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허리 디스크를 가지고 있다. 전에 한밤중에 몸을 움직일 수 없어 응급실로 데려간 적이 있었는데, 한동안 괜찮다가 최근에 다시 그 디스크가 도진 것이다. 허리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 마사지를 받은 탓인 건지, 아니면 근래 무거운 물건들을 많이 옮겨서 그런 건지 점점 안 좋아지더니 누워서 잠을 자는 것까지 힘든 지경이 이르렀다.
이번에도 옆에서 엄청 뒤척거리는 소리에 일어나 남편을 보니 침대에 걸쳐 앉아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많이 아프냐고 물어보니 너무 아프다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균형을 잃고 그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처음에는 허리 통증이 심한 나머지 힘이 빠져 앞으로 넘어졌는지 알고 놀라 일으켜주려 가까이 다가가니, 갑자기 그는 알 수 없는 ‘으르르르르’하는 소리를 혀를 굴리며 내고 있었고, 내가 이름을 부르고 머리를 들어도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순식간에 완전히 의식을 잃고 실신해 버린 것이다.
눈앞에서 사람이 쓰러지는 걸 본 것도 처음이었는데, 그게 바로 옆에서 자던 내 남편이라니. 살면서 제일 무서운 순간이었다. 그가 쓰러졌다는 걸 확인한 동시에 혹시나 숨을 못 쉴까 봐 몸을 옆으로 돌려 확인하려 했지만, 나도 자다 깨 정신이 없는 상태였는지 그의 몸을 돌리는 것조차 힘들었다. 지체 없이 바로 911을 눌렀다. 미국에 살면서 표정이나 입모양도 없이, 소리만 듣고 판단해야 하는 전화 영어에 공포심이 있어 되도록 피해 왔었는데, 실신한 남편이라는 훨씬 더 무서운 상황이 닥치자 그저 누군가가 우리의 상황을 알고 도와주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911 접수 요원에게 집주소를 말하고 남편의 상황을 설명했다. 이런 상황일수록 되도록 차분하고 명확하게 상황을 전달하고 싶었지만, 너무 놀라 터져 나오는 과호흡을 간신히 눌러대며 말을 이어갔다. 스피커 폰으로 하고 남편을 다시 확인하러 가까이 다가갔을 때, 엉덩이와 발 밑에 뜨끈한 것이 들어왔다. 실신한 남편이 그 상태로 소변까지 봐 버린 것이다. 이건 진짜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들었고, 밀려드는 두려운 마음에 전화통을 붙잡고 눈물을 참고 있을 때 남편이 정신을 차렸다. 그가 기절한 시간은 약 2분 정도였다.
본인이 쓰러졌다는 자각도 없는 남편은 왜 자신이 바닥에 누워 있는 건지, 또 왜 내가 911 요원과 통화를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그에게 방금 의식을 잃었었고 그 상태로 바닥에 소변까지 본 것 같다 얘기하자 남편 또한 놀라 과호흡이 오기 시작했다. 실신한 기억은 없었지만 다행히 남편은 말을 하거나 생각을 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고, 구급차를 기다리는 것보다 그냥 지금 내가 바로 응급실에 데려가는 게 더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911 요원에게 남편의 의식이 돌아옴을 알리고 구급차를 취소했다.
남편도 현재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바로 응급실로 가자는데 동의했다. 급하게 서로 바지만 갈아입고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응급실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그는 차를 멈춰 세워 토사물을 게워냈다. 실신에 소변, 구토까지… 제발 응급실에 갈 때까지 그가 정신을 붙잡아주길 기도하며 차를 몰았다.
응급실에 도착해 바로 피검사를 하고 엑스레이와 전신 CT를 찍었다. 새벽 1시부터 4시까지 세 시간 동안 응급실에서 수액을 맞고 필요한 검사를 하고 결과를 들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CT상에서 큰 문제는 찾을 수 없었다. 아마 CT로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의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번에도 허리 통증으로 응급실에 왔을 때 의사가 두 번만에 겨우 허리 디스크 문제를 발견했었다. 아마도 디스크의 극심한 통증으로 미주신경성 실신이 발생한 걸로 추측되는데, CT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나는 남편이 급작스레 뇌전증이라도 생긴 것인지 온갖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응급실에서 처방받은 약을 복용하고, 냉온 찜질과 스트레칭 등을 하고 있지만 이번에 불거진 허리 통증은 쉽사리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아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척추 지압실이라도 가보려고 한다. 전에 정형외과를 찾았을 때도 의사는 치료법이 없고 평생 관리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물리치료실만 추천해 주었다. 이번에도 다시 가봤자 비슷한 상황일 것 같아 정형외과 대신 신경외과라도 가서 자세한 검사를 하고 싶지만, 보험이 있어도 말도 안 되게 비싼 미국 병원비가 발목을 잡았다. 이미 응급실 이용으로 인해 천만 원 이상의 비용이 청구될 터였다. 물론 보험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몇 백만 원 이상이 든다는 걸 지난번의 응급실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구급차까지 이용했다면 다시 추가로 몇 백만 원이 추가됐을 테니, 911 요원이 구급차를 보내기 직전 남편이 의식을 차린 걸 감사해야 했다.
현재 남편은 제대로 서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상태다. 잘 때도 주기적으로 자세를 바꿔줘야 할 것 같아 일부러 알람을 맞춰 놓고 중간중간 일어나 스트레칭을 한다. 나 또한 다시 실신 사태가 일어날까 봐 그가 일어날 때마다 별일 없는지 확인하고 있다. 통잠을 못 자고 남편 대신 몸 쓰는 일을 하고 있는 나도 힘들지만, 몸을 움직이는 거 자체가 고통인 환자 마음만 할까 싶다. 물론 계속 상태 호전이 없다면 비용이 들어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야겠지만 아픈 남편이 나아질 때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는 게 고통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