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과 주변부의 관계
BTS가 빌보드에서 'Butter'로 10주 1위를 차지하면서, 2021년에도 여전히 국제적 위상의 최정상 아이돌임을 증명했다. 그럼에도 2012년 싸이가 빌보드 2위에 오르면서 언급되던 화제성에 비해서는 상당히 저평가되고 있다고 본다. 싸이가 맨해튼에서 미국인들과 함께 연말을 보내면서 신기하다고 생각했던 우리들은, 지금 케이팝 가수들이 전 세계적인 팝스타인 에드 시런, 블랙핑크의 경우는 셀레나 고메즈 등과 협업을 해도 반응이 뜨뜬 미지근하다.
BTS의 빌보드 차트 진입을 종종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멜론 차트 순위권에 들기 위해서 팬덤이 하루 종일 스트리밍을 하는 것처럼, 팬덤의 힘으로 빌보드에 오른 것이기 때문이라고 보기도 한다. 어느 정도 맞다고 해도 완전히 BTS의 성공을 말하기는 힘들다. 빌보드 오르는 것이 팬덤의 힘으로 그렇게 쉽게 1위를 차지할 수 있다면 현재 빌보드 순위권에는 훨씬 다양한 노래들이 포진되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팬덤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것보다 케이팝이 좀 더 대중화되고 국제화되고 있으며, 어떻게 팬덤이 국제적으로 형성되었는가를 묻는 것이 우선순위일 것이다.
그렇다면 방탄소년단은 왜 엄청난 팬을 거느린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을까? 한국의 음악을 왜 세계에서 호응하는가? 우리는 여전히 이러한 질문들을 던질 수밖에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팬덤과 방탄소년단의 선한 영향력 등을 이유로 꼽지만 그것은 팬이 된 이후이거나 관심이 매우 많아야 알 수 있는 내용이다. 나는 위와 같은 질문의 답으로, 대중문화에서 전 세계적으로 중심과 주변으로 구분된 문화 구분이 해체되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K-Pop의 탄생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있어서 많은 평론들은 '해외 기원설'을 논하고 있다. 미국의 유명 보이밴드인 '뉴키즈 온 더 블록'이라든가, '잭슨 파이브' 등의 그룹 활동 등의 모델을 수입하여 세기말에 K-Pop 아이돌이 탄생하였고, 그 이전부터 서태지와 아이들의 활동들은 그러한 해외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한국 대중문화의 변곡점이 되었다고 본다. 이러한 설명에서 K-Pop은 미국 Pop의 서브컬처로서 모방을 하면서 발생한 '아이돌 장르 음악' 이상의 지위를 얻지 못한다. 또한 모방의 결과물이라고 한다면 케이팝이 왜 한국에서 지금까지 근간을 이루는 인기를 얻었는지 쉽게 설명하지 못하고, 대중들의 선택이라는 단순한 결론으로만 도달하게 된다.
문화의 권력관계에 있어 중심과 주변의 관계가 적용된 사례는 미술사에서 예시를 찾아볼 수 있다. 조르조 바사리는 최초의 미술사 서적이라고도 언급되는 '미술가 열전'을 통해서 이탈리아 르네상스 예술가들의 삶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익히 아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의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그의 저서의 방식은 피렌체, 베네치아와 같은 주요 르네상스 도시들의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언급하였는데, 이는 도시와 지방의 종속관계를 이루는 방식이었다. 도시에서 파생된 양식은 시간이 지나면서 지방으로 퍼지고, 지방의 예술가들은 최신 스타일을 도시보다 느리게 파악한다고 보았다.
코레조(Antonio Allegri da Correggio)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 북부 파르마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미술가로, 그의 작업은 르네상스 이후 17세기 바로크, 18세기 로코코 미술의 전조로 평가받고 있다. 피렌체 중심 르네상스의 양식을 받아들이고 그에 반응하여 스스로의 미술세계를 이어나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바사리에게 예술가 수준을 평가할 때 얼마나 '중심부'의 미술에 노출되었는지는 중요한 문제였다. 그러한 점에서 당시 지방 출신의 화가인 코레조는 이름은 알려져 있지만, 동 시기의 라파엘로나 티치아노 등 르네상스 화가에 비해서 상당히 저평가되었다. 르네상스 중심 도시에 속하지 않은 주변적 인물로 격하되었다는 것이다. 코레조는 바사리가 구축한 미술사 열전 바깥에서 연구되었을 때 비로소 공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K-Pop을 해석하는 방식은 500년 전의 미술을 보는 관점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팝 음악의 주변부적인 지역으로서 한국의 케이팝은 얼마나 팝 중심의 음악에 가까웠는지부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케이팝의 본질은 어떻게 다른 지역의 음악에 반응하느냐에 따른 것이다. 여전히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소몰이 창법과 같은 발라드 음악이 한국에서는 기세를 떨쳤고, R&B 소울의 미국 음악을 바탕으로 한국 음악계에 등장해도 실패하는 사례는 많았다. 해외의 음악이 한국에 와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한국 음악과 시장을 얼마나 알고 그에 응당한 대답을 내놓아야 했다.
K-Pop 산업이 팝 음악중심-주변의 관계를 허물 수 있는 배경은 무엇보다 유튜브와 스마트폰의 보급이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유튜브는 동영상을 올려서 전 지구 상의 모든 인구가 인터넷만 있다면 볼 수 있도록 해두었다. 스마트폰은 그러한 음악과 동영상 시청을 기기만 있다면 언제나 볼 수 있도록 시간적 제약을 없앴다. 동영상을 보기 위해서 소파 앞에 앉아서 원하는 프로그램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검색과 시청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알고리즘은 동영상 하나를 보면 또 다른 동영상을 볼 수 있도록 했다.
플랫폼이 그동안 소외되었던 주변부를 비출 수 있다는 점은 현재 진행형이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서 인디 음악/독립활동을 하는 음악가들은 플랫폼을 통해서 라이브 방송을 하고 돈과 유명세를 끌어온다. 그러나 음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플랫폼은 틱톡(Tiktok)이다. 틱톡 플랫폼에서의 챌린지 형식의 포스팅은 음악과 시각 이미지를 어우러지게 하였으며, 이때 처음 듣지만 일반적으로 좋은 듯한 노래들이 많이 떠올랐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바탕으로 한 세로 직사각형 이미지는 챌린지를 통해서 피라미드처럼 줄줄이 뻗어나갔고, 틱톡의 가수들은 웬만한 팝가수만큼 부와 명성을 얻고 있다.
BTS는 지역적 음악으로서의 케이팝이 팝 음악을 비롯한 해외와 접촉하면서 축적된 맥락 속에 놓여 있다. 또한 중심-주변으로 인지되는 음악적 세계에서 기술의 발전은 음악 간의 빠른 반응을 유도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으며, 종국에는 중심-주변의 권력관계가 희미해졌다. 즉, BTS가 성공할 수 있는 시기적인 발판이 비로소 마련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