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다양성 존중하기
이 글을 적는 첫번째 이유는 최근 읽은 두가지 책 ‘무인양품 : 보이지 않는 마케팅‘과 ‘처음 만나는 문화 인류학'에 대한 감상을 기록하기 위함이고, 두번째 이유는 디자이너 혹은 서비스 제작자의 관점에서 문화적 다양성을 반영하기 위한 마인드셋에 대해 고민하기 위함이다.
문화 충격(Culture shock) 라는 말은 최근가지도 인터넷 상에서 밈처럼 굉장히 자주 쓰이는 용어이나, 실은 인류학자 칼레르보 오베르그(Kalervo Oberg)가 처음 사용한 나름 학문적인 단어다. 최근에는 단순히 놀라거나 본인의 문화권과 다른 행동, 생활양식을 보고 충격을 받았을 때 등 비교적 소극적 목적으로 사용되지만, 본래 '문화충격'은 문화의 차이로 인해 물리적/심리적으로 병적 현상이 야기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쓰이곤 했다.
그렇다면, 문화는 왜 ‘충격'이 될까?
이유는 몹시 간단한데 거의 모든 사람들이 ‘문화적 편견’에 갇혀 살기 때문이다. “나는 외국인 친구들도 많고 오픈 마인드라 문화적 편견따위 없는데..” 라고 반기를 드는 사람들을 위한 좋은 사례가 아래에 있다.
미국의 어느 벼락부자가 아름다운 아내를 그리기 위해 당대 가장 뛰어난 화가 피카소에게 그림을 요청했다. 완성된 작품을 보니 완전한 입체파 작품(매우 추상적)이었다. 너무 놀라 부자가 자신의 아내는 이렇게 생기지 않았다며 사진을 보여주자, 피카소는 이렇게 말했다. “정말 이렇게 생겼단 말이오?”, “정말 이렇게 작단말이오?”
- "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 중 일부 발췌
그렇다. 모습이 작게 축소되고 색감이 흑백으로 변질된 사진이든, 추상화된 피카소의 그림이든 ‘실제 모습과 같지 않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것이다. 사진이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것 역시 문화적 편견의 일종이다. 실제로 아프리카의 한 마을에서 사진으로 촬영한 모녀의 모습을 당사자들에게 보여주었을 때 그들은 끝까지 그것이 자신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한다.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것은, 이처럼 너무 당연해서 인지조차 하지 못한 아주 디테일한 부분까지도 고려해야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문화적 동화’는 ‘당연한 것을 탈피하는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 성공적인 세계화 역시 이러한 문화적 동화에서 시작된다.
앞서 언급한대로 문화적 동화를 위해서는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탈피하는 것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들을 고려하면 좋을지 아래와 같이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1. 고맥락문화인가 저맥락문화인가 (from. 무인양품 보이지 않는 마케팅)
문화 인류학자 Edward T hall은 문화를 고맥락 문화와 저맥락 문화로 나눈 바 있다. 고맥락문화는 문맥적단서를 통해 분위기를 파악하며 말보다 태도로 상황을 고려하는 것으로, 주로 우리나라나 일본같은 유교국가가 이에 속한다. 이들은 집단적 성향이 강하고 관계성을 중시한다. 반면 저맥락문화는 명확한 소통규칙을 따르며 분위기나 맥락 파악보다는 오직 “말”로만 의사소통을 하는 경우가 많다. 개인주의적 분위기가 있고, 분류하기를 좋아한다. 대부분의 서양 국가가 여기에 속한다.
실제로 고맥락/저맥락 문화는 사람들의 생활 습관같은 작은 요소부터 말의 어순 따위같은 뿌리 깊은 요소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이를 달리 설명하면, 해당 문화권에서 살아온 모든 사람들의 일거수 일투족, 학습 양식, 말, 행동, 관계 등 모든 것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고맥락과 저맥락문화권의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고려사항의 첫번째 항목으로 해당 구분사항을 넣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근간이자, 가장 많은/넓은 영역에서 서로를 구분짓는다. 해외로 진출 혹은 상품을 수출하려고 한다면, 당장 커뮤니케이션 단계부터 해당 국가가 고맥락 문화인지, 저맥락 문화인지 판단하고 행동할필요가 있을 것이다. 꼭 일적으로 다른 문화권의 사람을 만날 일이 없더라도 알아두면 다른 문화권 사람에게 “악의없는 무례함” 저지르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2. 해당 나라 국민의 선호 특성 (from. 무인양품 보이지 않는 마케팅)
‘문화는 인간이 배우고, 전파하는 것이다.’
‘문화는 동일한 가치관을 지닌 집단을 통해 계승되며 서로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공유된다.’
- "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 중 일부 발췌
문화는 앞서 설명한대로 ‘고맥락인가' ‘저맥락인가’에 따라 크게 분류되지만, 이것이 유일한 분류 기준은 아니다. 국가별로, 민족별로, 나이대별, 집단별로 상이한 문화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인간 특성이 다양하고 셀 수 없는 것과 문화의 다양성은 정비례관계를 이룬다. 그중에서도 특히 ‘국가’는 역사, 영토 등 상당부분 공유되고 공감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서 좋은 구분책이 되어준다. (물론 항상 ‘국가마다' ‘문화가 다른 것’ 은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네덜란드의 사회심리학자 호프스테더(G.Hofstede)가 각국을 비교한 흥미로운 자료가 아래에 있다. 세계의 문화를 4가지의 기준으로 평가하고 각국 문화의 특성을 규정한 것이다.
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지표도 있고, 처음 알게된 지표도 있었다. 필자의 경우 브라질의 권력격차가 몹시 큰 것이나, 일본의 불확실성 회피 지수가 매우 높은 것이 후자에 해당했다. 그러나 해당 자료 역시 ‘각 국가별 평균 자료’일 뿐 디테일하게 보이지 않은 구분점을 대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본 -무지의 브랜드 이미지에 관한 흥미로운 자료가 있었는데, 이는 나라별로 무지의 브랜드 이미지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것이다. 품질이 좋다, 디자인이 좋다 등 각 나라별 공통적으로 높은 수치를 기록한 것도 있었지만 나라별 정반대의 특성을 띄는 항목들도 있었다. 이를테면 중동국가에서는 무지의 브랜드 이미지 중 ‘ellegent’, ‘innovative’ 관련 항목 수치가 높았는데 이 항목들은 타 국가에서 아주 낮은 수치를 기록한 것들이었다. 또 이탈리아인들이 무지 브랜드를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일본어가 쓰여있기 때문'(일본어 글자를 귀엽게 인식함) 인 점도 흥미롭다.
3. 문화 인류학적 배경과 특성 (from 처음만나는 문화인류학)
'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은 이렇게 국가별, 집단별 문화가 분화된 이유에 대해 꽤나 논리적인 설명이 되어주는 책이었다. 특히 유전적 요인과 진화론을 들먹이며 인종과 기원에 대한 논의를 하는 것은 문화적 다양성을 고려할 때 철저히 배제해야한다는 말을 먼저 하고싶은데, 실제로 전체 인류는 99.8%의 유전자를 공유하며, 나머지 0.2%중 9%만이 인종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즉, 오늘날 우리가 가지는 ‘인종개념'이라 함은 생물학적, 유전적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편견에 불과한 것이었다. 따라서 사회적-후천적으로 그들을 둘러싼 정치, 환경, 교육, 또래집단, 인구통계학적 특성 등을 꼼꼼히 고려하고 따져봐야한다.
그렇다면, 디자이너 관점에서 이걸 어떻게 써먹을 수 있을까. 답은 아주 간단하고도 어려운데,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디자이너는 때때로 본인이 ‘사용자' 포지션을 취하고 가설을 세우기도 한다. 특히 기한이 타이트한 프로젝트나 업무에서는 본인의 경험에 의한 가설이 검증되기도 전에 다음 단계를 밟아야할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그러나 세계화, 문화적 다양성을 고려한 보편적인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에게 익숙한 방식'을 철저히 의심하고 배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특히 하나의 특정 국가를 타겟으로 무언가를 전파해야할 때에는 뾰족한 정량적 리서치에서 그치지 않고, 오래도록 해당 국가 사람들, 사용층을 밀도 높게 관찰하며 라포(상호 신뢰관계)를 형성하거나 그에 준하는 자료 조사를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조사 및 검증을 반복하는 절차는 이전의 디자인띵킹(Design Thinkig) 방법론들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 너머에 존재할 사용자를 생각해야하는 점, 나의 익숙함과 대비되는 해당 국가(들)의 주목할만한 리서치 자료들을 서비스에 녹여내야하는 점 등에서 확연히 다르다. 무인양품처럼 떠오르는 브랜드 이미지에대한 키워드 조사를 국가별로 진행하는 것도 좋은 시작점이 될 수 있겠다.
지금 젊은이들은 다른 문화와의 만남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뛰어들어 부딪히려 한다. 큰 벽은 있을지 몰라도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과 공감하는 마음은 똑같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면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
-'무인양품 보이지 않는 마케팅' 중 일부 발췌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인터넷 망이 보다 빨라지고 있지만, 그것이 문화적 동화를 의미할 수는 없다. 현지화와 세계화의 벽을 자유롭게 넘나들기 위해서는 결국은 인간, 더 구체적으로는 제작자의 피나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다름을 구분하여 유형화하는 것은 곧 기계의 몫이 되어버리겠지만, 그 속에 깃든 이야기와 사람들의 본질적인 감정에 공감하는 것은 오로지 인간만이 할 수 있다. 그 것이 우리가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과, 생활 양식에 귀기울여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