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을 가능하게 만드는 내면의 기술
감정이란 건 본능처럼 밀려온다. 그런데 그 본능이 판단을 덮을 때, 실패한다.
분노는 정의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판단력을 흐린다. 나는 그때부터 감정을 ‘즉시 행동’이 아니라 ‘분석 대상’으로 보기 시작했다.
분노, 두려움, 억울함이 밀려올 때마다 나는 노트를 펼쳤다. 감정의 온도를 숫자로 적고, 이유를 문장으로 썼다.
“오늘 화가 났다.” → “왜?”
“그 사람의 말 때문.”→ “왜?”
→ “그 말이 나의 어떤 가치를 건드렸는가?”
결국은 '왜'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말한 의도, 결과, 과정 그리고 감정의 뿌리까지. '왜'에서 시작된 그 질문으로부터 문제를 파악하게 되고 해결점의 방향을 잡을 수 있다. 또한 이렇게 물으며 나는 감정의 뿌리를 찾았다. 감정을 정리하면, 판단이 보인다.
‘기분 나빠서’라는 말은 감정의 언어고, ‘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는 건 사실의 언어다.
나는 분노를 표현하기보다, 기록했다. 사실, 분노를 표현할 시간이 없었고 에너지가 아까웠다. ‘오늘 3시, 이런 대화가 있었다. 그때 이런 말이 나왔다.’ 그렇게 감정의 말들을 사실로 번역해 갔다.
언어가 바뀌면, 내가 바뀐다.
감정을 분리한다는 건 차갑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내 감정을 존중하는 방식이다. 복잡하고도 복잡한 그 속에서 감사할 부분을 찾고 겸허해질 줄 알며, 진정하고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음에 또 감사하게 되더라. 결국, 내 감정을 존중하는 방식은 그 안에서 감사하며 그 감사로부터 에너지원을 찾는다. 결국 분노라는 감정으로부터 에너지 낭비를 하기보다는 감정을 분리하고 이유를 확인하면서 내 감정을 존중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에너지를 얻어 분노를 유발한 원인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감정을 배제한 전략의 과정이자 결과물의 도출 방식이었다.
결국 전략은 감정 없는 이성의 결과물이 아니라, 감정을 직시하고 통제한 이성의 결실이었다.
감정을 다스리는 사람이 전략을 만든다.
전략 안에서 방법을 찾는 사람이 살아남는다.
그 감정을 즉시 흘려보내지 않기에, 나는 내 마음을 잃지 않고 지킬 수 있었다. 숱한 감정의 파도 속에서 그리고 현실 속에서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간단하지만 아주 단단한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