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돌아가신 할머니의 일주기 제사가 있다. 하필이면 내일, 평택으로 외근 일정이 잡힌 나는 또 할머니를 뵈러 가지 못하게 되었다. 작년, 발인 당일에도 나는 출근을 해야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마지막 인사를 드리지 못하게 된 죄스러운 손녀는 마음이 무거웠다. 어두운 내 얼굴을 보신 어머니께서는 괜찮다 하시며, "살아 계실 때 잘해야지 돌아가신 후에 하루 더 자리 지키는 게 무슨 소용이니. 걱정 말고 일 보렴" 하셨었다. 그 말을 들으니 더 죄송스러웠다.
우리 어머니의 엄마이신 김진하 여사님은 안동에서 태어나 자라셨다. 여행을 다니며 안동을 여러 번 들렀었지만 내가 만난 안동과 할머니의 안동은 많이 달랐다. 할머니와 대화를 할 때면 나는 몇 번이고 엄마를 찾아 물어야 했으니까.
"어머니 포시러운 게 뭐야?"
“복에 겨워서 그런다는 말이야”
생전 처음 듣는 옛날 사투리는 할머니께서 도통 뭐라고 말씀하시는 건지 알아들을 수 없게 했다. 그래서 할머니가 더 어려웠던 것이라는 괜한 핑계를 대본다. 발인도 제사도 지키지 못하고, 살아계실 때에는 더 살갑게 해드리지도 못해 계속 목구멍이 따갑던 열여섯 번째 손녀는 생전의 할머니 말씀을 나지막이 따라 해 본다.
“안 달구지 마라.”
해외에 계신 부모님을 대신해 할머니께 안부 전화를 드릴 때마다 할머니께서는 항상 그 걸걸한 목소리로 "예슬이야?" 하고 반가워하셨다. 정말로 전화한 게 너이냐고 되묻듯 내 이름을 크게 부르셨었다. 그러시고는 안부인사도 없이 이내 "엄마 안 달구지 마라"라고 하셨다. 명령도 부탁도 아닌 어조로 할머니께서는 그저 몇 번이고 그렇게 말씀하셨었다. 엄마 안 달구지 마라. 안 달구지 말라는 말이 뭐냐고 어머니께 여쭤보니, "네 마음을 벌겋게 달구면 어떻겠니? 그렇게 하지 말라는 말씀이야” 하셨다.
할머니께서는 어떻게 아셨던 걸까. 나는 어머니를 참 많이 안 달궜다. 우선 어렸을 때부터 고집이 세서 누가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면 쉬이 수긍하는 법이 없었다. 그만큼 어머니께 많이 대들었다. 두니의 말에 의하면 창의적으로 논리적인 나는 나만의 논리를 만들고 그것이 아닌 것은 받아들일 줄 몰랐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다른 이에게 상처받은 채 울먹거리며 전화했을 때가 아녔을까? 부끄러움도 몰랐고 어머니께서 아시면 속상해하실 거라는 생각을 할 만큼 성숙하지도 못했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어머니에게 달려갔다. 때로는 억울함에 울먹거리고, 슬픔에 흐느끼고, 미련스러운 마음이 괴로워 징징대기도 했다. 그 시절 나에겐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아 서러운 날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노력과는 상관없이 누군가 나를 떠나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의 중심에 내가 있다는 점을 돌아보며 한없이 작아지는 스스로를 마주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런 날들이면 나는 결국에는 어머니를 찾았고 통화연결음이 끝나자마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아직 채 들리지도 않은 어머니의 목소리가 벌써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수많은 전화를 통해 괜찮다 안아줄 수도 없는 거리에 계시는 어머니를 얼마나 안 달궜던 걸까? 내가 흘리는 눈물이 방울방울 어머니의 마음을 빨갛게 자국 냈을 것이다. 한창 그렇게 어머니의 속을 안달 구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 그러셨다.
"내 나이가 쉰이 넘었는데 네 덕분에 다시 어리고 고달프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그 피곤했던 시절을 다시 사는 기분이야."
그 순간 나는 철없이 마음이 든든해졌다. ‘아 나에게는 이 고달픈 시절을 함께 살아주는 존재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제는 나의 어린 시절도 어머니의 그 시절처럼 끝끝내 저물어가고 있다. 더 이상은 내 노력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들에 스스로를 안 달구며 살지 않는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늘어난 만큼 때로는 실패를 인정해야 하고, 지나간 것은 놓아주어야 함을 배웠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인생의 어느 부분은 참 고달프다. 일은 계획처럼 풀리지 않고, 일상은 무너져 내리고, 감정은 소용돌이치는 험난한 날들이 여전히 찾아온다. 그런 순간이 찾아와도 웃는 얼굴로 또 아침을 맞이하고 꿋꿋이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지금쯤 하늘 위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실 할머니께서 ‘요즘은 어머니를 덜 안달 구고 있니?’하고 물어보실지 모르겠다. 나는 그 질문에 여전히 자신이 없다. 어머니께서는 아직도 내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마음이 철렁 인다고 하셨으니 말이다. 아무리 더 나이가 들고 생각이 깊어진다고 해도 나는 어머니께 걱정해야 하는 존재일 것이다.
할머니의 당부를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스럽지만, 이왕이면 더 오래오래 어머니를 안 달구고 싶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행복하고 괴로운 나의 순간들을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