉬지 못하면 사람도 숨 쉬지 못한다는 게 그의 전제다. 그래서 그는 콘크리트와 유리로 매끈하게 봉인된 집을 ‘죽은 막’으로 본다. 빗물을 튕겨내고, 흙을 배제하고, 표면을 밀봉하는 건축은 이 피부를 생명 없는 장벽으로 만든다.
바로 이 세 번째 피부가 앞서 등장한 ‘나무 세입자’의 주무대다. 나무에게 주소를 부여하고, 지붕에 토양을 올리며, 바닥을 고르지 않게 만드는 모든 실험은 집이라는 피부가 더 이상 차단막이 아니라, 다섯 번째 피부인 지구와 다시 숨을 교환하기 위한 개구부를 확보하는 작업이다.
사회가 피부라는 말은 낯설지만, 그의 관점에서는 매우 정확하다. 사회는 개인을 둘러싼 관계의 기후다. 법과 규범, 관습, 직장과 공동체, 도시의 생활 방식—이 모든 것이 개인을 보호하기도 하고, 억압하기도 한다. 사회는 개인에게 ‘통풍’을 허락할 수도 있고, 공기를 막아 질식시킬 수도 있다. 그는 획일적 주거 단지, 동일한 창, 동일한 파사드가 개인의 감각뿐 아니라 사회적 삶의 다양성까지 억압한다고 보았고, ‘창문 권리’ 같은 급진적 제안은 바로 이 네 번째 피부의 획일성—“다르게 살 권리”를 박탈하는 구조—에 대한 반격이다.
마지막 피부는 더 이상 인간의 발명품이 아니다. 인간이 속해 있는 가장 큰 경계이자 조건이다. 물의 순환, 토양의 호흡, 숲의 완충, 계절의 이동. 그는 이 다섯 번째 피부를 ‘환경’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조건으로 본다. 그래서 집이 비를 밀어내고, 도시가 숲을 제거하고, 사회가 자연을 바깥으로 추방하는 순간, 다섯 겹의 피부는 서로 단절되고, 그 단절이 곧 위기로 돌아온다.
이 이론에서 핵심은 하나다. 집(세 번째 피부)은 자연과 분리된 실내가 아니라, 지구(다섯 번째 피부)와 사회(네 번째 피부)를 동시에 잇는 살아 있는 경계여야 한다. 나무 세입자는 그 경계를 다시 열기 위한 실천적 장치다. 나무가 들어오는 순간, 집은 지구와 다시 통풍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통풍은 개인의 감각만이 아니라 도시의 안전—폭우, 열, 오염, 건조—까지 바꾸는 문제로 이어진다.
훈데르트바서는 1980년대 환경 강연과 인터뷰에서 현대 위생 시스템을 반복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식수를 변기 세척에 사용하는 방식을 “문명적 광기”에 가깝다고 표현했고,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Die Verschwendung von Trinkwasser ist ein Verbrechen.“
(식수의 낭비는 범죄다.)
이 말은 도덕적 과장이 아니라, 순환의 단절에 대한 고발이다. 그가 보기에 현대 도시는 물을 정화해 식수로 만들고, 그것을 가장 빠른 방식으로 오염시켜 다시 배출하는 체계를 ‘진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체계의 핵심은 위생이 아니라 속도다. 물은 가능한 한 빨리 사라져야 하고, 오염은 가능한 한 빨리 눈앞에서 치워져야 한다. 하수관은 그 속도의 기술이다.
하수관은 도시의 지하에 묻혀 있다. 우리는 그것을 보지 않는다. 바로 그 점이 중요하다. 훈데르트바서가 비판한 것은 단순한 기술 장치가 아니라, 보이지 않게 만드는 구조였다. 배설물, 오염수, 쓰레기, 빗물—모든 것은 관 속으로 들어가 사라진다. 사라짐은 안도감을 준다. 그러나 그 사라짐은 실제 소멸이 아니라 이동일 뿐이다. 하수관은 물을 다른 곳으로 밀어내고, 도시의 기억에서 삭제한다.
그는 이 삭제를 ‘망각’의 구조로 이해했다. 숲에서는 물이 토양으로 스며들고, 미생물과 식물 뿌리를 거치며 천천히 변환된다. 물은 시간을 얻는다. 반면 하수관에서는 물이 곧장 흘러가고, 처리장을 거쳐 강이나 바다로 방류된다. 시간은 압축되고, 과정은 추상화된다. 우리는 물이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수도꼭지를 다시 튼다. 순환은 있지만, 체감은 없다. 보이지 않는 순환은 윤리적 감각을 약화시킨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반성적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이 비판은 19세기 이후 공중보건 혁명의 성과를 너무 쉽게 지워버리는 것은 아닌가. 중앙집중식 상하수도 시스템은 콜레라와 장티푸스 같은 전염병을 도시에서 몰아내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으며, 수명 연장과 도시 인구 집중을 가능하게 한 근대 문명의 핵심 인프라다. 훈데르트바서 자신도 이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그가 공격한 것은 하수관이라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하수관이 대표하는 ‘사라지게 만드는’ 사고방식이었다. 효율과 위생은 확보되었지만, 그 대가로 인간은 자신이 자연의 순환 안에 있다는 감각을 잃었다. 문제는 기술의 존재가 아니라, 기술이 순환을 ‘보이지 않게’ 만듦으로써 책임의 감각까지 위축시킨다는 점이다.
훈데르트바서가 물을 ‘heiliges Gut(성스러운 재화)’라고 부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성스러움은 초월적 의미가 아니라, 순환에 대한 자각이다. 물이 하늘에서 내려와 흙으로 스며들고, 식물로 들어가고, 다시 증발하는 과정을 의식할 때 인간은 자신을 그 일부로 이해한다. 그러나 하수관은 그 과정을 단축시켜 버린다. 물은 파이프 속에서 무명(無名)이 된다. 이름을 잃은 것은 책임도 잃는다.
그래서 하수관은 단순한 배수 설비가 아니라, 도시의 세계관을 드러내는 상징이 된다. 문제를 “처리”하고 “제거”하며 “밖으로 내보내는” 방식. 이는 물뿐 아니라 쓰레기, 빈곤, 소음, 심지어 사회적 갈등까지 동일한 방식으로 다루는 근대 도시의 기본 문법과 닿아 있다. 눈앞에서 사라지면 해결된 것으로 간주하는 사고. 그는 바로 이 사고를 거부했다.
그에게 숲은 다른 모델이었다. 숲은 배설을 숨기지 않는다. 낙엽은 쌓이고, 썩고, 냄새를 낸다. 그러나 그 과정은 사라짐이 아니라 전환이다. 하수관은 물을 ‘없애는’ 장치이지만, 숲은 물을 ‘기억하는’ 구조다. 숲에서는 빗물이 흘러가지 않고 머문다. 토양은 저장하지 않고 지연시키며, 그 지연 속에서 생명은 이어진다.
이 대비는 그의 도시 비판의 중심을 이룬다. 도시는 망각을 설계하고, 숲은 기억을 유지한다. 하수관은 속도를 극대화하고, 토양은 시간을 늘린다. 그는 기술을 완전히 거부한 것이 아니라, 기술이 순환을 지우는 방식으로 설계될 때 그것이 비윤리적이라고 보았다.
결국 그의 질문은 이것이었다. 우리는 문제를 보이지 않게 만드는 도시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과정을 드러내는 도시를 만들 것인가. 하수관은 효율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망각을 제도화한다. 그리고 망각은 위기를 늦출 뿐, 없애지 않는다.
훈데르트바서의 급진성은 “비를 사랑하자”가 아니다. 그가 겨냥한 것은 비가 아니라, 비를 견딜 줄 모르는 도시의 구조였다. 그래서 그는 강연과 글에서 반복적으로 이런 식의 문장을 변주한다.
„Regen ohne Wald ist zerstörerisch.“
(숲 없는 비는 파괴적이다.)
그에게 ‘숲’은 단지 나무가 많은 풍경이 아니다. 비를 붙잡고 늦추고 스며들게 하는 층위—수관, 낙엽층, 토양, 미생물—가 함께 작동하는 완충 시스템이다. 비는 원래 폭력이 아니라 순환의 일부이지만, 숲이 제거된 공간에서 비는 속도를 얻고 파괴로 변한다. 홍수는 자연재해라기보다, 불투수면과 배수 중심 설계가 만들어낸 결과라는 판단이 여기서 나온다. 그는 숲을 없앤 뒤 비를 탓하는 행위를 “자연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언어”로 보았고, 그것은 도시가 스스로의 설계를 반성하지 않기 위한 편리한 서사라고 보았다.
그렇다면 “숲을 제거한 뒤 비를 탓하는 일”은 지금 사라졌을까. 형태는 바뀌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날 도시는 “자연재해”라는 말을 덜 무비판적으로 쓰고, 불투수면, 저류시설, 우수관거 용량, 침투성 포장 같은 기술어를 동원해 원인을 분석한다. 정책 언어는 분명 정교해졌다. 하지만 실제 대응은 여전히 과거의 습관을 반복할 때가 많다. 폭우가 오면 우리는 ‘이상기후’와 ‘기록적 강수량’을 먼저 말하고, 그 다음에야 “왜 이 도시는 물을 붙잡을 흙을 잃었는가”를 묻는다. 더 중요한 차이는, 원인을 알게 된 뒤에도 해법이 종종 더 큰 배수, 더 빠른 배출, 더 깊은 관로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즉, 설명은 진화했지만 설계의 본능은 아직 ‘속도’ 쪽에 기울어 있다.
훈데르트바서의 메시지가 지금 더 의미를 갖는 이유는, 기후위기가 단지 비의 양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비의 형태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강수는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이 내리는 쪽으로 치우치고, 도시는 그 압축된 시간을 그대로 충격으로 받는다. 이런 시대에 “비를 감당할 구조”란 우수관거의 직경을 키우는 일만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숲’이라는 단어로, 물을 시간으로 바꾸는 장치를 가리켰다. 낙엽층과 토양이 만드는 지연, 식생이 만드는 분산, 뿌리가 만드는 스며듦. 그가 옥상녹화, 나무 세입자, 울퉁불퉁한 바닥을 이야기한 것도 결국 같은 이유였다. 물을 “빨리 없애는” 대신 “천천히 돌려보내는” 도시로 전환하라는 요구다.
오늘날 정책 용어로 번역하면, 이는 ‘저영향개발(LID)’, ‘스폰지 시티’, ‘자연기반해법(NbS)’ 같은 흐름과 닿아 있다. 빗물정원, 침투도랑, 투수성 포장, 분산형 저류시설은 모두 “비를 도시 안에 조금 더 머물게 하는” 기술이다. 하지만 훈데르트바서가 우리에게 남긴 차이는 기술 목록이 아니라 태도다. 그는 “자연을 활용하자”가 아니라 “자연의 권리를 회복하자”고 말했다. 비가 닿는 표면은 자연의 것이라는 선언은, 녹화를 ‘비용 대비 효과’로만 계산하려는 계산법을 넘어선다. 숲을 인프라로 부르는 순간, 우리는 숲을 유지할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그 책임은 단지 예산이나 유지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가 자연을 ‘바깥’으로 내쫓아온 역사와 결별하는 문제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비를 탓하는” 방식은 남아 있다. 다만 그 언어는 더 세련되어졌다. “기후가 변했으니 어쩔 수 없다”는 체념, “용량을 초과했다”는 기술적 진술, “천재지변”이라는 관용구. 훈데르트바서의 문장은 그 세련된 언어의 뒤편을 겨냥한다. 비를 문제로 만들지 말고, 비를 문제로 만드는 구조를 보라는 것. 그의 급진성은 여전히 여기서 작동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를 줄이는 도시’가 아니라, 숲의 시간을 되찾는 도시다. 비를 배출하는 도시가 아니라, 비가 스며들 권리를 회복하는 도시다.
제1부에서 비는 감각과 순환의 사건이었다면, 제2부에서 비는 설계와 책임의 문제로 이동한다. 훈데르트바서는 화가였지만, 그의 언어는 점점 도시의 규정과 예산, 표면의 소유권을 건드리는 제안으로 변했다. 지붕을 다시 흙으로 덮고, 나무에게 주소를 부여하고, 물이 곧장 사라지지 않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구조를 마련하자는 요구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 인프라의 재정의였다. 비를 ‘처리’할 대상이 아니라 ‘머물게’ 할 대상으로 바꾸는 순간, 설계의 우선순위도 바뀐다.
그는 자연을 보호의 대상으로 말하지 않았다. 보호는 언제나 보호하는 자와 보호받는 자를 구분한다. 대신 그는 자연의 법칙—스며듦, 지연, 분해, 재생—을 도시의 구조 안으로 다시 편입시키자고 말했다. 비는 그 법칙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시험지다. 비가 오면 도시의 태도는 숨길 수 없다. 어디는 물을 밀어내고, 어디는 붙잡는다. 어디는 속도를 키우고, 어디는 시간을 만든다.
그의 급진성은 형태에 있지 않다. 곡선의 파사드나 화려한 색채가 아니라, 표면을 둘러싼 권리의 재배치에 있다. 비가 닿는 곳을 다시 자연의 자리로 인정할 것인가. 하수관으로 밀어내는 대신 토양으로 돌려보낼 것인가. 나무를 비용으로 계산할 것인가, 동반자로 인정할 것인가.
그러나 바로 이 ‘권리의 재배치’는 현실에서 단순한 선언으로 끝나지 않는다. 지붕 위에 흙을 올리는 순간, 그 구조 하중은 건축법의 허용 범위를 넘을 수 있다. 외벽을 거주자가 임의로 꾸미는 ‘창문 권리’는 집합주택의 소유권 분쟁과 관리 규약에 정면으로 부딪힌다. ‘나무 세입자’에게 토양을 확보하는 일은 건축비와 유지관리비의 증가를 의미하며, 공공 부문에서 이러한 방식을 일반화하려면 기존의 예산 배분 체계와 공공 계약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훈데르트바서의 급진성이 ‘미학’에서 ‘제도’로 이동하는 지점에는 바로 이 복잡한 긴장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이 긴장을 의식적으로 외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규정을 ‘무시해야 한다’는 과감한 표현으로 그 충돌을 정면으로 끌어안았다. 그가 제안한 것은 제도 개혁의 로드맵이 아니라, 제도가 자연스럽게 당연시하는 전제—표면은 소유자의 것이며, 물은 배출되어야 하며, 나무는 시설물이다—를 뒤집어 보는 사고의 전환이었다. 그 전환 이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어떻게 현실의 법과 예산 속에서 이 권리를 구체화할 것인가’라는 두 번째 질문을 제대로 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질문은 단순하지만 피할 수 없다.
도시는 비를 적으로 상정하는가, 아니면 함께 살아야 할 조건으로 받아들이는가.
그 답은 추상적인 선언이 아니라 구체적인 장면에서 드러난다.
지붕 위에 흙이 있는가.
건물 안에 나무가 있는가.
비가 내렸을 때 물이 스며들 자리가 남아 있는가.
그리고 그 너머에, 우리는 하나 더 묻는다.
그 흙을 올리는 데 필요한 법적 절차와 예산 항목이 마련되어 있는가.
나무 세입자가 입주할 수 있도록 건축 조례와 관리 규약은 바뀌었는가.
비를 ‘처리’가 아닌 ‘머무름’으로 정의하는 공공 계약 모델이 존재하는가.
훈데르트바서의 진정한 유산은 곡선 건물이나 화려한 파사드가 아니라, 이렇게 미학을 제도와 충돌시키는 지점까지 사고를 밀고 가는 태도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아름다운 이미지가 아니라, ‘비가 닿는 표면의 권리’라는 이름의 불편한 질문이다. 그 질문을 제도 속에서 구체화하는 일은, 아직 우리의 몫으로 남아 있다.
비를 어떻게 대하는가의 문제는 결국, 우리가 어떤 도시를 상상하는가의 문제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프리드리히 슈토바서(Friedrich Stowasser)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유대계 혈통이었다. 그는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병합한 시대를 어린 시절에 통과했다. 가족은 생존을 위해 세례를 받고 외형적으로 동화된 정체성을 유지해야 했다. 전쟁과 전체주의, 획일화된 질서의 기억은 그가 평생 공격한 ‘직선’과 ‘균질성’의 배경이 된다. 직선은 단지 기하학이 아니라, 개인을 규격화하고 표면을 통제하는 체제의 상징이었다.
전후 그는 빈 미술아카데미에 잠시 수학했지만 곧 떠났고, 독자적인 화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50년대부터 나선형, 강렬한 색채, 층위가 겹겹이 쌓인 표면을 통해 자신만의 언어를 구축했다. 이때 그는 이름을 바꾼다. ‘Hundertwasser’—직역하면 ‘백 개의 물’. 슬라브어 계열 성씨 ‘Stowasser’를 독일어로 변환한 것이지만, 동시에 물의 순환과 다층성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선언한 행위였다. 1960년대에는 여권 이름을 ‘Friedensreich Hundertwasser Regentag Dunkelbunt’로까지 확장한다. ‘평화의 왕국’, ‘비 오는 날’, ‘어둡게 다채로운’이라는 단어를 이름에 덧붙이며, 자신의 미학과 세계관을 삶의 형식으로까지 밀어붙였다.
그는 단지 회화에 머물지 않았다. 1958년 「건축 합리주의에 반대하는 곰팡이 선언(Verschimmelungsmanifest gegen den Rationalismus in der Architektur)」에서 직선을 “비도덕적”이라고 규정하며, 건축을 근본적으로 재사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70년대에는 ‘창문 권리’와 ‘나무 의무’를 선언했고, 인간이 사는 집을 ‘세 번째 피부’로 규정하며 다섯 겹의 피부 이론을 제시했다. 인간은 피부–옷–집–사회–지구라는 다층적 경계 속에 존재하며, 건축은 그 중 하나일 뿐 아니라 다른 피부들과 호흡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1980년대 들어 그의 사유는 더욱 구체적 실천으로 이어졌다. 빈의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는 그 상징적 사례다. 지붕 위에 흙을 올리고, 건물 안에 나무를 들이고, 바닥을 고르지 않게 만들고, 식생이 파사드를 뚫고 나오게 했다. 그는 이를 ‘나무 세입자(Baummieter)’라고 불렀다. 나무는 장식이 아니라 입주자이며, 도시가 그들에게 공간을 제공하는 대신 그늘·냉각·정화·수분 지연이라는 생태적 기능을 돌려받는다고 보았다. 건축은 더 이상 자연을 차단하는 막이 아니라, 순환을 매개하는 장치가 되어야 한다는 실험이었다.
그는 환경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산성비 반대 캠페인에 포스터를 기부했고, 반핵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했으며,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관료적 도시계획을 비판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뉴질랜드에 토지를 구입해 자생림 복원 작업을 진행했다. 그는 이 땅을 ‘카우리누이(Kaurinui)’라고 불렀고, 외래종을 제거하고 토착 식생을 회복하는 작업을 직접 감독했다. 그의 관심은 단순한 조경이 아니라, 물과 토양과 식생의 순환을 되살리는 일이었다.
생애 말미 그는 “나는 나 자신이 휴머스가 되기를 기대한다(I am looking forward to become humus myself)”라고 썼다. 2000년 2월 19일, 뉴질랜드에서 유럽으로 향하던 배 위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고, 유언에 따라 뉴질랜드 노스랜드의 한 나무 아래 자연 분해 가능한 방식으로 묻혔다. 그의 죽음은 상징이 아니라 일관성이었다. 흙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은 수사적 은유가 아니라 삶의 마지막 선택이었다.
훈데르트바서는 직선과 균질성을 거부하고 나선형·강렬한 색채·불규칙한 형태를 통해 자연의 질서와 인간 감각의 회복을 시도한 예술가였다. 그러나 더 본질적으로는, 물과 흙과 숲의 순환을 도시의 구조 안으로 다시 편입시키려 했던 사상가였다. 그는 자연을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말하지 않았다. 인간이 이미 속해 있는 다섯 번째 피부, 곧 지구의 질서 안에서 건축과 제도를 다시 설계하자고 제안했다. 그의 작업은 미학을 넘어, 도시가 스스로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정치적 질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