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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쭈니 JJUNI Mar 13. 2024

EP17)누가 내 머리에다 똥쌌어!(카페 ver.)

막힌 변기만 보면 도망가던 내가, 변기 뚫기 마스터 찍기까지의 여정

“사장님…화장실에 한 번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모든. 어떤 유형의 자영업을 운영하고 있던 간에 우리는 [화장실]이라는 공간을 빼놓을 수 없죠.

손님들에게도 필요하고, 운영하고 있는 사장님들에게도 꼭 필요한 공간인 화장실. 물론, 손님들은 사용하고 가면 끝인 공간이지만.

자자, 사장님들 앉아보세요. 물론 독자님들도 앉으시구요. 자- 그럼 저랑 화장실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사실 다른 주제에 대한 글을 쓰려다가 제가 방금(3월 12일 오후 2시 30분경) 정말 거-하게 막힌 화장실을 뚫고 오는 길이라 그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그럼 제 은밀하고도 위대한 화장실 이야기 함께 하시겠어요?


저는 출근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청소’에요.

머신기만 준비를 끝내 놓고 테이블을 닦고 바닥을 쓸고 닦고. 그리고 장갑을 끼고 봉투를 들고 화장실로 향하죠.

제가 운영하는 매장 주변에는 다른 가게들이 없어서(밤 늦게까지 하는 곳은 더더욱 없어요) 밤 사이에 화장실이 더러워지거나 할 일은 없어요.

다만, 어르신들이 많기도 하고(물을 내리는걸 잊어버리신다거나, 커버에 묻거나 튄다거나. 이건 나이가 들면 자연스러운거니까요) 고기집. 그것도 소고기집 식당 옆에 있는 카페의 화장실이라 더욱 청소를 열심히 자주 해야해요.(자세한 설명은 생략할게요…상상에..맡기겠….읍읍…)

물 청소는 기본이고 식당 이모들이 알려준 황금 세제 레시피로 칙칙 뿌리고 닦아가며 청소를 한답니다. (깨끗해진 화장실을 보면 기분도 상쾌해져요!)  


제가 지금까지 일하며 화장실을 직접 뚫어본건 지난 12월이 처음이었어요. 제가 직원일 때는, 사장님이 옆 집 삼촌에게 부탁해 대신 뚫어달라고 하거나 사람을 불렀기 때문에

‘변기 막히는게 무슨 큰 일인가?’ 했지만. 네, 제가 12월. 정말 (그때도) 거하게 막힌 변기를 뚫어보면서 ’변기 막히는건 큰 일이다.‘라는 경각심을 다시금 마음속에 깊이 새겼어요.

꼭 ‘가게가 오늘 좀 바쁘다..?’하는 날이면 변기가 막혀있는데, 보통의 경우에는 적당한 조치만 취해준다면 바로 뚫렸어요. 하지만 그 날은 유독 손님들이 많기도 했고, 취한 분들은 더더욱 많았죠.

12월의 그 날. 손님도 많고 이리뛰고 저리뛰고 하던 차에 한 손님이 오셔서 제게 말씀하셨어요.

“사장님…화장실 막힌 것 같은데, 가서 확인해보셔야 할 것 같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 겁이 났어요. 뭔가….엄청난게 저를 기다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죠. 아니나 다를까요. 화장실에는 구렁이가 한 마리 앉아 있었고, 심지어는

술에 취하신 손님들이 많았어서 그런지 이미 갈색으로 가득한 공간 위에 다른 분의 것 처럼 보이는 갈색 덩어리가 더 올라가 있었죠. (사람마다 구별 가능한거..아시죠?)

물론 저도 사람인지라 처음에는 더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곧, 아 내가 이거를 빨리 치워야 손님들이 불편하지 않겠구나 했죠.


제가 그 변기를 혼자서 뚫어본다고 1시간 동안 실랑이를 했어요. 세제를 넣고 뜨거운 물을 넣어 기다렸다가 내려보기도 하고(네박사 참고), 락스를 엄청 붓고 기다렸다가 내려보기도 하고(옆 집 이모들 팁 참고). 하지만 결국에는 옆 집 삼촌에게 도움을 청하는걸로 마무리를 지었죠.

삼촌도 변기를 뚫고 들어오면서 하는 말씀이 “와…나도 십년을 넘게 일하면서 이렇게 안뚫리는건 처음이다.” 였으니, 어느정도였는지 감이 오시나요?

이 때 제 한계를 경험했어요. 혼자서 하는 가게인데, 언제까지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다짐이 들었죠.


그리고 오늘인 3월 12일.

한 손님에게 커피를 드리고 돌아서려 할 때 그 손님이 제게 말했어요.

‘저기. 내가 아까 화장실을 가려는데 누가 나오더라고? 근데…쓰읍-….이게 느낌이 좀 이상해서 나는 안들어갔는데….음…화장실이 막혔을 것 같더라고?’

처음 저 말을 들었을 때는 ‘보신건 아니니 막히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매장이 엄청 바쁘기도 했고, 매장 손님이 많아 타고, 드리고 치우느라 더더욱 쉴 수 있는 시간이 없었어요.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나 화장실 얘기를 해주신게 떠올라 가벼운 마음으로 화장실로 찾아갔어요.

자, 일단 화장실이라는 공간 자체가 엄청 더러워져있었어요. 남자 소변기에도 이상한 갈색 덩어리가 묻어있었고(왜지?) 여자화장실 커버에도 볼 일의 흔적이 묻어있었으며 남자 화장실 변기 커버는 내려가있었어요.

자. 심호흡을 하고 하나 둘. 남자 변기 커버를 올리고 그 내용물을 본 순간 저는 감탄했어요. 정말 제 팔뚝만한 굵기의 구렁이가 3덩어리나 들어있었기 때문이었죠. 그 위에는 담배꽁초가 4개정도 떠다니고 있었고 변기는 말 그대로 [꽉] 막혀있었어요.


사실, 누가 내 카페에 똥을 싸고 갔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하지만, 정말 사장 된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막혔으면 막혔다고. 내가 막았으면 막았다고 이야기를 해주셨으면 하는 바램이 좀 커요. 지난 12월의 일 처럼, 막힌 곳 위에다가 또 볼 일을 보는 경우가 없게끔. 또는 다른 손님들이 그 광경(?)을 보지 않게 끔 할 수 있게 제가 미리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하지만 저라도, 가게 화장실을 막는다면 아마 부끄러워서 말도 못하고 후다닥 도망가지 않을까요…?


물론 저도 비위가 무척이나 약한 사람인지라, 오늘 화장실을 뚫는 것도 혼자서(장하다 나 자신) 해냈지만 왔다갔다 안절부절하며 1시간 30분 정도 걸렸어요.

이제는 ‘변기가 막힌다 -> 출동 -> 해결’ 의 레파토리를 따라 완벽하게 처리 할 자신이 있죠. 오늘도 시원하게 다시 내려가는 물을 바라보며 한 단계 성장하는 사장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김변기뚫기마스터입니다만. 필요한 곳에 불러주세요. 예전에 도망치던 김사장은 이제 없습니다.

제 카페만 오면 화장실 신호가 온다는 친구가 있습니다.

이제 저 친구는 홍콩에 있으니 제 변기는 안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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