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T IN," 함께 어울려 살기를 실천하는 사람들!
특별한 이유를 댈 수 없었지만 난 늘 브라질 여행을 꿈꾸고 있었다. 십여 년 전부터 여러 번 시도한 브라질행은 늘 안타깝게 무산되곤 했었다. 이번엔 무슨 일이 있어도 가겠다는 집념을 불태워 일찍이 비행기표도 예약을 해 두었다. 무엇이 그렇게 브라질에 이끌리게 하는지 모르겠다. 늘 막아섰던 브라질행은 마지막까지 내 앞을 한 걸음씩 앞서 막아서는 느낌이었다. 상파울루로 향하고 있던 비행기가 갑자기 한 도시 위 상공을 빙빙 돌고 있었다. 상파울루 공항의 기상상태가 좋지 않아 폐쇄됐고 여러 번 돌며 기다리지만 기름이 떨어질 것 같아 옆 도시로 임시 착륙을 한다고 한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상파울루에 4시간이나 늦게 도착을 했고 이과수행 비행기를 놓친 친구들은 새 비행기표를 구입해 밤비행기를 타야 했다. 나도 그들과 함께 공항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그들의 탑승시간이 돼서야 나는 택시를 탔다. 세미나 장소는 공항에서 1시간 45분쯤 떨어진 곳이었다. 꿈에도 그리던 브라질의 상파울루 시내로 들어서는 첫 여정인데 이미 어두워져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간간이 보이는 불빛과 함께 나타나는 상점들 만으로는 새로운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당도하여 피곤했지만 다음날 강의내용을 다시 한번 숙지하느라 새벽 3시가 넘었다. 아침식사를 거르고 8:30분에 강의실로 직접 가겠다고 연락을 해놓고 잠을 청했다.
나는 한국말로 강의를 하고 스페니쉬 통역이 있었다. 브라질은 포르투칼어를 사용하기에 스페니쉬를 알아듣는 청중 중에 누군가가 중간중간 설명을 하는 듯했다. 서로 이해를 도우며 강의에 집중을 해주는 것이 감사했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강의시간도 제대로 모르고 시작을 했고 대충 쉬는 시간을 가졌다.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나 싶어 다시 강의가 시작되자 그룹토의를 시켰다. 각 팀에 한국, 브라질,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한 명씩을 반드시 포함하도록 해서 못 알아듣는 것을 서로 도와가며 어려움을 극복하는 경험을 주고 싶었다. 나는 각 그룹을 다니며 그들이 답해야 하는 2가지 질문을 다시 알려주고 토론 후에 각 팀에게 발표를 시켰다.
평소의 나와는 달리 강의시간에 연연하지 않고 시간을 넉넉하게 썼다. 알고 보니 브라질 사람들도 대충 시작과 끝이 여유롭다는 것이었다. 한 목사님이 포르투칼어로 열심히 발표를 했다. 그분의 얼굴표정과 제스처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내가 50%는 알아들었을 정도로 의사소통의 달인이라 칭찬하자 신나 했다. 그런 그는 나에게 자폐아와 지적장애인들과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으음~ 이미 전혀 못 알아듣는 포르투칼어로 나에게 이해를 시킨 그분의 대화법이면 이미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그분은 장애인들은 뭔가 다른 사람들이란 편견이 있는 것 같았다. 대화의 "방법"은 알려줄 수 있어도 "편견"을 깨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2박 3일의 세미나를 마치고 관광에 나섰다. 전혀 "외국"이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외국을 방문할 때면 늘 받는 질문이 "처음 온 우리나라가 어때?" 하는 것이기에 뭔가 좋아하는 답을 찾으려 노력한다. 브라질의 특별히 다른 점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생각이 떠올랐다. 눈에 띄는 것이 사람들인 것이다. 그리 부유한 나라도 아니고, 복지가 잘되어 있는 나라도 아니고, 특별히 자랑할 내용도 없는 듯한데 이들은 "장애인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들 중의 한 사람을 수용하는 느낌이었다. 인간적으로 누구나 서로를 "Amigo 친구"로 대하는 것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외국을 가면 보통 그 나라, 자연, 환경 등 외부적인 것에 감격을 하는데 내가 가본 어떤 나라보다도 브라질은 사람들 감동적으로 보였다. 서로 간에 어우러짐이 이루어지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었는데 마치 그 모범을 보는 듯했다. 저녁식사를 대접한 브라질 한인사회의 대표인 분에게 나는 나에게 브라질에서 가장 돋보이는 점이 편안함을 주는 사람들이라며 그곳에 같이 살며 느끼는 브라질 사람은 어떤지 물었다. 그분은 그들이 자유분방함이나 느긋함이나 서로를 친구로 대하는 긍정적 면에 동감한다고 했다. 내가 브라질 첫 방문에서 느낄 수 있었던 점이 설명되었다.
그는 갑자기 "끝맺음이 없고, 절대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고, 느리고" 하며 브라질 사람들의 문제점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런 면은 어느 나라 사람에게서도 볼 수 있는 점이라 나는 그것이 브라질 사람에게만 특별한 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발 더 나아가 브라질 사람들이 총을 가지고 쏴 죽이기도 하고 치안이 위험하다고까지 했다. 마음이 아팠다. 밥도 얻어먹었고 나름 한인사회의 권위 있는 분이라 나는 그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어떤 보살님이 대학생 아들을 데리고 절로 올라 가는데 똑똑한 아들이 불교의 폐단점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지적질을 했다고 한다. 가만히 듣고 있던 엄마가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라고 일갈했다는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분은 그동안의 울분을 토해내듯 갑자기 화제를 돌려 자신은 교회의 목회자들과 교인의 잘못된 점을 하나님의 올바른 말에 따라 지적질을 한다며 자신의 행동을 인정받고 싶어 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욕심이 생기고 교회가 타락한다는 말이었다. 그냥 나는 그 말이 맞긴 하지만 그것을 심판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가 아닐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이 맞긴 하지만"까지가 그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이었다. 나는 그냥 웃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모르는 것 같았다.
밤에 들어와 많은 생각을 했다. 인간과 타락! 소돔과 고모라라는 시는 그곳에 사는 인간들의 타락 때문에 하나님께서 벌을 받아 멸망했다고 한다. 나는 조금 다른 면을 본다. 사람들이 무엇이 옳은 것인지 배우지 못해서 타락을 했을까? 거기에 가르치는 교사가 없고 목회자가 없어서 가르칠 수 없었을까? 나는 소돔과 고모라가 타락한 인간들 때문에 멸망한 것이 아니라 "의인 10명"이 없어서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내가 수백만의 사람을 가르쳐 변화시키려는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스스로 나를 잘 다스려 의인의 한 사람이 되어 도시를 구하는데 일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에 띈 브라질 사람들이 소중한 이유는 장애인의 통합에서 추구하는 최상의 바로 그 모습이기 때문이다. 보통 통합은 "Get In"을 목표로 한다. 즉 진입하는 어려운 건물에 램프(경사로)를 설치에 "Get In" 즉 "들어갈 수 있게"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장애인 통합을 위해 "Get In"을 목표로 요구하고 있다. 그에 비교해 미국은 "Get In"의 단계는 거의 다 성취했고 이제는 "Fit In"을 요구하는 단계이다. 건물로의 진입을 넘어 이제는 사람들 간에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Fit In"이 목표인 것이다. 과연 Fit In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하던 차에 바로 브라질 사람들에게서 그냥 자연스럽게 Amigo로 받아들여지는 사람들에게서 Fit In의 모범을 본 것이다.
브라질의 사람들은 아름다웠다. 배려심이 있고 그냥 있는 그대로 친구가 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참을 수 없는 느긋함까지 가지고 있어 나의 잘못도 가끔은 용서가 되는 그런 여유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였다. 많은 젊은이들이 한 번쯤 방문해 경험했으면 하고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