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득량만
일상에 지친 우리가 해가 떨어지면 찾아가 쉴 곳은 자기 집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기다리는 가족이 있는 집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찾아갈 집이 점점 작아진다. 반기는 사람도 기다리는 사람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제는 삼식이 할비를 좋아할 할미도 작아지고 기다리던 자식들도 뿔뿔이 각자 제 갈 길을 찾아 떠나 버렸다.
한 마디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다시 엉뚱한 기회가 주어졌다. 경로 자격을 취득하는 시기가 바로 오리알이 다시 부화하는 시기다. 부활이 아닌 부화한 후에 날개를 말리고 다시 날기 시작한다. 님을 찾아 따뜻한 남쪽으로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찬바람이 부는 북쪽으로 날아간다. 자식들이 마련해 놓은 손주들의 거친 보금자리가 있는 북쪽이다.
마당쇠로, 보모로, 때론 식모에, 청소부까지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고 해야 하는 전천후 일꾼으로 날아간다.
아직도 가끔씩 비상벨이 울리면 긴급 출동을 하기도 하지만 우리 부부는 십 년 전에 이 과정을 무사히 수료하였다.
이번에 아직도 현역(?) 복무를 하고 있는 두 쌍의 후배 부부를 모시고 위로차 2박 3일 남도 길에 올랐다. 마당쇠 노릇을 하고 있는 할비들은 그래도 가끔 바깥바람을 쉬어서인지 비교적 무덤덤한 편이다. 그러나 전천후 가사 도우미 할미들은 코 끝에 바람이 닫자마자 있는 날개를 맘껏 펼치고 하늘을 향해 높이 날아오른다.
할비들이 미처 따라잡지 못할 만큼 높이 올라간다.
이렇게 우리가 처음으로 날아가 앉은 곳은 전남 강진에 있는 고찰 백련사다. 아직도 이른 아침이라
다성(茶聖 ) 초의선사의 분신인 묵은 배롱나무 한 그루가 조용히 본전을 지키고 있었다.
꽃 없다고 그냥 지나치려는 우리를 보고서는 서운하였는지 눈인사를 건네며 귓속말을 한다.
'꽃 필 때 다시 오세요.
백 년 차 한 잔 대접 할게요.'
200여 년 전 이곳 백련사의 초의와 인근 초당에 유배된 다산이 산속 오솔길을 따라 서로 오가며 교분을 나누었다고 한다. 동백나무와 대나무 그리고 소나무로 들러 쌓인 호젓한 오솔길이다. 다향을 따라 동백숲을 지나 올라가니 월해루가 나왔다. 정자의 위치가 별로 높지 않았지만 전망이 시원하게 튀었다. 이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강진만이 운해 속에 아스라이 내려다 보였다.. 개펄인지 운해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만의 전경이 그대로 가슴에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편안하다. 마치 엄마의 품 같다.
그래서 남쪽 바다가 여기 있었나 보다.
한 숨을 돌렸다가 내려가니 바로 다산초당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는 년 전에 몇 번 다녀간 적이 있다.
초당 뒤 바위틈에 다산이 직접 새겼다는 "丁石"을 다시 보고 싶어 올라가 보았다. 다시 보아도
새겨 놓은 글씨가 단아하고 정갈하다.
문득 다산의 성이 정이라 정석(丁石)이라고 새겼을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으로
"丁石"을 "正石"으로 한번 고쳐 읽어 보았다.
"돌처럼 변하지 않는 바른 믿음"
이 마음, 이 믿음 변치 말자고 은유적으로 正자 대신 丁자를 돌 위에 새겨 놓은 것 같다는 엉뚱한 상상을 해 보았다.
다산 형제가 천주학을 신봉하다 형은 참수를 당하고 동생은 흑산도로 자기는 이곳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중이었다.
여기서 목민심서를 비롯한 300여 권의 책을 저술하였다고 하니 그는 정말 대단한 실학자요 한 시대를 이끈 사상가이셨다. 세도가는 그를 내처 버렸지만 민초틀은 결코 그를 버리지 않았다. 이렇게 남아 있는 목민의 한 사람이 지나치다 그를 그리워하며 이 초당에 다시 찾아와 가슴을 여미고 합장한다.
생생한 역사의 교훈은 아직도 이렇게 살아서 우리를 훈도하고 있다. 이러한 선조들의 교훈을 무시하고 오늘날에도 똑같은 비극의 역사가 이 땅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조형물들이 어지러운 가우도를 한 바퀴 돌아본 후에 완도로 내려갔다. 완도에서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지척간 신지도로 넘어 다시 고금도로 바로 건너갔다. 이곳에는 정유재란 막바지 명량대첩에서 장렬히 전사한 이순신 장군의 유해가 잠시 안장되었던 유적지가 있다.
군복무 중 사병 독서토론 경진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그때 선택한 책이 장군의 '난중일기'였다. 육해공, 해병대 전군이 참가한 결승대회까지 진출하여 운 좋게 큰상을 받았다.
그 당시 쓰고 싶은 주재는 '장군은 전장에서 왜 스스로 목숨을 버렸나?'였다. 전군 대회 참가 전 자대 대회에서 공보참모로부터 주제를 바꾸라는 지시를 받았다. 시대에 부합하지 않는 주제라고 하였다. 대신 장군이 지휘자로써 보여주지 못한 인간미를 택하였다. 특히 부하 장졸에 대해 가혹하리 만치 엄격한 군율로 다스리고 어기면 가차 없이 처단해 버린 기록을 다름대로 평가 기술 하였다.
이후 동년배의 동문 소설가 김훈이 다시 쓴 난중일기에서도 이러한 나의 추측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장군이 잠시 묻혔던 자리에는 장군의 한이 맺어서인지 아직도 풀이 자라지 않고 있다.
늦은 시각 그 자리에서 옷깃을 다시 한번 더 여민 후 오늘밤 숙소로 예약해 놓은 천관산 자연 휴양림으로 들어갔다.
2023, 2, 18
천관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