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식 하나 없이 설명해보기
구글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지난해 듀레이션과 관련해 썼던 글이었습니다. 금리 관련 책을 쓰면서 만든 챕터였는데 ‘너무 어렵다’라는 출판사라는 의견에 따라 블로그(브런치)에만 올렸던 글이었죠.
이때 듀레이션을 시소에 비유했어요. 듀레이션을 ‘본전을 찾는 시기’라고 본다면 현금흐름 비중이 높은 쪽으로 듀레이션이 이동한다는 내용이었죠. 이렇게 보는 것도 어느 정도 듀레이션을 이해할 수 있긴 했는데, 최근 채권 관련해서 공부를 하면서 조금더 체계적으로 설명을 드려볼까 합니다.
-듀레이션은 왜 어렵나?
듀레이션은 ‘아는 사람’만 아는 생소한 개념입니다. 경제기자로 십년 넘게 있었고 금융부에 있어 본적도 있었지만 듀레이션을 기사에 쓴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대출자산을 끼고 있는 은행 내 리스크관리부서에서 좀 주의깊게 보지 않을까 싶네요. 그나마 그 지표도 공개될 일이 없습니다. 해당 은행의 대출 자산의 리스크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읽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듀레이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채권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깔려 있어야 합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할인'이라는 개념도 이해하고 있어야 하죠. 이런 배경 지식 없이 '수식'부터 들이대니 어렵게 느껴지는 게 당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듀레이션이 지나치게 이론에 치우쳐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채권 가격과 금리와의 상관 관계, 변동성 등을 설명하는 데 유용한 개념이 될 수 있지만 '사후적으로 설명'하는 데 그친다는 것이죠. 채권 가격과 금리가 사실상 시장 수급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듀레이션은 몰라도 되는 개념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채권 공부를 하다보면 반드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 챕터임은 분명합니다. 듀레이션을 공부하다보면 채권 금리와 가격 등의 메커니즘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번 글은 최대한 숫자에 익숙하지 않은 문과생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써보려고 합니다. 채권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채권 가격과 금리가 반대로 움직인다 정도)이 있으신 분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요.
-듀레이션을 이해하기에 앞서
듀레이션을 이해하기에 앞서 우리가 알아야하는 게 있습니다. ‘할인’이라는 개념입니다. ‘디스카운트’ 혹은 ‘세일’이라고 흔히들 쓰지만 투자업계에서 쓰이는 '할인'은 약간 다릅니다. 수치적인 하락이나 감소를 의미할 때가 있지만 '내재된 교환 가치'의 하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같은 지갑에 있는 1만원이라고 해도 올해가 다르고 내년이 다르다는 얘기죠. 바로 인플레이션 때문입니다. 올해 1만원으로 딸기 10개를 사먹을 수 있었다면 내년에 5개 정도 사먹을 수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물가 상승에 따라 '1만원의 가치가 할인된 것'이죠.
투자자들은 인플레이션 대신 자신의 기대수익률을 대입해 계산합니다. 예컨대 내가 매해 같은 액수의 이자를 받는다고 가정했을 때, 그 돈의 기대수익률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미래 내가 올려야할 기준선과 같은 것입니다.
이 예상수익률에 따라 내가 받는 수익을 계산하게 됩니다. 예컨대 3년 뒤 10만원의 이자를 받는다면, 그 10만원은 '오늘날 내가 손에 쥔 10만원'과 가치적인 측면에서 다릅니다. 그때 받을 10만원을 투자수익률을 계산해 미래 산정해 현재 금액으로 옮겨 놓는 것이죠.
만약 3년뒤 10만원의 수익을 얻을 수 있고, 그 자산의 연 수익률이 5%라고 가정해봅시다. 그때의 10만원은 지금 10만원과 비교해 그 가치가 매해 5%씩 3년에 걸쳐 할인된 금액이나 마찬가지가 됩니다.
이 예상수익률은 전체 시장 수익률일 수 있고, 조직, 단체, 기관의 목표수익률일 수 있습니다. 다른 자산에 투자하지 않았던 ‘기회비용’일 수도 있습니다. 투자자들은 이런 수익률에 따라 미래 가치를 할인해 계산합니다.
-미래가치 현재가치?
'할인'이라는 개념이 이해가 되면 미래가치와 현재가치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인플레이션 혹은 기대수익률을 고려해서 미래에 받을 화폐의 가치를 '현재 기준'으로 측정해 표기하는 것이죠.
특히 채권처럼 고정된 금액을 이자로 받는다면 미래에 내 주머니 속으로 들어올 화폐에 대한 가치 환산이 필요합니다. 10년 뒤 약속된 1만원을 받는다고 해도 분명 지금 내가 갖고 있는 1만원보다 가치가 낮을테니까, 그 부분을 평가하는 게 필요합니다.
만약 미래에 내가 받을 원금과 이자를 모두 합한다면 지금 채권의 ‘가치’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시장에서 채권을 100만원 주고 사왔다면 그 가격에는 미래에 받을 이자금액과 원금이 할인되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무슨 얘기일까요? 예컨대 물가가 매해 7%씩 오른다고 가정해 봅시다. 내 지갑속 1만원을 10년 그대로 묵히면 그때(10년 뒤) 되면 어림잡아 5000원(약 5083원)이 됩니다. 다시 말해 10년 뒤 1만원을 가치를 현재 기준으로 환산하면 5000원이 된다는 것이죠. 매해 7%씩 할인되어 10번을 할인했더니 5000원대로까지 떨어진 것입니다.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액면가(발행가) 10만원인 채권이 있고 매해 1만원의 이자를 받는다고 가정해 봅시다. 시장 수익률(혹은 인플레이션)을 5%라고 가정해 봅시다.
1년 뒤 이자로 받는 1만원의 가치는 5% 할인된 9524원이 됩니다. 또 1년 뒤에는 5%가 할인되어 9070원이 됩니다. 1년이 지나 3년째가 되면 이 돈은 8638원이 됩니다.
3년동안 받은 이자는 액면 그대로 보면 3만원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할인된 값어치를 고려해보면 3만원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9524원 + 9070원 + 8623원 = 2만7232원이 됩니다. 3년 뒤 받을 원금이 할인된 값어치(8만6384원)까지 합하면 11만3600원이 됩니다.
이 채권에서 기대할 수 있는 총 현금흐름을 현재가치로 환산한 게 11만3600원(채권 가격)이 됩니다. 물론 실제 시장에서 채권 가격은 금리와 수요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빅맥으로 비유해보는 할인의 개념
할인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하면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빅맥지수’를 떠올려봤습니다. 같은 빅맥이라는 동일한 제품 가격이 나라별로 달리 평가되고 있는 것이죠.
올해초를 기준으로 한국에서 팔리는 빅맥 가격은 4.11달러였는데 캐나다는 5.56달러였습니다. 중국은 또 3.47달러이고 일본은 3.04달러였습니다. 같은 빅맥이라고 해도 어느 국가냐에 따라서 달러표시 가격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 개념에서 지역 대신 시간이라는 것에 대입해봅시다. 1년뒤, 5년뒤, 10년뒤 각각에 표기되는 빅맥의 가격은 분명 다를 것입니다. 한국만 하더라도 올해 초 빅맥의 가격은 4.11달러였는데 최근에는 5달러를 넘어섰습니다. 빅맥을 기준으로 봤을 때 1년이라는 시간이 안되는 동안 ‘돈의 가치’가 그만큼 떨어진 것입니다.
이 돈의 가치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떨어지는 것’을 경제학에서 말하는 ‘할인’이라는 개념으로 보면 맞다고 볼 수 있습니다.
-듀레이션의 정의
듀레이션을 향해 기반적 지식을 다졌습니다. 이제 좀 본격적인 설명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사전적으로 보는 듀레이션의 설명에 대해 말씀 드려볼게요.
‘채권에서 발생하는 현금흐름의 가중평균의 만기로서 이자율 변화에 대한 채권 가격의 민감도를 측정하기 위한 척도이다’ - 위키피디아
‘투자자금의 평균 회수 기간을 말한다. 채권 만기가 길수록 투자금 회수는 길어질 것이다’ - 기획재정부
둘다 약간 다른 내용인듯 한데 첫번째(위키피디아 정의)는 수정듀레이션이고 두번째(기획재정부 출처)는 매컬레이 듀레이션을 의미합니다. 일단 두번째 문장(매컬레이 듀레이션)에 대한 설명부터 해볼게요.
좀 무리한 비유가 될 수 있겠지만, 듀레이션의 이해를 돕기 위해 건물이라는 자산을 가정해보겠습니다. 100억원이라는 돈을 주고 건물을 샀다고 가정해봅시다. 이 건물은 매해 2억원의 임대료가 나옵니다. 내가 투자한 돈의 본전을 뽑으려면 얼마 간의 기간이 필요할까요? 여기에서 듀레이션의 개념이 시작됩니다.
순수하게 임대료(임대료를 인상하지 않는다는 가정 아래)만으로 100억원을 뽑는다면 50년이 걸립니다. 허나 우리는 앞서 '할인'이라는 개념을 배웠습니다. 50년 뒤에 받을 2억원과 지금의 2억원을 동일하게 계산하면 안됩니다. 분명 2억원보다는 적은 수준의 현재가치를 계산해야 합니다. 이를 계산하면 50년 이상 더 걸리겠죠.
만약 건물 매각까지 고려해본다고 칩시다. 임대료에 건물가격까지 더해지니 회수기간은 더 짧아질 것입니다. 물론 건물 가격도 매각 시점에서 할인된 현재가치를 고려해야 합니다.
만약 10년만 갖고 팔고, 기대수익률을 5%라고 계산한다면, 해마다 5% 이자액을 할인해줘야 합니다. 건물 가격도 매해 5%씩 10번 할인해준 것을 계산해줘야 하구요.
-듀레이션 직접 계산
듀레이션은 매컬레이 듀레이션이 있고 수정 듀레이션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복잡한 수식이 있지만 계산은 의외로 간단하고 쉽게 할 수 있습니다. (매컬레이는 사람 이름이다)
직접 계산을 해봅시다.
문) 5년만기 이표채(이자를 지급하는 채권)가 있다. 액면가는 1만원이고 매 반기마다 400원의 이자를 지급한다. 시장에서 요구하는 수익률(할인율)은 매 반기마다 5%다.
일단, 이 채권을 통해 얻게 될 현금 흐름을 늘어뜨려 봅시다. 앞으로 받게 될 이자와 원금까지 합하면 내가 기대할 수 있는 총 금액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 금액에 각각 ‘시간에 따른 가치 할인’을 반영해줘서 더해주면 됩니다.
무슨 얘기인고 하니 6개월 뒤에 받을 400원에 5%를 할인해주고, 1년 뒤에 또 5%를 할인해주는 식입니다. (할인이 복리처럼 점증적으로 붙는 것이다)
즉, 6개월 뒤에 받게 되는 400원은 5%의 할인을 거쳐 380.9원이 됩니다. 이 금액은 또 6개월 뒤에 5%를 할인받게 돼 362.8원이 됩니다. 그 뒤에 또 5% 할인을 받게 돼 345.5원이 됩니다.
이를 일일이 계산해서 더해주기 귀찮으니까 엑셀표로 만들었습니다.
마지막 행 1만원은 원금입니다. 현재가치로 환산한 현금흐름을 다 합해주면 이 채권의 현재가격(미래 받을 현금흐름의 할인가격까지 고려한 가격)이 나옵니다. 9228원입니다.
여기까지는 일전에 말했던 ‘금리 변화에 따른’ 채권 가격 구하는 사례에 해당합니다. 듀레이션으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한 번더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시간에 따른 가중입니다.
1년을 1로 잡고 반기면 0.5, 1. 1.5 식으로 간다. 분기면 0.25, 0.5, 0.75, 1 이렇게 갑니다. 각 시간의 가중치와 현재할인가치를 곱해주면 됩니다.
시간의 가중치에 따른 현재가치의 합은 38570원이 나왔습니다. 이를 현재가치로 환산한 현금흐름 9228원으로 나눠주면 듀레이션이 나옵니다. 실제 나눠주니 4.179년으로 계산할 수 있습니다.
이런 듀레이션은 이자로 얻는 금액이 커질 수록 만기가 짧을 수록 작아집니다. 즉 본전 찾는 시간이 그만큼 짧아진다는 의미입니다. 듀레이션을 변동성의 지표로 본다면 당연한 얘기가 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단기채가 장기채보다 가격 면에서 더 안전한 것처럼요.
여기서 수정듀레이션의 개념이 더해집니다. 바로 시중금리 1%가 움직일 때 가격이 얼마만큼 변화하는지 계산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때는 금리의 변동성으로 나눠주면 됩니다. 이번 문제에서는 연이율(할인율) 10%를 대입한 1.1을 나눠주면 나옵니다.
실제 나눠보니 3.8정도 나왔습니다. 금리가 1bp 움직일 때 채권 가격이 3.8bp 움직인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됩니다. 1%포인트 움직일 때 3.8%포인트 움직인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듀레이션을 길게 설명했는데, 채권공부를 하는데 있어 듀레이션을 이해하면 변동성, 할인, 이자율과 가격 간의 관계 등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비록 실제 투자생활과는 괴리가 있다고는 하지만 알아둬서 나쁠 것 없는 지표라는 얘기입니다.
또 장기채 가격 변동성이 왜 단기채보다 높은지 채권 투자의 매커니즘도 손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은행처럼 다른 이들의 부채(예금)로 대출을 내줬을 때 듀레이션은 유용한 개념이 될 수 있습니다. 부채에 대한 듀레이션과 대출에 대한 듀레이션을 맞춰주면 '만기 불일치에 따른 위험'을 줄일 수 있는 것이죠.
단순한 예로 내가 10년간 이 건물에 투자했다면 대출 원금 상환 시점도 그에 맞춰야 합니다. 만약 대출 만기가 5년이거나 6년이라고 한다면 조기에 상환해야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는 것이죠. 건물을 급매해 대출을 갚는 일이 없다라는 얘기입니다.
1997년 외환위기를 초래했던 주범도 이런 만기 불일치에서 비롯됐습니다. 당시 종합금융사 등은 이자율이 비교적 싼 단기대출을 받아와서 기업들에게 장기대출을 내줬습니다. (상식적으로 단기채보다 장기채 이자율이 높다.)
그러나 한국의 신용위기 우려가 커지면서 일본 등 해외 국가 은행들이 대출 만기 연장, 신규대출을 거부하면서 종금사들은 당장 위기에 빠졌습니다. 장기대출을 받아올 상황이 못되면서 부도가 난 것이죠. 은행 등 금융사에게는 치명적인 위기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