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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래불사춘 Sep 16. 2021

사실, 모든 것은 나에게 유리한 결정이었다

마음대로 살고 싶어서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를 둔 맞벌이 부부에게 고비가 찾아오는 순간이 있다. 바로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 워킹맘들의 경력단절에 있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시기이다. 주위만 둘러봐도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에 맞춰 퇴직이나 휴직을 감행하는 엄마들이 많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초등학교 1학년이 되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만큼 학교에서 오래 머물 수가 없고 두 번째는 이때부터 교육에 열을 올리기 시작하기 때문에 자녀교육에 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위함이다.


우리도 서울 인접 경기도 신도시에서 미취학 아동 둘을 양육하는 맞벌이 부부였다. 이때까지는 어린이집과 유치원 그리고 몇 시간의 육아도우미의 도움으로 꾸역꾸역 맞벌이를 유지할 수 있었다. 외벌이로 살기에는 부부간에 벌이는 고만고만했고 시댁이나 친정의 도움을 받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아내는 편도 두 시간 거리의 직장에 다녔고 나도 회사까지 가려면 한 시간 이상은 잡아야 했다.


큰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이 다가올 무렵, 자연스럽게 아이를 케어하는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선 현재의 상황을 유지할 수 없다는 생각에는 동의했다. 물론 도우미를 더 오랜 시간 쓰면 되기야 하겠지만 비용의 문제도 있었고 아이의 교육에도 유익하지 않을 것 같았다. 결국 둘 중 한 명은 전담해서 아이를 보자는 쪽으로 결론을 내고 누가 그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아내는 춘천에 있는 회사의 중간관리자였고 나는 서울에 위치한 회사의 말단 직원이었다. 급여는 아내가 많았고 아내의 회사는 휴직을 할 수는 있으나 퇴사를 전제한 휴직처리 정도만이 가능했다. 반면 나의 회사는 급여는 적지만 휴직 문화가 발달하여 자유로운 휴직이 가능했고 회사복귀도 언제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미 조직에서 높은 자리까지의 승진은 포기한 터라 휴직에 대한 기회비용도 남들보다는 적었다.


결국 휴직은 내가 하기로 했는데 내가 아이를 전담한다면 굳이 왕복 네 시간 거리를 출퇴근하는 아내가 고생을 이어갈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이참에 춘천으로 아예 이사를 가서 거기서 몇 년 살아보는 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살던 집을 전세로 주고 춘천에서 집을 구하면 돈도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길 것이었고 출퇴근길에 버리는 시간도 없으니 가족이 함께할 시간도 더 늘어날 것임이 틀림없었다.


이제 어느 곳에 우리의 보금자리를 마련할지를 고민했다. 아내의 회사 위치와 아이를 입학시킬 초등학교, 유치원을 두고 한참 동안 지도를 들여다보았다. 모든 가족의 이동을 내가 책임지기로 했기 때문에 효율적인 동선을 짜는 것이 필요했다. 그럭저럭 살만한 아파트들은 많았지만 춘천까지 와서 실컷 살아 본 아파트라는 주거환경을 그대로 택하긴 무언가 아쉬웠다.


그래서 우리는 무조건 단독주택을 염두에 두고 집을 보러 다녔다. 주택은 임대로 나온 물건이 많지 않았다. 대부분 직접 살기 위해 집을 짓다 보니 전세는 없고 매매 건만 수두룩했다.  그래도 오랜 기간 천천히 알아보니 그중에 임대물건이 나오긴 했고 네댓 군데의 집을 비교해보고 한 집을 골라 이사날짜에 비해 한참 이른 계약을 진행했다.


아내는 어딘가 살짝 불편한 기색을 가끔 보이기도 했다. 본인의 직장 위치 때문에 온 가족이 이사를 한다는 것에 대한 책임이 무거웠을 것이다. 다시 서울로 돌아갈 것을 전제하고 있었기에 굳이 춘천으로 이사를 택한 것을 나중에 후회할지 도 모를 일이었다.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할 때 그것을 아내에게 미루는 경향이 있었다. 이번에도 춘천행의 명분을 아내의 편리함을 내세워 은근슬쩍 유도했고 아내로 하여금 가족의 이동을 진두지휘하게 내버려 두었다. 나는 남편으로써, 아빠로써 부족함을 보이지 않으려 거들어 노력하는 척만 할 뿐이었다.


그러나 사실 모든 것은 나에게 유리한 결정이었다. 삶의 전환을 이루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과거에도 현실에서 가끔은 벗어나고 싶을 때가 찾아왔고 어떤 형태로든 조금씩 다른 방향을 찾기도, 짧지 않은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아직 마음대로 살고 싶기도 했고 본능에 몸을 맡기고 싶은 순간에 그러지 못함이 아쉽기도 했다.


결국 아이돌봄을 위해 육아휴직을 선택한 것. 새로운 도시에서의 삶에 대한 호기심에 춘천행을 결정한 것. 평생 로망이었던 단독주택 2층 집을 계약한 것.  모두가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물론 결정을 뒤받침해줄 이유들은 많았다. 실제로 아이들은 을 너무나도 좋아했다. 층간소음으로 스트레스받을 일도 없었고 활용가치가 무한한 마당도 있었다. 춘천은 도서관, 박물관 등의 공공시설이 많고 문화행사에 대한 지원도 풍부하여 육아하기 좋은 도시라고 정평이 나 있다. 아직 아빠와 노는 것이 좋은 아이들은 언제 어느 때나 아빠와 같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의 안정을 느끼고 있었다.


재미없는 조직생활, 편리하지만 갑갑한 신도시 아파트의 삶, 똑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에 지쳤던 지난날을 뒤로하고 한동안 무언가를 계속 찾을 것이다. 찾기만 하다 끝이 날수도, 제풀에 지쳐 찾기 위한 노력조차 포기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직은 마음대로 한번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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