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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Jan 20. 2023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무라카미 하루키)

제8장 학교에 대해서 


어떤 일을 자신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아무래도 세계가 부글부글 끓어서 바짝 졸아듭니다. 온몸이 긴장하고 발걸음이 무거워져 자유롭게 움직이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시점에서 자신이 선 위치를 바라보게 되면, 바꿔 말해 나 자신이라는 존재를 뭔가 다른 체계에 맡길 수 있게 되면, 세계는 좀 더 입체성과 유연성을 갖기 시작합니다. 이건 인간이 이 세계를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자세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독서를 통해 그것을 배운 것은 나에게는 큰 수확이었습니다. 

 만일 책이라는 게 없다면, 그토록 많은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아마 지금보다 훨씬 더 썰렁하고 뻑뻑한 모습이 되었을 것입니다. 즉 나에게는 독서라는 행위가 그대로 하나의 큰 학교였습니다. 그것은 나를 위해 설립되고 운영되는 맞춤형 학교고, 나는 거기서 수많은 소중한 것들을 몸으로 배워나갔습니다. 까다로운 학칙도 없고 수치에 의한 평가도 없고 격렬한 순위 경쟁도 없었습니다. 물론 따돌림 같은 것도 없었습니다.

 나는 커다란 '제도' 안에 포함되어 있으면서도 책을 통해 그러한 나 자신만의 별도의 '제도'를 멋지게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내 머릿속에 그리는 '개인 회복 공간'은 바로 그런 것에 가까운 곳입니다. 아니, 꼭 독서만은 아닙니다. 현실의 학교 제도에 잘 섞이지 않는 아이라도, 교실에서의 공부에 그다지 흥미가 없는 아이라도, 만일 그런 맞춤형 '개인 회복 공간'을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에게 맞는 것, 자신의 눈높이에 맞는 것을 찾아내고 그 가능성을 자신의 공간에서 키워나갈 수만 있다면, 훌륭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제도의 벽'을 극복해 나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업인으로서 소설가"(무라카미 하루키) 225~227쪽 중에서... 


학교의 제도적 시스템, 효율성을 추구하는 수업의 획일적인 내용들, 친구들과의 복잡 미묘한 관계들에서 오는 피로감 등등으로 인해 특히 중학교, 고등학교 생활이 그리 즐겁지 않았던 나에게도 퍽이나 공감이 되는 내용들이라 소설의 일부를 발췌해 보았다. 

 공교육의 필요성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던 내가 교사가 됐다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아이러니하지만 어린 시절 내가 느꼈던 공교육의 갑갑함과 부적응을 나름 극복했던 방식이 하루키의 표현과 어느 정도 비슷하다 느꼈다. 나의 '개인 회복 공간' 역시도 친구들과의 끊임없는 수다와 놀이가 아니라, 그 시절 좋아했던 소설가와 많은 이야기들로 나의 머릿속에 상상의 날개를 펼치거나, 좋아하는 팝송 가사를 받아 적어가며 스스로 익혔던 영어 문장들... 특히 소설은 내가 느끼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많은 이야기들을 연결시켜 주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경험이기도 했다. 십 대의 좁은 세계 속에 갑갑함을 잊게 해 주었고, '앞으로'를 꿈꿀 수 있는 좋은 진로책이기도 했다. 

 그 당시의 교육과 요즘을 비교한다면 나름 혁신에 가깝다는 변화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변화의 속도는 여전히 뜨뜻미지근하고, 교육공동체의 한 목소리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자문하기도 할 때가 있다. 더욱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으로 각자의 입장을 내세우며 책임전가에 바쁜 이들에게서 "모두를 위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든다. 학생들에게 노잼의 학교생활이 다른 일탈을 만드는 과거는 요즘과 별반 차이가 없다. 나 역시 그런 아이들의 짜증 섞인 얼굴과 학부모들의 공교육에 대한 불신의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기도, 또한 나 역시 더 좋은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우리가 바라보는 교육이 조금은 더 개개인의 세계를 최소한 보호하고, 확장하는 공간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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