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일하면 좋을까?
어느 날 출근 했는데 사무실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그리 빨리 온 것도 아니고 9시가 다될 무렵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좀 늦는 가보다 했다. 그런데 10시가 넘어서도 텅 빈 사무실을 보고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예전에도 팀 회의 일정에 누락되어 본의 아니게 팀 회의에 불참한 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도 비슷한 경우라고 생각했다. 사내 메신저를 보니 팀원들이 거의 로그인 상태였다. 한 팀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혹시 회의 중이니?” “아니, 나 오늘 집에서 일해.” 설마 나를 제외한 모든 팀원이 재택근무를 하는 날일 줄이야. 미리 말이라도 해주지... “오늘 모두가 재택 할 줄은 몰랐어. 아무런 얘기도 못 들었거든.” “나도 몰랐어. 그리고 내가 오늘 집에서 일할 거라고 얘기하지도 않았거든.”
출근 길에 30분만 늦을 예정이어도 미리 양해를 구하는 한국 문화가 당연한 나로서는, 아예 회사에 나오지 않고 집에서 일하는 데에도 팀에 알리지 않는 점이 참으로 낯설었다. 물리적 부재에 대한 알림은 함께 일하는 동료에 대한 예의 혹은 배려, 그도 아니면 근로자로서 행해야 하는 알림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재택근무 여부에 대해 사전에 보고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매니저의 의견을 들어보니, 그 또한 배려였다. 재택근무에 대한 판단을 개인에게 맡기는 것이며, 매번 일일이 본인의 허락을 구해야 한다면 재택근무가 필요한 상황임에도 주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사무실에 나와야 하는 상황이라면 무리해서 재택근무를 하지 않을 것이고, 그럼에도 재택을 한다면 그리 해야하는 상황일 거라 믿는 것이다. “자율성과 믿음” (‘프랑스 대기업의 업무문화’ 편에서 언급)의 문화가 정착 된 곳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다만, 재택근무에 대한 해석은 프랑스 내에서도 회사마다 직원마다 상이하므로 일반화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유난히 오늘만큼은 사무실이 아닌 혼자 조용한 공간에서 일하고 싶은 날이 누구나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일을 하기 싫은 게 아니라, 장소에 변화를 주고 싶은 날 말이다. 그런 날이 매일 일수도 있겠지만, 보통은 일주일에 한번 정도 조금은 익숙하고 편한 공간에서 일할 수 있다면 훨씬 덜 부담스럽고 업무 효율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재택근무를 결심하기까지가 쉽지 않았다. 회사가 집에서부터 걸어서 30분 거리라 대중교통으로 한시간씩 이동해야 하는 다른 팀원들에 비해서 크게 재택근무의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 첫 번째 이유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팀에 조인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재택근무를 해도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더 컸던 것 같다. 퇴근할 때 팀원들이 다들 열심히 일하고 있으면 괜히 혼자 먼저 일어나기 미안하고 불편한 감정을 느꼈던 한국에서의 습관이 여전히 남아있던 영향이었으리라. 여기서는 정이 없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출퇴근이나 재택근무 여부에 대해 신경을 쓰지도 않는데 말이다.
재택근무를 해본 소감은, 물론 좋다. 다만 업무의 특성과 시기에 따라 재택근무의 효과는 다를 수 있다. 재택근무가 가장 효과적이었을 때에는, 1) 혼자 해야하는 업무를 하고 있을 때, 2) 업무의 목적이 명확하고 데드라인이 가까운 시일 내에 있을 경우, 3) 편안한 공간에서 일할 때 집중이 잘 되는 업무를 할 때 였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는 집에서 일할 때 사무실에서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사무실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환경 때문에 지나가다 인사를 하기도 하고, 장시간 회의하느냐 업무에 집중할 시간이 부족한 경우가 많지만, 집에서는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히려 일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당장 해야하는 업무가 명확하지 않거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논의하면서 답을 찾아가야 하는 과정의 업무라면, 혹은 본인이 잘 모르는 분야의 업무라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에는 재택근무가 오히려 비효율적일 수 있다. 개인 노트북에 VPN이 설치되어 있어서 어디서든 회사 시스템에 쉽게 접속할 수 있고 화상회의가 일상화되어 있다지만, 직접 얼굴을 마주 보면서 대화할 때 더 집중도가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재택근무는 프랑스 노동법에서 정한 의무사항이 아니므로 여전히 고용주의 선택에 달려있다. 그러나 파리의 대부분의 기업은 재택근무가 가능함을 계약서에 명시하거나, 명시하지 않더라도 비공식적으로 노사 간 합의에 따라 적용하기도 한다. 이는 재택근무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애초에 대도시의 교통체증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 및 환경오염의 감소, 직원들의 일과 가정 사이의 균형 증대에 있었기 때문이다.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장이라면, 재택근무의 최대 사용 일수가 보통 정해져있다. 일반적으로는 일주일에 하루에서 이틀 정도 가능하나, 필요에 따라 합의해서 늘리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지방이나 유럽 내 다른 국가에 거주하고 있는 직원들이 있는데 이들은 일주일에 평균 3일 정도 재택근무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보통은 일주일에 한번, 한 달에 2-3일 정도 재택근무를 한다.
재택근무, 엄밀히는 원격근무(télétravail)에 대한 필요성이나 효율성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사실, 직원 입장에서는 거의 모두가 찬성할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재택근무를 가능하게 한 회사에 대해 불만을 표현하는 사람을 보고 놀라기도 했다.
회사 입장에서는 재택근무 도입으로 직원의 워라밸 향상, 자율성을 추구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임대료 및 사무실의 고정비용이 줄어들 것을 기대한다. 일례로 내가 일하고 있는 사무실은 전체 직원 수의 70% 수준의 사무공간을 가지고 있다. 모든 좌석은 자율좌석제이며 회의실은 예약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다. 그래서 어떤 날은 빈 책상이 없어서 책상 하나를 여럿이 공유하기도 한다. 회의가 있어 잠시 동안 자리를 비우는 동료의 책상을 쓰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실제로 얼마나 비용절감 효과가 있었는지를 살펴본다면, 그 효과는 거의 미비한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사무공간을 축소하는 대신 원격근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부차적인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인데, 기본적으로 전 직원에게 개인 PC와 핸드폰을 지급해야하고 외부에서도 회사 시스템에 접속하기 위한 네트워크 및 클라우드 사용료 등의 추가 비용이 임대료 절감효과를 상쇄시키기 때문이다.
직원입장에서는 전반적으로 재택근무의 취지와 제도에 대해 찬성하는 편이다. 그러나 효과나 활용 방법에 대해서는 개개인에 따라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 이 제도를 최대한 활용하고 만족하는 직원들은 보통 출퇴근 거리가 먼 직원, 어린 자녀를 둔 부모, 방해받지 않고 집에서 일하기를 선호하는 직원들이었다. 파리가 서울의 1/6 크기 라고는 하지만 비싼 임대료 영향으로 파리 외곽에 거주하는 직원들이 많고, 파리 내에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보통은 출퇴근에 편도 한 시간 이상을 할애하고 있다. 게다가 요새 같이 한 달 넘게 장기간 파업을 하는 경우 자가용이나 택시가 아니면 출근이 아예 불가능하니 재택근무 제도가 없었다면 업무에 상당한 불편을 겪었을 것이다. EU 내에서 가장 높은 출산율(2017년 1.90, 출처: Eurostat)을 보이는 프랑스는 보통 두 명 이상의 자녀를 두고 있어 자녀 돌봄 의식수준 또한 꽤 높은 편인데, 부부가 재택근무를 활용해서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늘리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한편, 재택근무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직원들도 있다. 이들은 주로 사무실에서 일할 때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집에서 일하게 되면 회사의 업무를 집에 가져가기 때문에 일과 가정의 분리가 없어진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나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동의할 수 밖에 없었던 게 밤이나 주말에도 언제든 노트북만 켜면 일을 할 수 있으니 휴식 시간에도 회사와 분리되지 않는 것을 느꼈다.) 혼자 사는 젊은 직원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좁은 집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집이 업무에 집중할 만한 공간이 아니라서 회사가 더 편하다는 직원도 있다. 직원들을 리드해야하는 매니저 중에는 직원들이 눈 앞에서 보이지 않으면 그만큼 본인의 권력이 약해진다고 느껴서 답답함을 토로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재택근무 제도는 아직 일부 기업에서만 시행하고 있거나, 대기업 중에서는 일부 시범 시행하는 단계라고 알고 있다. 이미 어느 정도 재택근무 문화가 자리잡은 프랑스에서의 경험을 비추어본다면, 재택근무는 직원과 회사 모두를 위해 필요한 제도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사회나 기업, 해당 팀에서 재택근무의 효과와 장점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활용도는 달라지겠지만, 이 부분은 서로의 눈높이를 맞추어 올바른 문화가 정착할 수 있도록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재택근무를 하면서 적어도 매일 출근해야만 하는 긴장과 스트레스가 훨씬 줄어드는 효과를 보았다. 당연히 스트레스가 완화될 수록 업무 생산성은 높아지고, 다시 회복해서 출근하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또한 불필요하게 다른 사람의 근무 행태에 대해 신경쓰고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근무해야 한다는 부담이 줄어들면서, 어떤 방식으로 일할 때 본인의 생산성이 더 높아지는 지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파리보다 6배나 큰 서울의 통근시간, 직장생활하며 육아하기 어려운 한국의 현실, 여전히 수직적이고 경직 된 기업 문화 등을 생각했을 때 재택근무의 긍정적인 부분들이 한국에도 전파됐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