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의 10/1만을 의미하는 것일까?
미네소타에서 유학생활을 하다가 교수로 임용되어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하고 생활이 안정되니 감사한 마음이 절로 일어났었다. 이 감사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깊이 생각했다. 으음~~ 주일마다 믿음 반 습관 반으로 교회를 다니는 소위 말하는 날라리 신자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뭔가 신앙생활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 근데 번 돈의 10분의 1? 그건 좀 너무 쉬운듯한 생각이 들고.. 곰곰 생각하다가.. 분명 십일조를 현금으로만 원하시진 않으실 것 같아서 내게 주어진 시간의 10분의 1, 내가 연구하는데 쓰는 열정의 10분의 1까지도 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에 풀러 신학대학에 입학을 했다.
목회학을 해서 목사가 된다거나 선교사가 된다던가 하는 생각은 없이 그냥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의 10분의 1을 드린다는 생각이었다. 성경공부를 박 세게 하는 듯한 느낌으로 왔다 갔다 하며 시간을 보냈다. 조금 뜬금없지만 신학공부를 끝내고 뭔가 해야 한다면 부흥강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주중에는 학생들 가르치고 주말에는 팔을 활짝 벌려 장애인들과 함께 사는 사회를 이룩하는데 크리스천들이 가장 앞장을 설 수 있는 믿음을 부흥시키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근데 프랑스의 한인 교회에 가서 열심히 "설교"를 하고 내려왔더니 교인들이 "강의" 잘 들었다고 한다. 역시 내 소명은 강단이 아닌 교단임을 깨달았다.
교회마다 다르겠지만 그리스도 교회라면 당연히 동네꼬마들은 "누구나 다 오게"하는 분위기로 교회에 계속 나오겠다는 서약 없이 동네 친구를 많이 데리고 올 수 있는 열린 마당이다. 한국 교회에서는 그런 일이 없겠지만 한국보다는 소규모인 한인 교회에서는 "누구나"에 장애학생은 속하지 않는다고 명시하는 교회들이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많은 교회에 지적장애 학생들을 위한 특수반을 운영하여 그들의 영혼구원에 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세례는 주지 못하는 교회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유 인즉은 신앙고백을 위한 주기도문이나 사도신경 등을 외우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어느 날 운전을 하던 중에 지적장애아동의 세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떠 올랐다. 주기도문을 쉬운 말로 바꾸어 일 년 내내 노래로 부르게 하면 반복학습을 통해 목사님이 질문을 할 때 노래로 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뛰었다.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를 사랑해요~"식으로 의미를 왜곡하지 않는 선에서 쉬운 단어들을 사용했다.
아! 근데 음악에 기초가 없이 작성한 가사는 기존 주기도문의 찬송에 끼워 맞춰지지 않았다. 사실 더 잘 된 일이기도 하다. 교회에서 사용하는 주기도문 찬송가는 좀 딱딱한 느낌이 있어 매일 반복하기는 힘들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음악가 친구에게 의뢰해 주기도문 가사에 동요식 음을 얹어 곡을 만들고 제자에게 가이드를 시켜 음악을 완성했다. 지적장애인들이 늘 어린애 취급을 받는 것을 싫어했던 나는 성인 지적장애인에게 어울리도록 가수 겸 작곡가로 활동했던 친구에게 부탁해 재즈로 주기도문을 만들었다. 그 후 십계명과 사도신경도 지적장애인이 이해할 수 있게 쉽게 바꾸어 곡을 달았다.
과거의 특수교육은 지적능력, 소위 말해 정신연령에 맞추어 교육을 했었다. 정신연령에 맞춘 교육은 늘 이름 쓰기, 숫자 세기 등에 집중하기 때문에 졸업 후에도 자립능력이 부족한 결과를 낳았다. 그 후 기능중심 교육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방과 후에 빈 아파트에 혼자 문을 열고 들어가는 기능이 필요한 아이에게는 문 여는 방법을 가르치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교육활동이나 교구교재가 어린이용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 교육자료들을 보면 대부분 귀엽고 깜찍한 동물그림이 등장한다. 똑같은 수준의 내용을 가르치더라도 생활연령에 맞게 교육자료를 바꾸어 지도하는 게 바람직하다.
아! 내가 만든 찬송... 아직은 아무도 사용하지는 않는다. 때가 되면 필요한 곳에 사용되리라 믿으며 오늘도 열심히 지적장애인들을 위한 교육방법 개발에 머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