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바짝 말랐다. 앞이 캄캄하다는 표현이 맞을까. 도무지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았지만 도무지 의욕이 나오지 않았다. ‘참사다’라는 말이 되뇌일 수밖에 없었다.
왜일까. 놓쳤기 때문이다. 무엇을? 국가 정상의 공개 발언, 그것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모두발언이다. 이재명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나온 그의 발언을 놓쳤다. 이 발언을 기다리고 있을 수십 명의 기자단이 생각났다. 허탈한 마음이 그지없었다.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을 했지만 20분 정도는 힘이 빠진 채 서 있었던 것 같았다.
◇한중 정상회담 현장으로
지난 5일 한중 정상회담이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렸다. 4~7일 이 대통령의 방중 기간 최대 이벤트다. 미국이나 일본 등 중국과의 관계에 민감한 나라에서도 다들 주목하는 이벤트다. 인구 5000만의 한국 대통령을 공식 집계 인구 13억이자 G2인 중국 원수가 맞아 대화를 나누는 외교 행사이기도 하다.
다들 알다시피 중국은 사회주의에 자본주의가 접목된 국가다. 경제 체제 자체는 자본주의 국가에 준할 수 있지만 국가 체계는 사회주의 원리에 따라 철저히 통제된다. 국가 존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 나라 언론·미디어는 국가 존엄의 선전 도구일 뿐이다. 미국과 일본과는 또 다른 엄혹한 분위기가 느껴진 것도 사실이다. 기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는 눈이 한둘이 아니라는 점도 신경이 쓰였다.
순방 기자단의 대표 풀단으로 방송기자들과 함께 인민대회당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3시 20분 정도였다. 참고로 풀단은 기자들을 대리해서 가는 대표 기자라고 할 수 있다. 미국 기자단에는 이런 개념이 없지만, 한국 기자들은 언론사별로 돌아가면서 이를 맡는다. 기자 50명이 전부 들어갈 수 없으니 2~3명이 들어가서 워딩을 따고 스케치를 전해준다고 보면 된다. 워낙 오래된 관례 같은 것이라 배경과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취재 편의를 높이는 한 방편이라고 보면 된다. 중요도가 높으면서 모든 기자들이 들어갈 수 없는 행사에 한해서 이런 ‘풀단’이 운영된다.
사실 한중 정상회담과 같은 중요한 행사에는 풀기자가 되도록 많이 들어가는 게 좋다.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어서다. 워딩이나 스케치 등에서 무언가를 놓칠 확률을 낮추는 기대 효과가 있다. 지난 8월에 있었던 한미 정상회담에도 한국 기자들은 6명 정도가 들어갔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펜기자’는 단 둘만 들어가게 됐다. 이 부분부터 조짐이 안 좋았다. 춘추관 사람들도 걱정했다. 환영식, 정상회담, MOU 체결식까지 이어지는 굵직한 행사를 두 명이서 커버해야 하니 부담이 클 것이라고 봤다. 풀기자 중 한 명이었던 나나, 같이 간 후배 기자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춘추관에서는 추가로 펜기자를 붙여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중국 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는데 ‘펜기자’ 개념 자체가 중국 취재 현장에서 통하지 않아서일까라는 추정을 해본다. 그들에게 있어 현장 기자란 ‘워딩을 치는 기자’가 아니라 ‘녹취를 하는 기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처럼 현장에서 바로 타이핑해 속보를 내거나 기사를 쓰는 시스템이 ‘아마도’ 아닐 테니까.
20분 넘게 바깥에서 기다리다가 인민대회당에 들어갔다. 딱 봐도 광활한 실내 대전당이었다. 무엇이든 크고 화려한 중국의 모습이 보였다. 정면으로는 만리장성이 그려진 거대한 그림이 있었다. 그 사이 대형 문으로 수백 명의 군인들이 들어와 도열했다. 100여 명의 중국 어린이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여자 어린이는 꽃을, 남자 어린이는 태극기와 중국 오성홍기를 들었다. 그렇게 또 기다리는 시간이 30분여 지난 것 같다.
◇시 주석의 발언 타이핑을 놓쳤다!
두 정상이 등장했다.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배려해주신 덕분에…”라는 말이었는데, 이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한 말이다. 이 말은 바로 뒤에서 따라붙던 통역 수행원이 전해줬다.
거대 대륙의 지도자가 눈앞에 나타나자 대회장은 꽉 찬 느낌이 들었다. 수백 명의 군인들이 도열해 있어도 빈 것 같던 공간이 채워졌다. 중국 인민해방군 군악대가 장엄하게 애국가를 연주했다. 해외에서 듣는 애국가는 늘 남다르지만,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울려 퍼지니 더 달랐다. 애국심이나 국뽕이라기보다는 뭔가 ‘기댈 언덕’에 대한 편안함, 혹은 감격 정도라고 할까.
군의 사열과 화동들의 환호가 있은 후 두 정상은 정상회담장으로 이동했다. 군인들이 차례로 나가자 중국 카메라 기자들이 뛰기 시작했고, 우리 기자들도 뛰었다. 대회장을 가로질러 정상회담장까지 뛰어가야 했다.
정상회담장은 실내에 있었지만 그곳 실내 면적이 워낙 넓어 100m 달리기를 하듯 뛰어가야 했다. 거대한 문 앞에 또다시 도착했고, 거기서 기다려야 했다. 중국 측이 문을 열어주지 않고 제지했기 때문이다. 정상들이 회의장에 들어가기 전에 카메라를 세팅할 시간을 주는 우리나라나 여느 다른 나라와는 또 다른 풍경이었다.
결국 양국 정상들이 착석했고 문이 열렸다. 기자들은 또다시 정신없이 들어와 자리를 잡아야 했다. 여기서 나와 춘추관 쪽에서 간과했던 사실 하나가 있었다. 바로 통역기, 리시버였다. 당연히 있을 것이라고 여겼던 통역기는 없었다. 통역 부스는 문으로 닫혀 있어 녹음기를 집어넣을 공간이 없었다. 물론 사전에 통역사에게 양해를 구해야 했는데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여유가 없었다.
시 주석의 발언은 이미 시작됐고 그의 말 초반을 놓쳤다. 이런 중요한 순간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중국어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면 그 같은 상황에서 임기응변을 발휘할 수 있었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통역 부스 접근은 몇 번 시도했지만 번번이 제지를 당했다.
지나와서 생각해보건대, 만약 통역 부스와 별개로 녹음을 시도했다면 어땠을까.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시 주석의 목소리는 녹음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본다. 그 소리를 가지고 어떻게든 AI에 돌리면 번역이 가능했을 것이고.
혹은 미리 들어가 상황을 판단할 수 있었다거나 리시버가 없고 통역 부스 접근이 어렵다는 정보를 사전에 들었다면 어땠을까. 다른 나라에서는 상식으로 통할 만한 부분인데 통제 국가에서는 없었다. 취재진에 대한 사전 배려라고 할까.
그도 그럴 것이 이 나라의 언론과 미디어는 사실상 관영이다. 언론사와 독자를 위한 정보 전달보다는 정부 리더를 선전하는 게 더 우선일 것이다. 기자라는 존재는 비판보다는 정부 지침대로 잘 만들어 전달하는 역할이다. 권력의 시녀라고 하기에는 뭐하나, 권력 앞에서는 철저히 ‘권력의 논리’대로 움직여야 한다. 작금에 ‘언론의 자유’가 침해됐다는 비판이 우리나라에서도 나오나 ‘찐 언론의 비자유’ 국가의 상황과 비교하면 ‘귀여운 정도’다.
기자들의 취재 문화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한국 기자들은 현장에서 즉석 타이핑을 한다. 누군가의 워딩을 이렇게 현장에서 받아치는 나라 기자들은 사실 많지 않다. 한자를 써야 하는 중국 기자들은 물론이고 일본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녹음을 하고 사후에 풀어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글의 위대함이 여기서 발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를 너무 당연히 여겼던 것도 실책이었다. 중국 현장, 특히 동시 통역이 이뤄지는 곳에서는 ‘즉석 워딩’ 기자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방송사 녹음본이 있어서 다행...
시 주석의 발언 시간은 허무하게 지나갔다. 뒤늦게 휴대전화 녹음을 켰으나 시 주석의 말은 잘 들리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그의 말은 스피커와 관계자들에게 제공된 리시버를 통해 흘렀다. 넓은 회의실 내에서 그의 육성은 작았고 잘 들리지 않았다. 통역 부스도 막혀 있었고 몇 번을 시도하다가 중국 측에 의해 쫓겨났다.
통째로 그의 발언을 적지 못했다는 생각에 허탈감이 커졌다. 중요 정상의 발언을 듣지도 못했고 적지도 못했다니. 자책감이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5분, 아니 1분이라도 먼저 들어와 상황을 보고 미리 판단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이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순방에 같이 온 기자들만 100명 가까웠고 워딩으로 기사를 써야 할 기자들만 60명 가까운데, 아무것도 못 하고 속수무책으로 있었다는 무력감이 더 컸다. 대안을 마련해야 할 상황이었다. 이미 지나간 것은 잊고 차선책이라도 찾아야 할 상황.
‘방송사 카메라 레코딩!!’
현장 카메라 기자 중에는 ‘전속’이라고 해서 청와대에 소속된 직원이 찍는 영상이 있었다. 그것에 준해 KTV라는 곳도 있다. KTV는 국가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이라 춘추관과도 친했고 협력도 잘됐다. ‘거기 녹음 파일이라도 얻자.’
인민대회당에 같이 온 춘추관 직원들도 서둘러 레코딩을 수배했다. 급한 대로 이 대통령 워딩부터 기자들에게 전달했고 서둘러 시 주석의 워딩을 구했다. 시차는 있었지만 MBC에서 녹음한 파일이 있었고 그것이 전달됐다. 예상했던 시간보다 늦었고 생각했던 형식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시 주석의 발언을 그렇게 채워 넣을 수 있었다.
놀라웠던 것은 춘추관 직원들의 반응이었다. 헐레벌떡 대책을 강구하는 나와 달리 굉장히 태연했다. 본인들마저 당황하면 상황을 더 그르칠 수 있다고 여겨서였을까, 혹은 믿는 구석(KTV)이 있어서였을까, 아니면 ‘자기와 상관없는 일’이어서 마음이 편했을까.
‘책임감’이라는 기준을 놓고 봤을 때 ‘최악의 상황’을 겪고 나니 이후로는 마음이 편해졌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그 위기를 버티고 넘길 수 있다는 점에서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무엇이든 나 혼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겠지만, 누군가도 나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지금에서야 안도감에 이 글을 쓰지만 자칫 큰 외교 참사가 날 수도 있었다. 통역 부스 뒤편으로 중국 측 요원의 제지에도 몇 번이나 들어가려고 했으니 말이다. 만약 그쪽에서 강제로 끌어내려 했거나 혹여 큰소리라도 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정상회담장에서 되도록 큰소리를 내지 않으려 했던 의도도 있었겠지만 한국 취재진에 대해 전보다 유화적으로 대하려 했던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10년 뒤 혹은 20년 뒤에 이 일을 어떻게 기억할까. 시진핑 주석의 워딩을 현장에서 못 쳤던 식겁한 기억으로 남을까. 역사적인 순간에 G2 리더를 가까이서 봤다는 것보다는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느꼈던 ‘멘붕’의 감각이 더 남아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