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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룰루 Jul 07. 2019

#6. 임산부의 취미생활

나는 지구력은 없지만 추진력은 대단하다. 

그래서 안 해본 취미생활도 없고, 그렇다고 꾸준히 잘하는 취미도 없다.      


아기가 생긴 걸 알기 전에 과도한 회사 업무로 1년 넘게 하던 발레를 그만두고 일이 좀 한가해지면 가을에 10km 마라톤, 겨울에 남편과 왈츠를 하려고 벼르고 있었다. 그러나 발레를 그만두고 한 달 만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몸이 근질근질했다. 가만히 있으면 병이 나는 사람인지라 뭔가 할 일을 찾아야 했다.     


첫 번째로 찾은 취미는 서재 방 한구석에 5년째 방치된 우쿨렐레. 입사 첫 해에 질러버린 내 민트색 우쿨렐레는 음치 주인을 만나 여태 그냥 인테리어 소품으로 서 있었다. 악기도 무겁지 않고 소리도 조용해서 태교도 할 겸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저녁에 개인교습을 받았다. 휴직 전에는 회사 야근과 회식을 뿌리치고 수업을 들으러 갔고, 학교를 다니면서는 수업이 끝나고 도서관에서 한 시간 정도 밀린 과제를 하다가 우쿨렐레를 치러 가곤 했다. 워낙 칭찬을 잘해주는 선생님을 만난 덕분에 음악 천재가 된 기분으로 즐겁게 배웠다. 갈수록 어려워져서 어느 순간 나의 추진력이 사그라들고 지구력이 고갈되는 시점이 오긴 했지만.      

민트색 우쿨렐레와 하와이안 스트랩

두 번째는 필라테스였다. 임신 초기가 하필 1년 중 회사가 가장 바쁜 시기여서 산부인과에서 피고임이 있다며 집에서 쉬라고 경고를 받은 덕분에 처음 한두 달은 회사 말고는 어디 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온 몸이 근질거리고 몸은 찌뿌둥해져서 운동이 가능하다는 16주가 되자마자 동네 필라테스 학원을 등록해버렸다. 힘들었다. 임산부 반이라고 해서 들었는데 선생님이 내가 임산부라는 사실을 잊은 게 아닐까 싶게 근력운동이 힘들었다. 나날이 배가 불러오느라 사실 몸이 좋아지는지 근육이 붙는지 알 수도 없었다. 그냥 언젠가 다 좋겠지 라는 마음으로 12월 추운 겨울 패딩을 꽁꽁 싸매고 운동을 하러 갔다.      

한낮의 필라테스. 인스타용 사진.

주말 빼고 평일 5일 중 하루 저녁은 우쿨렐레, 두 번은 필라테스를 다니다 보면 의외로 굉장히 힘들다. 이게 취미인지 돈 내고 고생을 산 건지 의구심이 드는 시기가 온다. 말이 좋아서 취미이지 뭔가를 배운다는 것은 늘 즐겁지만은 않다. 그래도 재미있는 사실은 허겁지겁 수업을 쫓아다니며 힘들다 힘들다 해도 순간순간의 재미와 어느 순간 내가 대견스러운 기분이 아주 좋다. 그 마음에 임신기간 내내 바쁘고 즐겁게 산 것 같다.     

 

아기를 낳고 아기가 눈을 말똥말똥 뜨고 나를 볼 때 우쿨렐레를 치면서 노래를 불러준다. 얼마 전에는 우쿨렐레 소리를 듣고 아기가 웃는 모습을 보면서 우쿨렐레 동요집을 질렀다. 네가 노래를 부르고 춤추는 나이가 될 때까지 엄마가 열심히 연습해서 연주해줄게. 하는 마음이었다. 아기가 잘 때는 (등 센서가 발동하기 전까지는) 그 옆에서 필라테스하며 배웠던 동작들을 따라 하며 욱신거리는 몸을 달래곤 했다. (등 센서가 울린 이후로는 남편이 아기를 안고 있어야 가능해졌지만)      


마지막 취미는 브런치다. 남편과 우리 이야기를 어딘가에 기록하고 싶다는 마음에 브런치를 시작했다. 사실 임신 40주에 만발의 준비를 하고 아기를 기다리는데 귀여운 아드님이 도저히 나올 생각이 없길래 남편이랑 이것저것 수다를 떨다 든 생각이었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대로 글을 써서 올렸고 임신 40주 6일 유도분만을 위해 입원하기 전날 작가 합격 통보를 받았다. 다시 생각해도 선물 같은 순간이었다. 학교도 방학이고, 집에서 육아를 하면서 가슴이 답답해질 때 짬짬이 (남편이 아기를 안고 있을 때?) 글을 쓰다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인생에 가장 소중한 순간을 멋진 방법으로, 내가 좋아하는 글로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이 즐겁다.      


임신 10개월의 대부분을 학교와 새롭게 시작한 취미생활로 평일 내내 허덕이며 힘들다, 내가 왜 이러고 고생을 사서 하나 투덜거리며 보냈다. 그리고 투덜거리다가도 재미있다며 빠짐없이 열심히 이것저것 해왔다. 아마 나의 지구력의 한계로 이 중 몇 가지는 또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겠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아주 즐겁게 하고 있다. 


발버둥 친 덕분에 나의 세계는 또 한 뼘 넓어졌다. 아마 나는 평생 이러고 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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