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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세지감

대세는 기울었다.

by 교주

갑자기 서울행을 택하게 됐다. 여러 번 날짜를 바꾸다가 지난 주일날 새벽에 떠나게 됐다. 미국회사 비행기를 쉽게 탈 수 있다 보니 서울에 갈 때 직항이 아니라 힘이 들어도 그냥 이용한다. 여태 아무 문제가 없었다. 연결 편 비행기에 좀 늦게 가도 기다려 주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에 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엔 엘에이 공항에서 두 시간이나 지연되니 연결 편을 타야 하는 사람들이 다 발을 동동 굴렀다. 내가 갈아 탈 연결 편 비행기도 한 시간 지연되었다고 앱에 떴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휠체어를 기다려야 하는 나는 조급했다.


휠체어가 도착하자마자 도우미 분에게 짐만 부탁하고 불이 나게 연결 편 비행기가 있는 게이트로 갔다. 멀기는 왜 그리 먼지 국내선 터미널에서 국제선까지 쉬지 않고 달려가자 약간 연세가 있으신 도우미 분이 허덕이며 뒤쫓아 오며 궁시렁댔다. 무려 출발시간까지는 30분이나 더 남아 있는데도 게이트에 도착했을 때 개미새끼 한 마리 없이 썰렁했다. 앱에 나온 정보와는 달리 이미 다 떠나고 아무도 없는 것이었다. 어쩌지? 한국에 오후 3시에 도착해 7:30분 강의를 하도록 계획이 되어 있었다.


비행사에 전화를 하자 전화통이 불이 나는지 한참을 기다리다 젊은 목소리가 들린다. 차분하게 내 사정을 들은 상담원은 일본항공사에 자리가 있다고 하기에 우선 그 게이트 쪽으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국내선 터미널 끝에서 국제선 가장 끝에 있는 게이트까지 달려야 했다.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진다"라고 했던가 늙어간다며 골골하던 내가 어디서 젖 먹던 힘까지 솟아났는지 농구코트에서 달려본 그 솜씨로 요리조리 사람들을 피해 가며 일본항공기 게이트로 갔다.


게이트는 닫았지만 많은 직원들이 아직 일하고 있어 전화 속 비행사 직원과 대화를 하도록 바꿔주었다. 대부분 일본직원들로 옹기종기 모여 마지막 정리를 하던 사람들이 귀찮은 일이 싫은 듯 보였다. 마치 비행스케줄을 꿰고 있는 듯한 태도로 편안하게 다음날 비행기를 타라고 영양가 없는 말을 하며 전화기를 돌려주었다. 전화 속 상담원은 열심히 또 다른 비행기 편을 알아보았고 이번은 같은 미국 회사 것으로 도쿄를 경유해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였다. 상당수의 일본인 승객을 위해 일본인 직원들이 대부분 있었다.


상담원은 다른 항공기를 찾았다며 다시 이동을 주문했다. 또다시 달리고 달려 게이트에 도착하자 이미 내 자리는 다른 손님이 차지하고 있었다. 끝날 때까지 끝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나는 문을 닫고 출발할 때까지 기다릴 셈이었다. 아직 두 명이 도착하지 않은 일반석이 있다고 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사람이 도착했고 나는 마지막 한 자리에 희망을 걸고 전화 속 상담원과 이야기했다. 일 년 동안에도 못할 운동량으로 터미널을 달렸으니 보상을 받아야 한다며 알뜰하게 100불을 챙겼다. 혹시 다음날 비행기로 갈 경우를 대비해 이미 지불한 하루치 호텔비도 돌려받고 비즈니스석을 못 타고 일반석으로 가는 경우 차액을 환불받는 방법도 두루두루 챙기며 마지막 자리를 탐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매뉴얼에 있는 대로 늦게 오는 손님을 기다려야 했던 마지막 2분을 시계의 시침까지 세며 보고 있던 직원이 드디어 마지막이라며 나를 태웠다. 항공기 꼬리 쪽 맨 좌석이지만 창문 쪽이라 너무 다행이라고 좋아했다. 이해해 줘서 고맙다고 여러 번 반복하는 직원의 인사를 뒤로하고 마지막 자리의 주인이 나타나기 전에 후다닥 들어가 버렸다.


미국국적 비행기지만 일본행 비행기니 일본인 승무원이 많았다. 나는 너무 놀랐다. 일본사람들은 친절하고 예의가 바르다고 하지 않는가? 그동안 내가 겪어 본 일본인들도 대다수 과잉친절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언제 변했는지 이렇게 무례하게 느껴지긴 처음이었다. 휠체어에서 일어나 짐보따리를 들고 낑낑 매면 어느 항공이나 승무원들은 얼른 받아 도와주곤 한다. 그런데 한 일본인 남자 승무원이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미운 생각에 좀 들어달라고 하자 더욱 놀랍게도 자기는 문 앞에 서있는 일을 하기 때문에 도와줄 수 없다고 했다.


음료수 카트를 정리하던 승무원들도 마지막에 탄 사람이라 그랬는지 비켜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손님의 길을 막고 자신들의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 상냥함의 대명사인 일본인 승무원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쿄에 도착해 내릴 때는 시간도 넉넉하니 맨 마지막에 내리며 도와달란 부탁도 하지도 않았지만 기내 중간중간 서있던 승무원도 도와줄 생각도 하지 않고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낑낑대며 걸어 나오는데 다행히 한 젊은 일본 승무원이 돕겠다며 내 짐을 받아 들었다. 그 사람 덕분에 변해버린 일본인의 체면이 내 맘속에 겨우 살아났다.


비행기 문에 도착하자 나리타공항의 일본인 직원이 휠체어가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다. 내 휠체어로 갈아타자 나는 내 갈길로 갈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 직원이 자꾸 따라붙으며 빨리 인천행 비행기 게이트로 가자고 종용을 한다. 나는 클럽에 가서 간단히 식사도 하고 커피를 마시고 갈 생각으로 혼자 간다고 했더니 시간이 없다고 독촉을 했다. 두 시간 남짓 남았고 게이트까지 5분도 안 걸리는 곳이라 나 혼자 갈 수 있다고 했다. 손님의 의사보다는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가 더 중요한지 무례하게 자기의 뜻을 세웠다. 귀찮아서 따라나섰다. 게이트에 도착하니 너무 이른 시간이라 텅 비었다. 거기까지 안내를 끝낸 직원은 휑하니 사라졌다.


오는 길에 있던 상점을 들리면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건만 되돌아가야 하는 내가 오히려 직원을 위해 희생을 한 꼴이다. 다시 상점이 있는 곳까지 되아갔다. 지난번에도 봤듯이 천하제일을 자랑하던 일본의 상징과도 같았던 나리타 공항이 너무 초라해진 것이다. 새롭고 넓고 쾌적한 쇼핑까지 있는 공항들이 너무 많아진 탓일 게다. 애를 쓰고 다시 상점으로 돌아갔어도 살만한 것이 없었다. 그나마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이며 몇 안 되는 상점마다 길게 줄을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도 아직 과거의 저력이 남아있는 일본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국행 비행기 게이트에는 한국인 직원들이 있었다. 생기가 돈다. 얼굴에 띈 미소가 얼굴을 더욱 환하게 빛내고 있었고 자신감이 돋보였다. 반갑게 맞이하며 척척 알아서 휠체어에 짐 표도 달아주고 보딩 패스도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와 대화를 한다. 원래 한국사람은 좀 뻣뻣 살벌했던 기억이 내 머릿속에 뚜렷한데… 비행기에 도착하자 너무 날씬해서 나보다도 힘이 없을 것 같아 보이는 한국인 여승무원이 얼른 내 짐을 받아 든다. 내가 미안해하자 자신의 일이라면 번쩍 들어다 자리에 놓아주었다. 근육질 남자 승무원도 보이는 것과는 달리 상냥한 미소와 함께 목소리까지 친절하다.


우리나라 사람은 일에 충실하며 자신감으로 무장해 점점 친절해지는 방향을 돌아서는 동안 일본 사람들은 전체적으로 무기력하며 주어진 책임에서 더 나아가려는 생각을 접은 반대방향으로 돌아서기 시작한 변화의 물결이 이제는 무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 잡았음이 실감이 난다. 집을 출발한 지 24시간이 넘어 힘겹게 도착한 한국은 너무도 당당하고 친절하게 나를 맞아주었다. 대한민국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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