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큰 가치
지난 40년이 넘게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한국의 눈부신 발전 상에 놀라며 기뻐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나는 사람들의 변화에 더욱 민감하다. 가끔가끔 차이가 나 보이듯이 언제인가부터 개인주의적인 생각이 주도하듯이 남에게 관심을 전혀 두지 않고 냉랭해 보인 적도 있었다. 가장 적응이 안 되는 변화가 기름끼 쫙 빼 아무 맛도 없는 사골탕처럼 감정을 쫙 뺀 심심한 기계조작음과 흡사한 밍밍한 대화법이었는데 요즘은 적당한 양념이 가미된 듯 각자의 특성을 볼 수 있어 다시 안심이 된다.
지하철에서의 변화도 재미있다. 사용하는 승객이 서너 명이 지하철 한 칸에 몰리기도 하고 쉬엄쉬엄 빠지지 않고 장애인 분들도 볼 수 있는 점이 확연히 다르다. 또한 과거에는 삼삼오오 친구나 가족과 함께 이동하는 사람들의 대화소리가 들리고 그사이 책을 펴든 사람들의 모습도 꽤 많았다. 40여 년 만에 다시 타 본 전철의 풍경은 많이 다르다. 빈자리가 있어도 앉지 않고 그냥 서있는 사람들도 많다. 책을 펴든 사람은 없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다 손에 핸드폰 속으로 빨려 들어가 있는 듯하다.
장자수업이란 책을 쓴 강신주 님은 책과 교재를 나누어 정의한다. 내가 읽고 싶어서 읽는 것은 책이고 남의 강요로 읽어야 하는 것은 교재라고 한다. 맞다! 나도 교재보다는 책을 선호하는 편이라 그 차이에 대한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분의 설명에는 베스트셀러도 사회적 압박에 의해 읽으면 교재가 되는 것이니까 서점에 가서 2-3 페이지를 읽어보고 계속 끌리는 내용을 찾아 읽으라고 조언한다.
나의 경우는 교재가 책이 된 경우도 있다. 어려서 영어를 무척 싫어했고 시험에서 늘 빵점을 받곤 했는데 안현필 씨가 쓴 "영어기초확립"이란 책의 서문을 읽고 나의 인생이 바뀐 것이다. 서문에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수차례 읽으면 고수가 된다고 쓰여있었다. 왠지 나는 그 말에 도전을 받았고 이곳저곳 긁적이지 않고 무조건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13번을 읽고 난 지금은 영어가 거의 나의 주 언어가 되었다.
한참 다양한 교과서와 참고서등의 교재만 읽고 보기도 바쁜 고등학교 3학년 때 국어 선생님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며 도서일지를 쓰게 했다. 고전을 찾아 읽고 시작날과 끝낸 날을 적어 일주일에 한 번씩 제출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시작을 했을 때는 제출해야 하는 도서일지에 대한 부담감으로 아주 얇고 짧은 책들을 선택해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책 읽기가 점점 나를 교재보다 독서에 깊이 빠지게 했다.
그리고 보니 어렸을 때 늘 끼고 다니던 "비밀의 정원" 책을 읽을 때마다 이 세상을 잊고 그 정원으로 들어가 책 속의 주인공 친구들과 놀던 생각이 났다. 독서에 빠져들며 "여자의 일생"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죄와 벌 " "적과 흑" "인간의 굴레"등 많은 두꺼운 책들을 마구 읽어냈다. 대학을 포기한 사람처럼 독서를 많이 한 고등학교 시절이 나에겐 너무도 좋은 위안과 끝없는 상상력과 삶에 대한 관심을 갖게 했다.
핸드폰을 들고 있는 지하철의 사람들도 "종이책은 아니어도 전자책을 읽는 것이겠지?" 하는 상상을 한다. 노인분들은 읽고 싶어도 눈이 침침해 읽기가 쉬지 않다. 내가 아는 친구들 중에는 정년 후 책 읽기까지 완전히 졸업해 버린 사람들도 있다. 아마 경쟁으로 이루어진 삶 속에서 어려서는 수많은 교재들에 치이고 일을 하면서는 문서 만들기와 일에 필요한 수많은 교재를 읽으며 지겨워졌을 것이란 마음에 짠하기까지 하다.
책 읽기는 어렸을 때는 직접 경험으로 다 채울 수 없는 넓고 깊은 경험의 세계를 만들어 주고 상상력을 키울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에 독서는 정신적 성장에 가장 중요한 양분이 되기에 재미있는 책들을 접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성인이 되어서 책을 많이 읽으면 지식을 습득하게 될 뿐만 아니라 문제해결에 필요한 통찰력과 사고력을 계속 높여주기 때문에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삶에 행복함과 만족감을 주기에 읽어야 한다.
노인은... 으음~ 잘 안 보이고 잘 안 들리고 집중력도 좀 떨어지려나... 하지만 치매예방에 가장 좋은 방법이며 좀 조용해지고 단순해져 지루할 수 있는 시간을 재미로 채워줄 수 있는 친구 같은 존재이니 책을 가까이하는 것이 참 좋다. 핸드폰에 책을 담으면 크게 확대해서 읽을 수 있으니 e-도서와 친해지면 좋겠다. 이제는 뭔가 배우기 위한 교재보다는 그냥 재미있는 책을 읽으면 된다. 아! 만화책도 좋다.
이번 방문동안에는 주호민 씨의 "신과 함께"라는 웹툰 만화책을 읽었다. 우와! 완벽 깔끔하게 내가 만날 사후세계를 상상하게 해 주었고, 어려서 고사를 지낼 때 마주해 봤던 집안에 살고 있는 신들을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옛 친구를 만난 듯 즐거웠다. 부엌에 사는 "주앙대신 (만화책에서는 "조왕신"이라고 불렀다)" 그 외 "성주대신" "측간대신"등 내가 아는 친구들이다. 요즘 아이들이 아이돌의 춤추고 노래하듯이 나는 어렸을 때 무당이 이 대신들의 이름을 부르며 읊조리던 것을 흉내를 내서 어른들의 칭찬세례를 받던 케데헌의 원조였다.
이번에 와서 책을 읽는 친구들을 만나고 즐거웠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들은 감수성도 많고 대화의 깊이가 있어 친구로 너무 훌륭하다. 어제는 청평에 가서 장애인 콜택시를 부르자 한걸음에 달려온 기사 청년과 새로 친구가 될 기회가 있었다. 많은 기사님들을 만났지만 처음부터 이 청년은 뭔가 달랐다. 전화에서 2번 출구 쪽으로 오라고 한다. 그건 그 사람이 이곳을 잘 알고 있다는 소리라 믿음이 갔다. 차에서 내려 기사님들은 보통 "xxx세요?"라고 확인차 묻는다. 이 청년은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라고 묻는다. 색다름이 좋았다.
내가 가려던 곳에 도착하니 식당이 문이 닫혀 난감한 상황이 되자 초행길임을 알아차린 기사청년은 인터넷으로 찾아 그 지역의 맛집으로 데려다주었다. 잠시 이야기할 시간을 갖게 되었다. 역시 나와 같은 MBTI를 가지고 있었고 상당히 감수성과 이해심의 폭도 넓었다. 그러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니 내가 바로 "우리는 친구"라고 외쳤다. 아! 물론 내가 좀 나이가 그 청년보다 있다. 한국 정서에서는 그냥 맞 친구가 안되니 그 친구는 바로 나에게 "네, 누나!" 했다. 아이고 이 센스! "네 할머니"해도 괜찮았는데... 하하핫!
우리 열심히 책 읽으며 삽시다! 책을 좋아하는 당신! 멋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