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안에서 크는 품 밖의 아이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 야고보서 1장 19절)
공감 능력은 다른 사람의 상황이나 기분을 같이 느낄 수 있는 능력을 말해요. 지식이 풍부하고 경제적 능력이 있다고 해서 공감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머리로 상대를 이해하는 능력은 어느 정도 갖추게 되지만,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공감 능력을 모든 사람이 같은 수준으로 다 가지는 것은 아니예요.
갓난아이는 돌보는 양육자의 태도와 표정, 그리고 음색을 몸으로 느끼는 경험을 통해 발달하지요. 공감을 경험하지 못하고 성장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상황을 공감하기 어려워요. 맛보지 않았으니 맛을 알 수 없는 것과 같아요. 어려서 공감을 경험하고 성장하는 것은 중요하며 공감하고 믿고 기다려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아이는 밝고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누군가 나를 이해하고 믿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언제라도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는 감정 뱅크와 같은 요새가 되기 때문이에요.
초등학교 4학년에 만난 세월이는 여기저기 보내지면서 성장하다 길거리에 버려졌고 경찰에 발견되어 보육원으로 보내졌어요. 뒤늦게 고모가 그 사실을 알고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세월이를 가장 잘 돌보아 줄 곳을 찾다가 어린이재단 추천으로 저에게 온 아이예요. 정해진 규칙에 따라 가방 메고 학교를 오고 가지만, 공부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책을 좀 읽어보라는 저에게 책을 왜 읽어야 하느냐고 묻던 아이이고요. 게임을 하다가 마음대로 안 되면 컴퓨터 자판을 내리치고 하드를 걷어차던, 분노가 가득했던 아이, 눈이 충혈되도록 게임을 즐기던 아이, 도무지 변할 것 같지 않던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해맑게 웃는 아이가 되었어요.
어떻게 변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서 뭐가 너를 달라지게 했느냐고 물었어요. 세월이는 제가 달라졌나요? 마음이 편안해지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 않는 것은 맞는데 언제부터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다고 해요.
공업고등학교 도제반에서 일과 학업을 병행하다 실습 나가던 회사에 취업하는 것으로 알고 기대했는데 ‘코로나19’로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채용을 거부하는 바람에 갑자기 갈 곳을 잃었어요. 세월이는 이번 기회에 진로 방향을 바꾸면 안 되냐고 해요. 컴퓨터 앱 개발 관련 일을 하고 싶다고 해서 그동안 보고 듣고 모은 정보를 활용해 노동부에서 지원하는 ‘반응형 앱 개발자 과정’을 찾았고 안성에서 서울까지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서 학원에 보내기로 했어요. 당당하게 자립해서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제부터는 ‘생존’을 위해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반응형 자바 앱 개발자 과정’을 공부하기 위해 4개월 동안 ‘파이썬’ ‘자바’ ‘C언어’ '자료구조‘까지 배우고 본격적인 과정이 시작된 다음 날 새벽 4시 30분까지 게임을 하는 세월이를 보았어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누르고 이 시간에 게임을 하고 있으면 내일 아침에 일어날 수 없으니 빨리 끄고 자라고 했어요. 아침 6시에 일어나야 하는 세월이는 3번을 깨워도 못 일어나고 6시 30분에 겨우 일어나 비몽사몽 학원에 갔어요.
선생님은 게임중독 아니냐고 하고 저 또한 이제부터 ‘생존’이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게임에서 못 벗어나는 것 같아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요. 어떤 조치를 하기 전에 세월이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학원에서 오면 제 방으로 오라고 했어요. 밤 9시가 되어 긴장된 얼굴로 저에게 온 아이에게 요즈음 하는 공부가 어떤지 물었어요.
세월이는 솔직히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고 해요. 동영상 강의를 열어주었는데 동영상을 들어도 모르겠고 10개가 넘는 과목이 있는데 한 과목이 끝날 때마다 시험을 봐서 60점 이상이 되어야 수료가 된다는데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모르니 답답해서 게임을 하게 된다고 했어요. 게임에 빠져 있는 세월이를 야단치고 훈계하려고 오라고 했는데 훈계가 아닌 한 시간이 넘도록 세월이의 이야기를 듣고 상담해주는 시간이 되었어요.
엄마도 처음 컴퓨터를 배울 때 그랬다는 것, 눈물 흘리며 듣고 또 들었다는 것, 그런 과정이 없으면 배우지 못한다는 것, 살아남기 위해서는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는 것, 앞으로 5개월 후면 취업하고 자립해야 한다는 것, 엄마가 계속해서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모르겠으면 묻고 찾아보고 메모하며 하나씩 내 것으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했어요. 무엇보다 하기 싫은 마음, 게임을 하고 싶은 마음을 이기는 것이 가장 어렵고 힘들지만, 이겨내야 하는 것은 자신을 이기지 못하면 성공하는 인생을 살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해주었어요. 어깨를 토닥여 주고 달콤한 쿠키를 건네며 용기를 내라고 했어요.
제가 세월이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열심히 해도 자립에 성공하기가 어려운데 게임만 하느냐고 야단쳤다면 세월이는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을 거예요. 혼자 고민만 하다 시간은 가고 원하던 직종에 취업이 어려웠겠지요. 어려서 책을 읽지 않아 문장 이해력이 현저하게 떨어져 학습에 어려움이 있지만 지금부터 하면 되요. 늦은 때는 없으니까요.
성실함이 장점인 세월이가 달라졌어요.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았고 퇴소해야 하는 날이 가까워오자 스스로 일단 알바를 하며 직장을 찾아보겠다고 레스토랑에 취업했어요. 남편 친구가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사장님께 알리지 않았어요. 세월이가 3개월쯤 일했을 때 레스토랑을 방문했어요. 성실함은 그곳에서 빛을 발했고 사장님은 묵묵히 성실하게 일하는 세월이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며 아이 잘 키워서 보람 있겠다고 해요. 세월이가 얘기해서 알게 되었다고 해요.
영어 공부를하며 자막 없이 영화를 보고 앱개발자 과정 공부하며 디자인에 관심이 가던 것을 확장해 전문대학 시각디자인과에 진학하기 위해 원서를 넣었어요. 받은 월급의 일정금액을 먼저 저축하고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게임은 어쩌다 한번씩 하며 잘 살아내고 있어요. 바라보고 있으면 밥 안먹어도 배가 부를만큼 좋아요. 이것이 부모 마음인가봐요.
고개를 끄덕이며 세월이의 말을 들어주고 공감해준 효과가 아닐까 싶어요. 훈계하기 전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맞장구를 치며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것이 따끔한 훈계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세월이를 통해 확인했어요. 잘 듣는 것이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비결인거죠.
지금 눈에 보이는 상황 이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들어야 아이를 이해하고 어떻게 훈계해야 하는지 방법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아는데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보고 차분하게 아이의 말을 먼저 듣기가 참 어려워요. 매일,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아이라면 더욱 그래요.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조급해 하지 말고 아이를 믿고 기다려줄 때 아이는 밝고 건강하게 성장할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