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맛이길래 인생을 걸었을까?
한국에 좀 길게 머물며 서울에만 있는 것이 지루해 동해안을 찾았다. 원래의 여행의 목적은 정동진에 있는 배모양의 호텔을 보고 싶어서였다. 나의 전공은 학생들이 고등학교까지의 의무교육을 마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것을 어떻게 도와야 할까 하는 것을 연구한다. 학생에게 고등학교 졸업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보호를 받던 어린이에서 이제는 홀로 세상을 마주해야 하는 꿈 많은 사회 초년생 어른이 되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며 미리미리 미래를 준비하는 것을 "전환계획"이라고 한다. 제자들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 나는 "배"를 가지고 설명하곤 했다. 배가 있어야 하는 곳은 당연히 "바다"고 배의 목적에 맞게 전문가들이 타게 된다고 설명을 한다. 어려서 늘 "Love Boat"라는 미국 드라마를 보고 살았다. 화려한 배안에는 많은 사람이 타는데 밴드, 쇼, 서비스를 하는 승무원, 선장님까지 TV안으로 들어갈 정도로 몰입되어 보곤 했다.
이런저런 배의 용도나 크기나 환경을 이야기하다가 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질문을 한다. 다양한 답을 내지만 내 대답은 "방향키 (조타, Rudder)"라고 말한다. 방향키가 없는 배는 없다. 아주 작고 바람으로 가는 배라 할지라도 노(Paddle)이나 돛으로 정해진 방향을 나가도록 한다. 교육의 좋은 결과를 내려면 당연히 방향을 결정해 나아갈 수 있는 "전환계획"이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중에도 배가 물 위에 있지 않으면 "배"가 아님을 강조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멀리 보이는 산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정동진의 배를 보여주며 이것은 배모양일 뿐이지 배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바로 내 강의 중에 단골로 사용하던 배면서도 자기의 본분을 잊어 배가 아닌 썬크루즈에 한번 가서 미안하다고 말해주고 싶었었다. 그곳을 간 김에 설악산이며 고성통일전망대며 관동팔경의 이곳저곳을 다녔다.
GPS가 알려주는 현대화된 길을 최대한 피해 해안선을 따라 있는 옛 도로를 찾아 한국의 아름다움을 마음으로 느꼈다. 많이 변했지만 그래도 마주치는 사람들의 넉넉한 마음씨는 그대로인 것이 참 좋다. 동해안 고성통일 전망대에서 속초 설악산으로 해서 정동진까지 해안선을 따라 4박 5일의 여행을 아쉬움 속에서 마치고 서울로 향했다.
고속도로의 휴게소는 예전과는 좀 달라진 분위기이다. 좋은 의미로는 시설이며 위생이 개선된 것일 테고 아쉬운 의미로는 옛날의 북적거리던 휴게소의 흥분은 사라진 듯하다. 식당도 현대식으로 깨끗해졌고 그 대신 사람과 마주칠 일은 별로 없다. 키오스크에서 원하는 음식을 찍고 영수증의 숫자가 뜨기를 기다려 기계적으로 주문한 음식이 담긴 쟁반을 밀어주는 정도의 사람접촉이 있을 뿐이다.
옛 추억을 가지고 있는 나는 휴게소를 좋아한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뭔가 먹어야 할 것 같은 마음을 피할 수 없다. 대관령 휴게소를 들려서 아침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식당가를 기웃거렸다. 깔끔한 간판으로 나열된 식당이 자신의 자랑 메뉴를 내세우며 나의 선택을 기다린다. 선택이 많을수록 고민과 갈등은 피할 수 없다.
한 미국 선교사가 수년동안 아프리카의 오지에서 선교를 하고 오랜만에 미국으로 돌아와서 어느 날 슈퍼마켓을 갔다고 한다. 치약을 사려고 하는데 종류가 너무 많더라는 것이다. 선반에는 이를 희게 하는 것, 다양한 맛과 치료효과등을 수많은 치약이 경쟁적으로 배치되어 선택을 강요당하는 바람에 울면서 다시 아프리카 선교지로 돌아갔다고 한다.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인생 설렁탕!" 굳이 설렁탕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 뭘까 하는 호기심에 다른 것은 생각해보지도 않고 주문을 했다. 뭘까? 인생을 걸 정도로 맛이 있으려나 하는 기대를 하며 주문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릇 속에 담긴 설렁탕을 보니 깔끔해 보였고 국물에 고기와 당면, 파가 다였다. 파를 안 먹으니 한참 낚시질을 해서 걷어내고 국물을 한 수픈 떠서 후후 불어 마셨다. 어? 아무 맛이 안 난다.
고기국물 맛이겠지만 간이 되어있지 않아서 맛을 모르겠다. 양념장을 요청했지만 양념장도 없이 그냥 마음대로 소금과 고춧가루 김치등으로 맛을 내서 먹으라고 한다. 일단 밥 한 그릇을 풍덩 다 말아버렸다. 그리곤 맛이 날 때까지 홀짝홀짝 맛을 봐가며 이것저것을 넣었다. 으음~ 이제야 입맛에 맞는군... 하며 친구의 설렁탕 그릇을 보니 내 것과 색깔부터 달랐다. 아마 나와는 다른 조합의 것들을 넣은 모양이다.
인생 설렁탕 맞네! 왜 "인생 설렁탕"이구나를 깨달았다. 아무 맛이 가미되지 않은 설렁탕. 주인이 의도를 했던 안 했던 깨달음에 나는 웃었다. 우리네 인생도 별 특정한 맛이 없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인생 한 그릇을 받아 들고 주변에 있는 이것저것들을 집어넣어 본인의 입맛에 맞게 자신만의 인생을 만들어 가는 거다. 설렁탕 한 그릇에 인생을 돌아볼 기회가 되었다. 좋다!!
이 쉬운 진리가 우리 주변 곳곳에서 알려주고 있는데 왜 못 듣고 왜 못 깨닫고 자신의 삶 속에 녹여내지 못할까… 남을 쳐다보고 남이 잘하는 것을 흠모하고 따라 하고 좌절하고 불평한다. 또 자녀들의 삶을 부모가 맛을 내려고 하지 않는가? 각자 입맛에 맞게 사는 게 최고인데... "인생설렁탕" 한 그릇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