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게 실패하는 방법1_밥

- 주부 11년 차, 밥 잘하는 법을 묻다

by 용기발전소

11년 동안 밥을 지어온 나지만

오늘 밥 짓기는 실패다.


'밥솥이 고장 났나?', '쌀이 너무 오래됐나', '오늘 날씨가 습해서 그런가?'......

밥솥 안에는 나의 11년 주부 생활을 비웃듯, 설익었거나 질어서 퍼진 밥들이 나를 쳐다본다.


밥 짓기, 어디에서 잘못됐나?

신경 써서 밥을 하고 싶은 날, 쌀을 씻다 보면 한 줌의 쌀알이 내 손을 빠져나가며 이렇게 속삭였던 것 같다.

“우리의 적정 물 조절은 너의 숙명이야.”

그리고 그 숙명은 오늘까지도 해결되지 않았다. 쌀을 씻으면서도 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질문 ‘물은 손등까지? 아님 첫 번째 손가락 마디까지만?’

이건 무슨 고대의 주술처럼 세대를 이어 내려오는 말인데, 정확히 누가 정한 기준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문제는 내 감각?

11년 밥을 해봤으면, '밥 잘하는 법'이라는 게 더 이상 기술의 영역이 아니란 걸 깨닫는다. 감각이다. 그런데 그 감각이라는 게 문제다. 나는 요리책을 펴서 읽을 때마다 항상 난관에 봉착했다.

"쌀을 깨끗이 씻고 물을 적당히 맞춥니다."

적당히? 적당히라니! 나에게 ‘적당히’라는 말은 괴로움과 동의어다. 내 적당히는 왜 늘 '너무 많다' 혹은 '너무 적다'라는 재앙으로 귀결되는가.

그러나 생각해 보면, 밥 짓기에 실패한 내가 얼마나 멋진가. 11년 동안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여전히 밥솥 버튼을 누르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주부의 진정한 내공 아닐까?

그러니 오늘도 실패한 밥을 보며 깨달았다. 밥 짓기란 단순히 밥을 완성하는 행위가 아니라, 인생의 고단한 반복을 이겨내는 수행이라는 것을......


밥은 실패해도 삶은 실패하지 않는다.


어쩌면 밥을 매번 실패하는 이유는 내가 아직도 인생의 ‘적당히’를 찾지 못해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실패한 밥이 내 하루를 좌우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찌개는 괜찮고, 반찬도 나름 먹을 만하니까. 내일 또 밥을 짓고, 또 실패해도 괜찮다. 어차피 가족들은 그런 밥을 먹고 오늘 하루도 잘 살아간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완벽한 밥이 아니라, 함께 식탁에 앉아 웃으며 밥을 먹는 순간이니까.

그러니 오늘도 나는 밥솥을 닦고, 내일을 위해 쌀을 안친다. 어쩌면 조만간 진짜로 ‘적당히’를 알게 될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