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직장생활이나 기타 다른 돈벌이를 하다가 슬럼프에 빠질 때 가끔씩 떠올리는 생각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 생각에는(일반적으로 9급 공무원 시험을 기준으로) 공무원 시험의 준비과정이나 합격에 대한 가능성, 그리고 임용되고 나서의 공직생활에 대해 해 볼 만하다는, 혹은 만만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나 또한 이런 마음으로 공무원 수험생의 길로 접어들었었다. 다니던 직장에서 비전을 찾지 못했고, 그렇다고 경력을 살려 새 직장을 구하기도 애매한 상황에서 나이도, 경력도 전혀 보지 않고 필기시험성적만으로 당락을 결정하는 이 시장에 인생을 던졌었다.
사실 취업시장에서 공무원 시험만큼 공정한 경쟁은 없다고 생각한다. 국어, 영어, 한국사, 행정학, 행정법 다섯 과목에서 4지선다형의 문제를 풀어 더 많은 문제를 맞힌 사람이 채용되는, 어떤 변수나 외부 개입이 있을 수 없는 과정이다. 공부한 만큼 실력이 쌓이고 따라서 노력한 사람은 합격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고 그래서 사회의 쓴맛을 본 사람들이 하나둘씩 몰리기 시작한 곳, 이곳이 공무원 수험 세계이다.
이렇듯 늦었을지언정 공무원 시험을 볼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은 점점 늘어났고 무작정 이 세계에 뛰어들기도 한다. 하지만 성급한 결정에 앞서 언급했던 세 가지.
수험생활, 합격 가능성, 그리고 실제 공직생활이 나에게 맞을지에 대해서 좀 더 면밀하게 고민을 해봐야 한다. 세 가지 중 한 가지라도 허투루 생각했다간 아까운 시간만 날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먼저 수험생활에 대해서,
본인 스스로 생각했을 때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하루 내내 시험공부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되는지를 판단해 보아야 한다. 공무원 준비생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에 보면 합격수기가 많이 올라와 있는데 하루 기본 공부시간이 10시간 미만이었던 합격수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시험과목은 5과목이지만 각 과목에서 공부해야 할 양이 어마어마하고 그것도 한 번만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네댓 번 정도는 돌려봐야 서서히 암기가 되기 시작한다. 그 외에 기본서, 요약집, 기출문제, 모의고사, 온라인 강의 등 필수적으로 접해야 할 책과 강의들이 사방에 널려있다. 불안한 마음에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압박감이 수험기간 동안 한두 번 이상의 슬럼프를 찾아오게 만든다.
게다가 하루 열 시간 이상 공부하는 생활을 1년 이상은 할 각오를 해야 한다. 수험기간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지만 오래 걸리는 경우는 수년 이상되는 경우도 있으니 말할 필요도 없고 빨리되는 경우는 4개월, 6개월 정도가 소요된 사람도 있긴 했다. 그래도 통상적으로 1년 만에 합격하면 단기합격으로 인정해 주는 분위기였다.
이런 수험생활을 1년 이상 지속할 자신이 없거나 순수하게 공부만 할 여건이 되지 않으면 공무원 시험을 추천하지 않는다.
두 번째로 합격 가능성이다.
일정 점수만 넘으면 되는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이기에 내가 아무리 점수가 높아도 나보다 더 높은 사람이 많으면 합격할 수 없다.매년 채용하는 공무원 수는 차이가 있고 이례적이다 싶을 정도로 채용규모가 클 때야 도움이 되겠지만 체감하기에 합격 가능성은 채용규모와 크게 상관없어 보인다. 내가 공부했을 때의 시험제도 기준으로 100대 1을 훌쩍 뛰어넘는 경쟁률을 보이는 시험이 있을 정도로 한 문제 내에서도 수만 명이 당락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과 다르게 요즘은 거주지 요건과 시험일정통일 등 응시할 수 있는 시험의 종류도 줄어들었다고 하니 더더욱 합격 가능성에 대한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한다. 특히 고등학교나 대학 졸업 후 바로 공무원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다가 시험을 준비하는 경우라면 그 시간의 가치는 몇 배 이상 중요하다. 한창 경제활동을 해야 할 시기에 공부에 시간을 쏟고, 결과가 좋지 않아 또다시 시간을 투자하고 그러다 다른 진로에 대한 기회마저 놓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되는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
마지막으로 공무원 생활에 대해서.
사기업 세 군데를 2년씩 다녀보았다. 젊은 혈기에 불의와 불이익을 참지 못했고 경력관리에 소홀했으며 직장 내에서 비전을 찾지 못해 사표를 세 번 던졌고 그 길로 공무원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다 서울시 지방직 공무원으로 임용이 되었고 구청과 주민센터를 오가며 일했던 경험으로 사기업과 비교를 해본다.
총평을 하자면 공직 세계가 평균적인 사기업보다 조금은 낫다. 내 직장에서의 수명이 사기업에 비해 가볍게 결정되지 않는다는 절대적인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악용하는 사람들은 그냥 원하는 대로 편하게(?) 직장 생활을 해도 별 탈없이 정년을 채울 수 있다. 그러나 이 확실한 장점 하나 정도를 제외하면 사기업에 비해 월등히 우위에 서는 것들은 거의 없다.
변화의 속도가 느린 아주 거대한 규모의 관료제 조직 특성상 조직 내에서 소외감이 들고, 사회적으로는 국가의 예산, 국민의 세금으로 임금을 받기 때문에 행동의 제약이 크며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빈번한다. 단체장 선거가 민선으로 바뀐 이래 폭주하는 민원에 대해 항상 을의 자세로 굽실거려야 하고 업무의 성과에 대해 만족감을 느끼기도 어렵다.
더 큰 문제는 공무원을 바라보는 주변의 인식으로 그만두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현실에 안주하며 꾸역꾸역 살아내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거나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사람,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선호하는사람은 적응하기 힘들다.
이렇듯 수험생활을 잘 견뎌내고 시험에도 어렵게 합격했다 해서 끝이 아니다. 제일 좋은 시절은 공부하던 시절이다. 임용이 되고 실무에 투입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이 흙빛으로 변한 신규직원들을 숱하게 봤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퇴사가 그렇게 어렵다.
그래도, 선택지가 많지 않은 주위 사람들이 공무원 시험을 고민하고 있을 때 추천을 해주는 편이다. 삶의 목표와 만족을 느끼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고 공무원이 최소한의 인간의 존엄을 지키면서 살 수는 있는 직업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노량진에 들어설까 말까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의 앞날에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인생에 정답은 없고 어디든 우리가 상상하는 지상낙원이 아니라는 것만 깨닫고 있다면,한번. 해봐도 된다. 책임은 각자가 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