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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봇 Apr 10. 2024

나이 들수록 함께 하는 여행이 어려워진다

친구라고는 남편밖에 없는 내 미국 살이에 첫 동네 친구가 생겼다. 가라테 도장에서 만난 ‘안드레아’는 베트남계 미국인 남편을 두고 있어 베트남 문화와 아시아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었고, 베트남에서 생활해 봤던 나와도 그 점이 잘 통해 친해졌다. 사교적이고 따뜻한 친구라 만나면 즐거웠고, 내가 잘 모르는 미국 문화나 생활방식도 알려주면서 더 가까워졌다. 서로의 집을 부담 없이 왕래할 만큼 친해지자 우리는 언젠가 함께 놀러 가면 좋겠다는 얘기가 나왔다. 안 그래도 집안 일과 육아로부터 휴가가 필요했던 안드레아는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말이 나온 김에 바로 여행 지역과 날짜를 잡아버렸다. 그녀가 추천한 곳은 조지아 지역의 ‘사바나’라는 작은 해안 지역으로, 안드레이가 지금의 집으로 이사오기 전 10년 가까이 살았던 곳이라고 했다. 그녀는 낯선 지역과 익숙하지 않은 것을 두려워하는 성격이라, 나와의 여행도 처음이라 긴장되는데 장소마저 둘 다 모르는 완전히 새로운 지역이라면 패닉이 올 것 같다며 본인이 잘 알고 있는 지역으로 가자고 제안한 것이다. 여느 미국인들처럼 차로 이동하기로 했기 때문에, 약 이틀은 운전만 할 걸 생각해 4박 5일로 여행기간을 잡았다. 다행히 따뜻한 봄 날씨에, 사고 없이 싸우는 일도 없이 무사히 새 친구와의 첫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서 든 생각은, 친구와 함께한 시간이 즐거웠던 것과 별개로 이 친구와 또다시 여행 갈 일은 아마 없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함께 여행을 하다 보니 안 맞는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일단 여행 기간 내내 나는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대체로 시체처럼 자세도 잘 안 바꿔가며 죽은 듯이 자는 나와 달리, 친구는 깊은 잠을 자면서도 10초에 한 번씩 다리를 튕기는 하지불안증후군과 코골이가 있었다. 나는 이상하게 잠잘 때만 감각이 예민해지는 편이라 옆 사람이 계속 소리를 내거나 움직이면 그때마다 잠이 깬다. 그래서 여행 기간 내내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잠버릇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니 뭐 어떻게 얘기도 못 하고 그저 낮 동안 밀려오는 졸음을 억지로 참으며 여행을 다녔다. 다른 또 하나는 아침에 정신이 드는 속도가 꽤 다르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인체 리듬이 다르다는 건 안다. 나는 보통 잠에서 깨면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고 활동을 시작하는 데 약 30분 정도 걸리는 편이다. 같은 숙소에서 며칠을 보내고 보니 친구는 이 시간이 나보다 세 배는 걸리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다음 날 9시쯤 외출하기로 합의를 봐도 막상 나가게 되는 건 10시 반에서 11시였다. 애초에 빡빡하게 잡은 도시 여행이 아니라, 그저 천천히 공원 다니고 쇼핑하는 방식의 여행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친구가 준비될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다가 외출했지만, 만일 갈 곳과 할 것이 많은 도시 여행이라면 친구와 이 부분 때문에 마찰이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식성도 달라서 같이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니기도 어려웠고, 여행 짐을 꾸릴 때도 나는 미니멀리스트, 친구는 맥시멈리스트라 여기서도 이동할 때 차이가 생겼다.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닌 차이점들이고, 누구나 이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여행 기간 동안 서로의 생활 패턴을 다 보게 되고, 서로 맞춰 움직이다 보니 그 차이점이 더 크게 느껴진 것 같다. 문제는 예전에는 친구들과 잘 안 맞고 달라도 불편한 대로 그냥 함께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굳이 그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함께 하고 싶지 않다는 데 있다. 전에는 이런 불편함도 경험이겠지, 사회 생활 하다 보면 이런 인간관계도 있지 하고 그냥 넘겼다면, 지금은 많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전처럼 애쓸 체력이 안 된다는 것이다. 모르면 모를까, 함께 하면 불편함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데 그걸 굳이 애써서 유지하고 싶지 않은 것이 예전의 나와 달라진 점이다. 물론 나는 여전히 이 친구를 좋아하고 계속 좋은 사이로 지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여행은 따로 하는 게 우리의 관계를 위해서도 더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이다. 나이 먹을수록 내 취향이 확실해지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되니, 점점 혼자 다니거나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을 찾게 된다. 아무래도 내가 현재 한국과는 다른 문화권에 있다 보니, 나와 같은 문화와 상식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더 그리워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변화가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저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확실히 알게 되는 것도 오히려 좋은 점이다. 바라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하되, 그게 제일이라고 주장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편하고 좋아하는 것에만 묻혀버려 생각의 유연성을 잃은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이 어려워지더라도, 여행지에서 접하는 모든 것들에 마음을 열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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