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 외로움을 느끼고 어느 순간에 방에서 벗어나고 싶어할까? 그들의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직접 만나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터이다. 우리는 지난 8월 7일, 1인 가구원이 남을 필요로 하는 상황을 발굴하고 그를 해결하기 위한 스마트 스피커 서비스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코크레이티브 워크숍(co-creative workshop)을 진행했다. 코크리에이티브 워크숍은 문제 해결을 위해 당사자와 함께 의견을 모으는 형태이기 때문에, 입주민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경험이나 문제점들을 효과적으로 발굴해낼 수 있었다. 또한 ‘쉐어원’ 입주민뿐만 아니라 코리빙 하우스(‘쉐어원’ 및 ‘맹그로브’) 매니저, 그리고 자취 경험이 있는 혼잘살 연구원도 함께 참여하여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더욱 발전・보완된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이번 호에서는 우리가 워크숍을 준비하기 위해 무엇을 고민했는지, 워크숍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그리고 그 결과로 모인 사람들의 값진 생각에는 무엇이 있는지 공유하고자 한다.
코크레이티브 워크숍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참가자들이 경험한 문제 상황을 발굴할 것인지, 혹은 특정 서비스의 개선 방안을 수집할 것인지 등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참가자들의 의견을 모으기 위한 프로그램들의 구성 방식 역시 말할 것 없이 중요하다. 특히 우리가 진행한 워크숍은 3시간의 매우 짧은 프로그램이었기에 5분 단위로 당일의 계획을 짜야만 했다. 이렇듯 목표 설정부터 행사 진행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입주민들의 입장을 고려하며 이런 저런 고민을 이어 나갔다.
워크숍을 진행하기 약 한 달 전, 혼잘살 연구원들은 ‘쉐어원 신림’ 입주민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다. 건물 내에서는 어떤 종류의 소통이 이루어지는지, 다른 입주민들과의 소통을 필요로 하는지 등을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이야기를 들어 본 결과 이곳 사람들은 활발한 대화를 나누기보다는 주로 공동 생활에 필요한 사안들 위주로 말들이 이어지는 듯 보였다. 공용 공간에서도 서로를 배려하듯 짧게 오고간다는 목례가 이를 방증하기도 한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모두가 건물 안 사람들과 친해질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다 함께 모여 서로를 소개하고, 훗날 친해진다면 식사나 문화 생활을 함께하고, … 대부분의 마음 한 켠에는 어느 정도 친목에 대한 소망이 있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해 ‘쉐어원 신림’의 공식 모임이 취소된 탓에 실현되지 못한 것이다. 또한 ‘쉐어원 신림’의 지역 특성상 공부나 취업 등에 전념하는 입주민들이 많기에, 말을 걸면 부담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하는 뭇 의견도 있었다.
서울에 올라온 지 얼마 안 돼서
직장 사람들 말고는 아는 사람이 없는데,
건물 사람들끼리 함께하는 자리가
만들어지면 좋을 것 같아요.
_'쉐어원 신림' 입주민 인터뷰 중
입주민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다 함께 모여 의견을 나누는 자리가 필요해 보였다. 첫째, 연구원들의 입장에서 인터뷰는 어쩔 수 없이 입주민에게 제한적인 답변을 유도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기억 저편에 있는 경험을 제대로 환기하기 위해, 그들끼리 자연스럽게 의견을 나누고 공감하는 자리가 필요해 보였다. 둘째, 입주민들과 유대감 또는 신뢰감을 쌓을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잘살 연구소가 ‘입주민들의 나은 생활을 위해 고민합니다’라고 열 번 말하는 것보다, 한 번 그들과 함께해 보는 것이 더욱 진정성 전달에 효과적일 테니까. 셋째, 무엇보다 입주민들의 소망을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친해질 수 있는 계기를 우리가 제공한다면, 혹시 쉐어원 사람들끼리의 소통이 자연스럽게 물꼬를 트게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인터뷰에선 들을 수 없었던 더욱 풍부하고 다양한 입주민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 우리가 궁금했던 것은 혼자 사는 입주민들이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상황들이었기에, 일명 ‘누가 있었으면…’ 대시 보드를 만들기로 했다. 혼자 살면서도 문득 ‘누가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느꼈던 순간들을 수집하고자 한 것이다. 이 대시보드의 아래에는 ‘입주 초기(이사, 시설 정보, 동네 적응)’, ‘하루 일과(기상, 식사, 집안일, 취침)’, ‘특수한 상황(외부인 침입, 택배 수령)’, ‘공용 공간(부엌, 거실, 화장실)’ 등 다양한 연상 키워드를 제시하여 참가자들이 자신의 입주 경험을 입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도록 했다. 다소 허술한 기억이어도 포스트잇에 써 보고 팀원들과 함께 공감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꽤 풍부한 대시보드가 완성되어 있지 않을까? 이 대시보드를 토대로 그들 스스로가 문제 상황을 분류하고 필요한 서비스 아이디어를 도출해 낸다면, 더할나위없는 사용자 중심 서비스의 시초가 될 것이다.
이 워크숍에서 혼잘살 연구소와 입주민 간 그리고 입주민과 입주민 간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일은, 입주민들의 생각을 듣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다. 앞서 말했듯 우리가 준비한 워크숍은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진행되기 때문에 초반의 아이스브레이킹 세션만으로는 분위기를 풀기에 어딘가 부족하다. 그래서 먼저 혼잘살 연구원들에게 부탁했다. 같이 워크숍에 참여해 달라, 그리고 각 팀에 들어가 말(과 농담)을 최대한 많이 해달라….
이들이 부여받은 임무는 막중하지만 사실 연구원에 의해 대화가 활발해지는 것보다는 입주민들에 의해 대화가 활발해지는 것이 근본적으로 더욱 바람직하다. 따라서 이곳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나의 생각을 공유하기 위한 편안하면서도 색다른 자리임을 느끼게 할 필요가 있었다. 익숙한듯 낯선 ‘쉐어원 6층’을 워크숍 공간으로 삼은 것도 이 때문이다. 뒤쪽에는 일반적인 다과는 물론 이색적인 샌드위치, 에그타르트, 카야 토스트, 그리고 화이트 와인까지 자유롭게 비치해 두고 스마트 스피커로 느리지 않은 템포의 배경 음악을 깔아 일상적이지 않은 분위기를 만들고자 했다. 이쯤이면 이곳의 분위기도, 더불어 참여자들의 마음도 꽤나 말랑말랑해지지 않았을까?
준비는 끝났으니 이제 입주민들을 직접 만나 볼 차례이다. 이를 위해 워크숍에 직접 참여한 연구원의 생생한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나는 혼잘살 연구소의 일원이자 성인이 되고나서부터 쭉 1인 가구로 오래 살아온 진정한 혼삶-러로서 코크리에이티브 워크숍에 참여했다. 워크숍 준비 과정을 옆에서 돕고, 지켜 본 연구원으로서 어색한 기운이 감도는 현장에서 쉐어원 입주민분들의 생각을 이끌어내고 분위기를 풀어내는 역할을 되뇌이며 정해진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웬걸, 혼자 몇 년 살아봤다는 사람들과 만나 혼자 사는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니 그 누구보다 내가 먼저 투머치-토커가 되어 대화는 끊이지 않았고, 각자의 경험이 또 다른 경험을 이끌어냈다.
워크숍 장소는 쉐어원 6층에 마련된 넓은 라운지였다. 혼잘살 연구소와 여러 명의 입주민들이 공식적으로 처음 만나는 자리였기에 모든 연구원들은 오전부터 분주히 행사 준비를 도왔다. 나도 같이 도우며 정신없는 오전 시간을 보냈지만, 워크숍을 앞두고 긴장이 줄기는 커녕 더해만 갔다. 입주민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도 워크숍은 처음이었기에.
한 분 한 분 들어오기 시작했고, 드디어 우리 조에서 함께할 입주민분들과 만났다. 침묵을 피하고자 괜히 이런 저런 질문을 던져가며 서로를 알아가고 있을 무렵 아이스 브레이킹 세션이 시작되었다. 좋아하는 음악도 영화도 다르지만 건강한 삶을 위해 운동을 하고, 동시에 떡볶이로 행복을 찾는 유쾌한 우리 조의 워크숍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어지는 다음 세션은 혼자 살면서 “누가 있었으면…” 하는 순간을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아무리 혼자 사는게 너무 편하고, 자유롭고, 혼자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도 누군가의 도움이 간절했던 순간은 존재한다. 정말로 다양한 순간들을 함께 얘기해 보니 모두가 “맞다!” 하면서 공감하는 순간들도, 다른 사람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순간들도 있었다. 우리 조원들이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순간은 크게 두 가지, 혼자 할 수 없어서 실질적 도움이 필요하거나 혹은 혼자 충분히 할 수 있지만 같이가 아니라면 굳이 안하게 되는 순간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혼자 할 수 없어서 실질적 도움이 필요한 순간’은 보통 힘이 필요하거나(유리병 뚜껑 안열릴 때), 지식이 필요하거나(가전제품이 고장났을 때), 여럿이 사는 집에는 있을 법한 도구(드라이버가 필요할 때)가 필요한 순간들이었다. 그 중 내가 혼자 살기 전에는 도저히 생각해보지 못했던 순간은 ‘시간’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집을 비우는 시간에 외부인 방문이 꼭 필요한 순간, 혹은 세탁기∙건조기를 돌려 놨는데 급히 나가야하는 상황은 미룰 수도 없고, 누군가에게 부탁하기엔 내 집과 사생활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정말로 ‘또 한 명의 나’와 같은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순간이며 내 생활의 모든 부분을 처음부터 끝까지 통제(?)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것이 실감되곤 한다.
두 번째, ‘혼자 충분히 할 수 있지만 같이가 아니라면…’ 싶어 누군가가 필요한 순간들의 ‘…’는 보통 귀찮고, 외롭고, 무서운 경험들이었다. 침대에 누웠는데 불 끄기 귀찮을 때, 혼자 있기 싫고 누군가와 얘기하고 싶을 때, 너무 아파서 이러다 죽겠구나 싶은데 내가 아픈걸 아무도 모르는거 같아 외로울 때 등의 순간들은 우리 모두가 자주 있는 일이라며 입을 모아 말했다. 여성을 위협하는 범죄 문제가 심각한 요즘인 만큼 ‘여자 혼자 살아서 너무 무서웠던 때’에 대해서도 봇물 터지듯 경험을 늘어놓았다. 예를 들어 집에 수리 기사, 부동산 중개인 등 외부인이 방문해야 하는 상황인데 나 혼자 사는 집일 때 괜히 신경쓰이고 무섭기에 누군가의 행동도 말도 아닌 존재 그 자체가 필요함을 느낀다.
이야기를 나누다, 나도 모르게 우리 조의 목소리가 가장 커졌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혼자 산 지 도합 10년이 넘는 우리 조원들 모두가 한 두 개씩 가지고 있던, 각종 벌레를 퇴치한 나만의 무용담을 풀어놓던 순간이다! 처음 혼자 살기 시작했을 때는 도움이 필요해 벌벌 떨다가, 혼삶 레벨이 높아짐에 따라 이제는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그 시행착오는 누구에게 들어도 흥미진진하다. 무용담을 뽐내는 도중 시간이 끝나버렸고 그것이 워크숍 중 가장 아쉬운 순간이었지만, 우리는 같은 시간을 보내 온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눈빛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혼자 살며 누군가가 필요한 순간에 대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공유했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스마트 스피커 솔루션을 구상했다. 사실, 직접 참여해 보니 자유롭게 생각했던 문제들을 기술적 해결로 연결하려 하니까 처음에는 참 막막하고 정말 어려웠다. 스마트폰으로 웬만한 일들을 해결할 수 있는 세상에서, 음성으로 조작하는 스마트 스피커 솔루션을 내놓아야 했기에 우리는 ‘손이 없는’ 상황을 집중적으로 생각했다. 쉐어원 공용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느라 손을 쓸 수 없는 상황, 아침에 아직 잠이 덜 깼거나 바쁘게 준비 중이라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서비스를 상상해 나갔다.
우리 조가 선택한 솔루션은 아침에 일어나고 급히 준비할 때 나에게 필요한 정보, 스마트폰에서는 몇 단계를 거쳐야 얻을 수 있는 정보를 한 번에 전달해 주는 스마트 스피커 서비스다. 적절한 시간에 깨워주고, 날씨에 따라 입을 옷과 잊기 쉬운 소지품을 챙기라고 일러주고, 쉐어원에서 가까운 버스의 도착 정보를 알려준다. 매일 아침 일찍 쉐어원을 나서는 조원들의 일상에서 소소하지만 꼭 있었으면 하는 솔루션이었다.
솔루션 시나리오라는 제목이 붙어 있고 빈 공간이 크게만 보였던 종이는 진행자의 안내를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니 꽉 채워졌고, 우리는 실제 혼자 사는 하루 일과에서 꼭 필요한, 혼자 잘 살 수 있는 서비스를 구상할 수 있었다.
화이트 와인의 감성 덕분인지 보사노바가 주는 여유로운 분위기 덕분인지,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워크숍은 편안한 공기 속에서 마무리될 수 있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줄곧 ‘혼자 사는 사람들의 불편함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해 온 혼잘살 연구원들은 책상에 앉아 자료를 조사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생생하고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워크숍에서 수집된 다양한 이야기들을 잠시 공유해 보고자 한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어떠한 순간에 타인을 필요로 할까? 수많은 경험들이 공유되었지만, 공통적으로 많은 참가자가 공감하는 지점이 몇 가지 있었다. 첫째는 ‘경제적 공유’이다. 특정 제품을 대용량으로 사는 것이 훨씬 저렴할 때, 배달 음식을 시키고 싶은데 최소 금액이 충족되지 않을 때 등, 여럿이 모여야만 경제적으로 이로운 상황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어떤 팀은 이런 상황을 지칭하는 단어로 ‘규모의 경제’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했다. 둘째는 ‘정서적 교류’이다. 대화하고 싶은데 아무도 없을 때, 아픈데 아무도 몰라줄 때, 갑자기 함께 술 마실 사람이 필요할 때 등이 이에 속한다. 대화를 깊게 나눠 보니, 혼자 살기 때문에 특히나 취약할 수 있는 감정인 ‘외로움’은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셋째로는 ‘주변 정보’에 대한 니즈가 있었다. 맛집, 병원, 운동 시설 등 내가 사는 곳 주변에 대해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다. 장소에 대한 정보에서 나아가 요리나 청소 등 생활 전반의 팁에 대해 알고자 하는 의견도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안전’이 있다. 방문이 잠겼을 때, 밤늦게 누가 문을 두드릴 때 등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했던 위험한 경험들을 나누었다.
비슷한 생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예상 외로 많아서
'나만 이런 게 아니었구나'를 알아갑니다.
_입주민 워크숍 후기
처음에 언급했듯, 이번 코크레이티브 워크숍은 쉐어원 입주민, 혼자 산 경험이 있는 코리빙 하우스 매니저, 혼자 살고 있는 연구원들이 함께했다. ‘혼삶’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이들은, 우연한 계기로 오늘 처음 만나 모인 사람들이지만 나누고 싶은 얘기가 많은 듯 보였다. 이들은 ‘혼자라서’ 타인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누릴 수 있었고, ‘혼자라서’ 홀로 느끼는 적막과 밀려오는 외로움을 감내해야 했다. 혼자 살면서 놓이게 되는 특별한 상황과 모두가 공감하는 경험들이, 처음 만나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혼자 살아요?’ 하며 대화의 물꼬를 트게 한 것이다. 혼자‘잘’살기 연구소와 쉐어원 입주민들 사이에 모종의 유대감이 싹트기 시작한 것 같다는 기분 좋은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