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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쭈니 JJUNI Mar 04. 2024

EP13) 모르는 척 해드려야 하는 순간들,

‘나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이다…’ 주문을 외워-

카페에서 일을 하고있으면 (사장이든, 직원이든) 정말 다양한 유형의 손님들과 마주해요.

그 중에서 몇 가지를 꼽아보자면 ’나와 유형이 잘 맞는 사람‘ ’농담을 유쾌하고 재미있게 하는 사람’ ‘무례한 사람’ ‘무뚝뚝한 사람’ 등. 정말 사람 성격이 이만큼이나 다양하구나(!)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죠. 그러나 그 중에서도, 우리는 카페에서 일하며 좀 세심하게 신경써야 하는 유형의 손님들이 있어요.


[세심한 서비스를 필요로하는 유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제가 위에 적은 유형이 뭐 ‘이거달라’ ‘음료가 너무 뜨겁다(혹은 너무 차갑다)’ ‘맛이 왜 이러냐 다시 타와라’ 이런 유형이 아니에요.

더 정확한 이해를 위해 제 일화를 이야기해드릴까 해요.


가게에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 손님이 오셔서 초조하게 앉아 일행을 기다리고 계셨어요.

누가 봐도 불안해보이는 움직임과, 자꾸만 만지작거리는 핸드폰이 ‘아 저 분에게 무슨 일이 있으신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이야기를 직접 듣기 전까지는 모두 ‘추측’에 불과하니 그저 일행분이 오시기만을 저도 카운터에 서서 기다리고있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슷한 연배의 일행분이 오셔서 커피를 주문하시고, 자리에 앉아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시더라고요.

“언니 잘 지냈지? 뭐 어디 아픈곳은 없고?”

저는 별 다른 일 없이 두 분이서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시길래 ‘아 그냥 내 과한 생각이었나보다’하고 제 할 일을 하고있었죠. 그렇게 30분쯤 지났을까요. 여자 일행분이 자꾸 왔다 갔다 하며 무언가를 테이블로 나르고 계시더라고요. 처음에는 ‘아 물이 필요하신가보다‘ 하고 별다른 신경을 두지 않고 있었는데. 그 행동이 3~4번 반복되고 둘 사이에 오가는 대화소리가 무척이나 작아졌다는 사실에 시선이 가더라고요. 그리고는 알았죠. 아, 저 분에게 무슨 일이 있으신게 맞구나.

일행분이 나르고 계셨던건 휴지였고, 처음 불안해보이던 손님은 계속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사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계셨어요. 하필 한산한 시간이기도 했고, 제가 있던 휴계실과 자리가 가까워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들렸죠. 처음 불안해보이던 손님이 지인의 권유에 어떤 기관에다가 돈을 맡겨놓은 모양이었어요. 다시 그 돈을 돌려달라고 전화해도, 자꾸 안된다며 피하기만 하는 지인에게 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온거죠. 손님의 일행도 그 지인과 아는 사이 같았어요. 2시간 가량의 시간이 지나 두 분은 이야기는 끝이 났어요. 결국, 일행분이 돈을 가져간 지인에게 전화해 당장 돌려주라며 버럭 화내며 지인분이 있는 곳으로 함께 가는걸로 해결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2시간 동안 사장인 저는 뭘 하고 있었을까요?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모르는 척 보이지 않는 곳에 들어가 쉬는 방법도 있죠. 하지만, 내 가게에서 누군가가 사연이 있어 눈물 흘리고 있는데 그냥 있을 수 없더라고요. 일단 셀프바에 휴지가 떨어지지 않게 한 뭉치 다시 챙겨다 넣고, 손님을 받을 때도 조용 조용 말하며 차분한 분위기를 유지해갈 수 있게 노력했어요. 혹시 필요한게 있는데 휴게실에 있는 저를 부르기 어려우실까봐 계시는 내내 카운터에 서있었죠.(일행분이 뜨거운 물을 가지러 몇 번 오셨어요!)


지난 3월 1일에, 저녁 7시가 넘은 시간. 가게에 50대로 보이는 어머님 한 분이 들어오셨어요. 두꺼운 패딩에 수면잠옷을 입고 전혀 외출 준비를 하지 않은 상태로 와서 음료를 한 잔 주문하고 자리에 앉으셨죠. 아파트 바로 앞이기도 하고, 저녁 시간대라 그저 커피가 한 잔 하고싶어서 나오셨구나 하는 가벼운 생각에 음료를 드리고 다음 손님을 받으며 시간을 보냈어요. 그 손님은 8시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가셨죠. 그 손님이 자리에 앉아 계시던 때에, 가게에 자주 오시는 30대 단골 손님이 오셔서 음료를 시키고 그 옆 테이블에 앉아 한참을 있다가 가셨어요.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저한테 와서 말해주시더라고요.

“옆에 아주머니 엄청 우시던데요…?”

저는 너무 당황해서 ‘네….? 저는 몰랐는데요…? 음료 주문 하실 때는 괜찮으셨는데요….?‘ 하고 말하자, 그 손님이 말씀하시기를,

“50대가 넘어서 누가봐도 잠옷인 복장으로, 전혀 외출 준비를 하지 않은 상태로 나온건 집에 무슨 일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요. 젊은 사람들은 가볍게 입고 많이 나오지만, 어른들은 보통 잘 그러지 않아요.” 하시며 본인의 어머니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불우했던 어린 시절에, 아버지랑 어머니랑 싸우고 나면 어머니가 집을 나가던 때의 이야기요.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옆 테이블 어머님도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과 통화를 하며 울고 계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손님들이 다 나가고 마감청소를 하고 있을 때, 계속해서 드는 죄책감과 죄송스러움에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아 그런 사연이 있는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친절하게 주문을 받을걸’ ‘필요하시다면 휴지라도 좀 가져다 드릴걸’ 하고 말이죠. 물론, 모르는 척 하고 있는게(진짜 모르긴 했지만) 더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요.


흠,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해볼까요?

저희 가게는 그나마 좀 넓고(34평) 구석 테이블이 있어서, 소개팅을 하러 오시는 손님들이 종종 있어요. 그 중 제 기억에 남는 여자 손님도 한 분 계시죠.

그 손님은 늘 먼저 오셔서 거울을 보며 얼굴을 살피시고 화장실에 들러 옷을 점검하시고 자리에 앉아 일행분을 기다리셨어요. 소개팅인줄 어떻게 알았냐면, 처음 일행분이 오시면 어색하게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서로 인사를 나누고 관심사를 묻는 대화에 딱! 눈치를 차렸죠. *후후*

그렇게 자리가 끝나고 두 분이 나가시길래 그냥 혼자 속으로 ’좋은 인연으로 이어지셨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그 일을 잊었어요. 그렇게 다음 주가 된 주말. 또 그 여자분이 오셨어요. 그리고 들어온 일행분은 다른 남자셨고(?) 지난번과 똑같은 형태로 대화가 이어졌어요. 그 때의 제 심정, 다들 아시나요? 물음표만 떠다니고 그 사이에서 느낌표를 찾기 위해 어리둥절한 마음을 다스렸던…제…심정을…. (심지어 그 뒤로도 한 달에 2번은 꼭 소개팅하러 오신 것 같아요.)그리고 제가 낸 결론은 하나에요.

‘모르는 척 하자.’ ‘나는 처음 본 사람이다.’

그래서 오시면 말도 걸지 않고 그저…바라만 볼 뿐입니다…행복하세요…!

슬픔 걱정 고민 모두 다 사라져랏…


+다음 이야기는,

’저는 카페NPC입니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나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죠.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요즘 넬레노이하우스 작가님의 ‘영원한 우정으로’라는 책을 읽고 있어요. 모두 책내음 가득한 3월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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