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춘래불사춘 Sep 03. 2021

알바만 하면서 살 수는 없을까

워라밸만은 평생 지키고 싶다면


워라밸이라는 용어가 대중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때부터 워라밸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친구들에게 지나치게 워라밸 균형이 안 맞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 말인즉슨 워킹과 라이프의 비중에 있어서 심하게 라이프의 비중이 높다는 것이다. 다들 워킹의 압박에 짓눌려 사는 반면에 나는 그렇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고 하니 왠지 뿌듯하기도 하면서 과연 내 삶에서 라이프의 비중이 높긴 한 건지 살아온 날을 한번 돌아보게 된다.




학창 시절부터 효율성을 삶의 모토로 삼았었다.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결과를 이끌어 내는 것. 공부하기는 싫어했으나 성적은 좋게 나오길 바랐다. 그래서 집중력 있게 공부를 하고 되지도 않는 편법도 많이 썼었다. 다행히 성적은 나쁘지 않게 유지되는 편이었고 원하던 대학에도 무난하게 진학했다.


이 효율성을 추구하는 버릇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문제는 반쪽자리의 효율성이 되어 버린 것이다. 최대의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은 등한시하고 최소의 노력만 남게 되었다. 조직생활을 하면서도 최소의 노력만 하니 경쟁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없었고 돋보이기 위해 무리하게 업무를 끌어안는 일도 없으니 직장생활 내내 격무에 시달린 기억이 별로 없다. 공무원이 되기 전까지 6년 여 직장생활을 하며 야근을 한 날은 손에 꼽을 정도다.


결혼 후에도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워라밸의 가치를 외면하고 가정 일변도의 선택을 해왔다. 두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육아휴직을 사용했으며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시기에 다시 육아의 길을 택했다. 정말이지 모든 결정은 직장보다는 가정이 먼저였다.


육아는 어려웠으나 보람이 있는 일이었다. 아빠가 주양육자가 되어 아이를 돌보는 것은 아직 드문 일이지만 우리 사회가 바라는 바람직한 방향이었고 다행히 아이들은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지 않고 활기차게 쑥쑥 자라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육아 휴직하고 무얼 하냐는 질문을 받을 때는 당혹스럽긴 하다. 그 질문은


다른 일은 안 하니?

수입이 줄었는데 생활은 돼?

준비하는 시험이라도 있어?


와 같은 물음이다. 물론 학교, 학원, 유치원 등의 교육기관에서 아이들이 머무는 시간이 있어 매일 자유롭게 활동할 시간은 있지만 특별한 무언가를 하고 있지는 않다. 집안일은 하려고 하면 끝이 없는 일이고 그렇게 하다 보면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할 시간이 금방 돌아온다. 학원을 몇 군데 더 보내고 유치원에 저녁까지 머무르게 한다면 더 많은 시간이 확보되긴 하지만 경제사정이 허락하는 한 그렇게 매정한 아빠가 되고 싶지는 않다.


아이들은 성인이 될 때까지는 꾸준히 곁에 있어주는 게 좋을 텐데 평생 직장을 나가지 않고 살 수는 없을까? 아내와 나를 비교했을 때 아무래도 아내는 조직생활에 능하고 육아는 내가 더 적합했다. 그래도 앞으로 수없이 받을 질문들과 의아한 눈빛들을 생각한다면 하는 일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


사회생활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려는 아내 덕에 혼자 벌어야 한다는 부담이 사라진지는 오래되었다. 지금도 아내의 벌이로만 근근이 살고 있다. 벌이가 크진 않지만 대출이 없고 씀씀이가 으니 그럭저럭 먹고 산다. 아내가 경제적으로 가장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으니 나는 남은 인생을 알바만 해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해보게 된다.


선진국의 경제를 이야기할 때 우리나라와 가장 차이 나는 것 중 하나가 노동력에 대한 가치이다. 흔하게 어느 나라에서는 맥도널드 알바만 해도 충분히 먹고산다는 말을 들어 봤을 것이다. 그 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아직 언감생심이지만 우리나라도 매년 최저시급은 꾸준히 오르고 있고 가게 사장을 하느니 차라리 알바를 하겠다는 중소 자영업자의 볼멘소리가 괜한 엄살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노동법도 강화되어 웬만한 조건에서는 4대 보험이 필수로 가입되며 예기치 못해 일자리를 잃었을 경우에는 실업급여로 생계가 보전된다. 다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건데 직장생활의 스트레스 없이 자유롭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적게 쓰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확보하는 삶이 더 나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러한 삶에는 먼저 충족되어야 할 전제조건이 있다. 타인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에 가치관이 개입해서는 안된다.  우리나라처럼 남의 삶에 관심이 많은 곳도 없다. 인생에 정해진 답이 있고 그 답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은 도태된 사람들로 치부해 버리는 문화. 이런 문화에서 알바만 하며 살아가는 애 딸린 중년의 남자를 보는 시선이 어떨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루 4시간 내지 5시간을 성실히 일하며 적은 돈을 벌고 자녀와 최대한 시간을 보낸다. 사회복지시스템이 만든 공공서비스를 이용하며 불필요한 지출을 줄인다.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는 삶이 우리나라에도 얼른 정착이 되었으면 좋겠다. 분명 시간이 흐를수록 개인의 삶의 다양성은 커지겠지만 그 선구적인 역할을 할 준비가 된 사람들이 많으면 좋겠다.


아직은 모아놓은 돈과 주식으로 푼돈이 생기기도 하여 당장 일하지는 않아도 되지만 다시 일을 시작해야만 할 때 알바로만 생계를 충당하고 가족과 함께하며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인생의 가능성을 확인한다면, 나는 그러한 삶을 꼭 살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40대 공무원, 아직도 다른 직업을 꿈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