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랄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싫어하는 과목을 하나 고르라고 한다면, 아마 많은 이들이 주저 없이 '수학'을 떠올릴 것이다. 그 반응은 그리 이상하지 않다. 학교에서 배우는 수학은 대체로 흥미를 자극하기보다 부담을 먼저 안겨주는 과목이기 때문이다. 수학을 배우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비슷한 질문에 도달한다.
"그래서 이걸 어디에 쓰지?"
"수학은 왜 배워야 하는 걸까?"
그러나 이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 가운데, 그 답을 진지하게 궁금해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은 수학이 어렵고 하기 싫다는 감정이 먼저 앞선 결과일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거꾸로 돌려볼 수 있다. 과연 이 질문을 받았을 때, 우리는 제대로 대답할 수 있을까? 어른이 된 우리는 아이들에게 수학을 왜 배워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명확한 언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의 일상은 수학으로 가득 차 있다. 시간과 거리, 돈과 비율, 선택과 확률까지 수학이 개입되지 않는 순간은 거의 없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수학이라고 인식하지 않을 뿐이다. 어쩌면 설명을 듣는다 해도 끝까지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수학'이라는 학문과, 학교에서 배워온 '수학'은 사실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해하는 수학, 그리고 과거에 존재했던 수학은 계산의 집합이 아니라 하나의 언어에 가까웠다. 반면 우리가 배워온 수학은 문제풀이와 유형 암기에 갇힌 채, 교과서와 문제집 속에서만 존재하는 체계가 되어버렸다.
고대의 사상가들은 수학과 철학을 분리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수학은 상상하고, 질문하고, 토론하며 세계의 구조를 탐구하는 사유의 방식이었다. 수학은 단순히 숫자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시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생각을 가장 정확한 형태로 다듬기 위한 단계였고, 인간 이성이 스스로를 검증하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수학은 계산 이전에 사유였고, 공식 이전에 질문이었다.
숫자를 빠르게 다루고 공식을 정확히 적용하는 능력이 수학의 전부인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계산은 수학의 본질이 아니라, 사유가 잠시 머무는 도구에 불과하다. 수학이 진정으로 수행하는 일은 수와 기호를 통해 세계의 관계를 언어처럼 서술하는 것이다. 자연어가 의미의 흔들림을 감내하는 대신 풍부함을 얻는다면, 수학은 모든 모호함을 제거하는 대가로 절대적인 명확성을 선택한다. 그렇게 수학은 답을 산출하는 학문이 아니라, 생각이 스스로 속이지 않도록 감사하는 가장 엄격한 언어로 존재한다.
그렇다면 수학은 도대체 무엇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세계를 설명하는 언어라면, 왜 굳이 이렇게 만들어야 했을까. 수학이 언어라면 수학은 자연을 기록한 것일까, 아니면 인간 이성이 스스로를 시험하기 위해 세운 규칙의 집합일까. 숫자와 기호로 이루어진 이 체계는 현실을 떠나 추상 속으로 도망친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정확하게 현실을 겨냥한다.
수학을 이해한다는 것은 공식을 아닌 것이 아니다.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하려 했는지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리고 이 질문의 끝에서 우리는 비로소 계산을 넘어서, 수학이라는 사유의 본질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