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해하기 쉽다면 거기서 끝나 버리는 것이죠."
안노 히데아키라는 애니메이션 감독을 다들 들어봤을 것이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감독,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를 만들어낸 감독, 가이낙스의 대표주자, 어딘가 이상한 아저씨, 에바 극장판이나 내놔요. 와 같은 이야기는 그를 감싸 안았다.
문득 어느 날, 안노 히데아키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을 해보는 날이 왔었다. 세 가지의 생각이 들었다.
- 어딘가 의문점이 남고, 고철작적인 이야기를 만들어가던 사람,
- 나디아라는 희대의 명작과 에반게리온이라는 최대의 명작, 그리고 문제작을 만들어낸 괴이한 사람.
- 뒤틀린 이야기를 바꾸어나가며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갔던 사람
의 생각이었다.
이런 수식어가 생각이 나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생각한다. 나디아를 처음 봤던 시기에도, 그리고 지금 보는 시점에도 사상적 면모와 나디아를 '검은 피부의 주인공', '채식주의자'라는 강한 색체를 드러내며, 그리고 전면적으로 내세우며 인간의 선과 악, 기적적인 모습을 기대해주었던 그 였기에 말이다. 어떻게 보면 후속작이었던 에바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이번 이야기는 안노 히데아키라는 사람에 대해, 조금은 알아가고 싶었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1.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열정과 갈등 그 사이에서
그에게 명성을 안겨주고, 가이낙스의 이름을 널리 알려주고, 첫 인기를 얻었던, 대중적으로나 평으로나 다양한 의견과 이야기가 공존한 작품은 바로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였다. 물론 그 전의 왕립 우주군, 톱을 노려라! 역시 평단에서는 훌륭한 평가를 받았었고, (물론 왕립우주군의 대중적 평가는 실패였다.) 톱을 노려라가 보여주었던 은은한 인기는 새로운 안노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주었다. 시기가 시기였던 것도 있었고 80년대 후반을 자리 잡던 미소녀 물과 메카 물의 조합 역시 나쁘진 않았었다.
그렇게 시작되는 나디아의 이야기. NHK라는 일본 최대의 방송사, 그리고 도호 사의 지원은 가이낙스에게는 큰 부담이자 힘이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나디아를 만들어가던 그는 처음에는 당연히 자신감에 차서 제작을 하게 되었지만, 나날이 갈수록 지속되는 스트레스와 힘겨운 하청은 그에게 엄청난 좌절감을 주게 되었다.
사실 가이낙스는 나디아가 방영되던 시기 하청업체로서 온갖 압박을 당해나가던 회사였다. 분명히 제작사는 가이낙스인데 기획은 방송사였던 NHK가 다 잡았기 때문이다. 작화는 작화대로 공밀레와 막일이 엄청났었기에 시간에 쫓겨 이야기 구상도 제대로 못하게 되자 결국 또 다른 하청업을 '한국'측에게 맡겼다, 그러나 한국에서 그려오고 돌아온 것은 끔찍한 작화 붕괴와 이야기의 잘못된 변화였다. 그 유명한 사다모토 요시유키는 분노에 차서 도망을 가버렸고, 온갖 화를 표출해냈다고 했을 정도. 물론 한국의 하청업체가 뽑았던 다른 회차들은 작화가 멀쩡했던 것도 있었기에 이런 의견은 알아서 보도록 하는 것이 낫다. 의견 전달의 실패와 연락 자체가 잘 되지 못하던 시대의 모습은 결국 소통의 원활함을 막아버렸던 것이다. 결국 사다모토는 잘못된 사상과 연결하여 말 그대로 '혐한'을 가지게 되었고, 나디아가 가지고 있었던 만화의 성향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말았다. 결론적으로는 혹사시키려니까 실패했다는 해석이 가장 옳다고도 볼 수 있다.
시간의 부족과 온갖 스트레스는 안노에게 대미지를 안겨주었고 결국 터져버린 것은 바로 유명한 '무인도' 이야기였다. 물론 마지막의 이야기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었고, 나디아는 엄청난 명작 만화로서 이름을 날리게 되었지만, 가이낙스는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지 못하였다. 오카다 토시오는 가이낙스를 나가버렸고 (이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본인은 못 버텨서 나왔다는데 주위에서는 일을 너무 안 해서 잘렸다고도 한다.) 왕립우주군에서 쌓아왔던 빚을 다 갚지도 못하면서 안노 역시 몇 년간의 공백을 가지게 된다. 결국 가이낙스를 떠나간 사람들은 새로운 회사 '곤조'를 만들게 된다.
나디아가 보여주는 이야기는 앞서 설명했듯 '인간의 미래는 밝다, 그 미래를 가져가야 되고, 만들어나가야 되는 것은 우리 인간들이다'.라는 주제를 보여주었다. 작품의 시기였던 1880년대는 제국주의가 만연하고, 근대화의 흐름 속에서 세계는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던 시점이었다. 이 시기의 역사에서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차별과 멸시를 당해오던 흑인이라는 주체를 잡아오고 하나의 주체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가 될만한 작품이다. 또한 검은 피부색이 가지고 있는 애로티카스러운 매력, 그리고 인간에게는 절망의 끝에서도, 마지막의 순간에서도 희망이 조금이나마 남아있음을, 기적을 갈망하고 원하던 그의 마음과 사상이 절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물론 지금 와서는 나디아의 발암적 요소, 네오 아틀란티스의 대한 재평가가 여럿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의 분쟁과 전쟁, 혐오 사상이 주를 이루는 세계에서 나디아가 보여주고자 하는 이야기는 90년대에도, 그리고 지금 2020년대에도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는 밑의 작품에서 시대적인 이야기가 고스란히 나타나게 된다.
2. 세기말의 이야기, 그리고 오메데토.
나디아가 끝을 마쳤다. 4년여간의 공백에서 안노는 휴식과 소재 구상을 하며 지내오던 날을 지나 1995년, 한 작품을 내세우게 되었다.
에반게리온의 등장은 애니메이션 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메카 물의 요소를 담고 있었지만 안노의 가장 큰 장점이자 특징이었던 '오마주', '패러디'에 세기말의 감성을 더하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나디아까지만 하더라도 정석적으로 가던 그의 스타일은 에바를 통해 해학적이면서도 괴랄한 모습으로 변하갔고, 캐릭터들의 성격 하나하나의 모습, 그리고 나디아와는 정 반대의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물론 같은 방식과 이야기로 간다면 그것은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이나 다름없겠지만 말이다.
에반게리온의 엄청난 파장과 파문, 그리고 그 충격의 전개에서의 더 충격적인 마지막화는 그렇게 작품의 괴 이성을 더하가고 만다.
그의 이러한 성향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 바로 26화의 마지막 부분이다. 그 유명한 '오메데토'의 이야기. 에바의 TV판을 마무리 짓는 나름 기념비적인 회차긴 하지만 너무나도 뜬금없는 축하의 현장과 갑작스러운 하얀 자막의 등장에 팬들은 온갖 욕과 비난을 쏟아냈다. 허무하다면 허무한 결말, 그렇지만 안노의 이야기는 허무하지도, 뜬금없지도 않았다.
에반게리온의 주체는 바로 '인간의 선과 악'이었다. 그런 점을 드러내는 것은 바로 '인류 보완계획'이라는 소재였다. 사도와 메카들 간의 싸움, 그리고 그 사이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인류 보완계획은 어긋난 인간들의 불안과 불완전성을 없애며, 하나의 일치가 되어가는 존재로 만들어내겠다는 기획이었다. 주인공 신지의 어머니였던 이카리 유이의 첫 기획을 지나, 그녀의 죽음 이후 인류 보완계획의 이름을 만들어냈던 아버지 겐도는 기획의 구체적인 모습을 중간의 집단 단체 '제레'의 힘을 빌려 만들게 된다. 이러한 기획은 인간의 죽음을 베이스로 잡아가는 것, 그리고 겐도의 소원이자 염원이었던 '죽은 아내를 다시 만나는 것.'을 실현하기 위해 인간들을 서서히 죽음으로 몰아넣기로 결심하게 된다.
하지만 겐도의 염원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는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서 자세히 나오게 된다. 중간에서 벌어지는 뒤통수의 향연, 그리고 레이와의 융합도 대실패로 끝나게 되었다. 인간의 욕심으로 시작되었던 이야기는, 잔인하게 마무리를 지었고, 결국 어딘가 뒤떨어진 이야기의 끝은 죽음이었다. 인류를 재창조하여 새로운 인간으로서 태어나게 한다는 이야기는 나디아의 '네오 아틀란티스'와 매우 흡사하다. 인간들을 자신들의 수하에 두고, 새로운 아틀란티스를 만들어 자신들만의 세력을 태어나게 하는 것. 그것이 네오 아틀란티스의 계획이었고, 인류 보완계획 역시 새로운 인간들의 등장은 당연히 제레라는 집단에게는 좋은 일이나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만 보면 '인간의 죽음과 세계가 멸망한다'라는 해석도 가능하고, 에바라는 작품에 맞게 해석해본다면 '인간을 통합하여 완벽하고 초월을 넘는 존재가 되어간다'라는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물론 에바의 이야기는 불확실한 미래를 거는 인간들의 희망을 주체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원하는 영원한 생명과 영생, 그리고 가능성을 믿고 이를 만들었지만, 자신의 욕심과 독자적인 행동으로 죽음을 만들어간다는 이야기의 양면성도 있다. 자신의 목적을 만들기 위해 다른 사람의 목숨과 죽음을 장난감처럼 이용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며, 인류 보완계획 역시 영원한 생명과 다른 모습으로는 이기적이고 잔인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TV판의 에반게리온으로 돌아간다, 마지막의 오메데토는 분명히 시청자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으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장면은 숨은 뜻과 당시의 일본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90년대 중반의 일본, 에바가 방영이 되어가던 시기의 1995년 일본은 패배의 분위기가 강하던 시기였다. 80년대 초중반 여유롭고 항상 밝던, 미소를 잃지 않던 버블경제의 끝은 바로 '잃어버린 10년'의 시작이었다. 나디아가 방영이 되던 90년부터 서서히 내려가던 일본의 경제는 90년대 중반 기어코 거품경제의 모든 거품이 꺼져버린 이후였다. 많은 서브컬처 애 서 버블경제에 대한 디스와 풍자가 가득해졌고, 실생활은 더더욱 암울하고 우울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실업률이 올라가면서 회사에서는 일자리가 있어도 채용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물가의 인플레와 같은 이야기를 버티지 못하고 극단적인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간 항상 웃음과 높은 성장으로 아시아의 최고 자리를 잡아왔던 일본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다. 자부심을 가지던 일본인들은 점차 우울의 늪에 빠졌고, 오타쿠들의 문화는 더더욱이 빛과 어둠으로 갈리며 히키코모리의 등장을 가속화시켰다.
이런 어두운 시기에 등장한 에반게리온은 당연히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암울하고도 어두운 시기를 잡아서 이야기 자체를 이렇게 만들어버렸다. 물론 안노 특유의 난해한 철학과 이야기를 본다면 틀리지도, 크게 어긋나지도 않지만 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에바의 이야기는 당시 일본 내에서 많아져가던 히키코모리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인류 보완계획과 마지막 사도와의 결전, 그리고 뜬금없는 축하의 향연 속에서 에반게리온의 TV판은 끝을 낸다. 중간의 AT필드의 이야기 역시 이를 둘러싸고 나오게 되는데, 인류 보완계획은 인간의 죽음을, 그리고 AT필드의 보호 아래에서 서로 간의 의지와 이해를 통해 같이 살아가는 모습을 비교하는 묘사와 질문이 나왔었다. 주인공 신지 역시 많은 고민과 갈등 속에 결국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서 같이 살아가고 싶다는 의지와 선택을 만들며 오메데토의 이야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물론 에반게리온의 지나가는 이야기를 생각한다면 너무나도 뜬금없겠지만, 주인공에게 축하의 박수와 파티를 열어주는 것은 이 작품을 같이 봐왔던 사람들에 대한 안노의 축하인사, 그리고 패배감과 좌절에 빠져있는 사람들에 대한 찬가와 격려, 축하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검은 화면에 등장하는 하얀 자막은 이런 해석에 결정타를 보여준다.
'아버지, 고마워요. 어머니, 안녕. 그리고 모든 아이들에게... 고마워요.'
라는 대사는 희망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어두운 곳에서 쓸쓸히 자신의 모습을 숨기며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준다. 안노는 암울하고 어두운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그리고 삶에 대한 희망을 잃지 말아 달라는 손을 간접적으로 내세웠던 것이다. 그리고 '신세기'라는 제목의 맞게, 이 작품을 보고 있는 '아이들'에게, 즉 시청자들에게 미래는 달려있다는 것도 알려주듯 말이다. 이를 바꿔나가는 것은 너희들, 그리고 나디아에서 말하고자 했던 '희망은 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달려 나간다면, 분명히 어딘가에서 희망은 보일 것이다.'와 일맥상통하는 모습이다.
표면적인 오메데토의 이유는 '제작비와 시간 부족으로 벌어진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안노 본인은 이 결말을 마음에 들어 했고, 아예 에반게리온 시리즈의 끝을 이렇게 끝내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의 제작으로 결국 TV판만의 마지막으로 남게 되었던 점은 놀랍고도 어딘가 부족한 부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오메데토라는 뜻을 본다면 더더욱이.
3. 에반게리온, 그 이후의 이야기.
에바의 성공은 안노에게는 양날의 검이었다. 가이낙스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수익과 돈, 그리고 인기를 얻었고, 에반게리온의 캐릭터들은 연신 애니 잡지 '아니메쥬'와 '뉴타입'의 인기순위, 그리고 표지를 독식하다 시 피했다. 1,2위를 다투었을 정도였으니 인기의 정도는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많은 만화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받은 영향을 다시 베풀기도 했다. 세일러문의 히노 레이에서 따왔던 이름 '아야나미 레이'는 이미 유명하고, 세일러문에서 이어졌던 성우 캐스팅은 뜬금없이 '크레용 신짱'에도 전달되었는데, 안노가 좋아하던 세일러문의 성우였던 '미츠이시 코토노'는 미사토의 성우로서 활약하게 되었고, 이를 본 크레용 신짱의 제작진은 새로운 캐릭터였던 '아게오 마스미' (차은주)의 성우로 미츠이시를 캐스팅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성공에 도취되어갔던 가이낙스는 방만한 경영을 시작하기에 이른다. 안노는 이에 큰 실망을 하게 되었고, '될 대로 돼라'라는 식의 운영은 기어코 몇 년 후의 탈세 사건까지 초래하게 되었다. 물론 그 사이에 제작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그렇다. 우리에게는 그 남자! 그 여자!로 알려진 작품. 놀랍겠지만 바로 안노의 작품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힘을 빼고 에바의 독기를 없애며 순정만화 원작을 바탕으로 세세한 인간의 심리 묘사와 트라우마에서 극복해나가는 모습을 그려낸 만화로서 호평을 받았다. 다만 안노답게 마지막은 용두사미로 끝나버렸고, 후반부는 인형극 하듯 종이인형을 가지고 연출을 내버린 모습은 어딘가 이상하기까지 했었다. 결말이야 뭐 말할 것도 없겠지만 그럼에도 작화는 지금 봐도 매우 훌륭하며 다양한 실험적 연출은 지금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 결말의 부분은 프로듀서와의 갈등오로 결국 하차해버리면서 이야기가 멀리 가버렸던 것도 감안은 해야 된다.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안노는 잠시 애니메이션 계를 떠나 실사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게 된다.
시간이 흘러 탈세 사건으로 인해 결국 안노는 대표이사에 취임하게 된다. 에바의 인기에도 가이낙스의 운영 때문에 많은 사원들에게 돈은 들어가질 못했고, 결국 경영 악화로 인하여 2000년대에 들어서 가이낙스는 개판이 되어버렸다. 에바를 통해 가이낙스를 끌어올린 사원들의 취급은 여전히 열악했고, 일을 하지 않는 직원들은 방임 그 자체였으니... 그간 '마호로 매틱'이나 '프리크리', '꼬마 공주 유시' 같은 작품이 나오기는 했지만, 이러한 작품에 안노가 관여한 것은 아니다. 가이낙스 역시 탈세 이후의 여러 회복을 위해 다양한 만화를 만들었고, 안노가 퇴사하던 시기에는 '천원돌파 그렌라간'이라는 희대의 명작품을 만들었지만, 여전히 가이낙스는 썩을 대로 썩어 있었다. 안노는 이런 모습에 질려 몇 번이나 시스템의 개선과 복구를 요구했지만 매번 거부당하였고 이는 결국 그가 가이낙스를 퇴사한 뒤 '스튜디오 카라'를 만들게 된 이유가 되었다.
4. 트라우마의 극복,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
지금의 안노, 스튜디오 카라를 통해 에바의 신 극장판과 그렇게 좋아하던 괴수물 고질라와 울트라맨을 새롭게 창조해내면서 만들어가고 있다. 영원히 꿈꿔오던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이야기에 빠져서 다행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내면은 그러지 못하였다.
지금은 만화가와 애니메이터를 지나 연출가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안노. 에반게리온 Q를 제작하여 얻었던 심한 우울증은 그를 끊임없이 괴롭혀왔다. 다행히 만화가인 아내의 도움과 보살핌, 그리고 요양을 가장한 휴식으로 지금은 다행히도 완치가 되었다고. 나이가 들어가면 멋들어진 중년을 지나 노년이 되어간다고는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지금 모습은 어딘가 병든 모습이 강하다. 물론 다르게 본다면 거장의 면모...라고 보면 그렇게 보인다고 해야 되나? 하는 모습은 여전하다. 물론 젊을 적의 패기 넘치고 다양한 시도를 펼치며 애니메이션의 판도를 뒤바꾸던 그의 모습은 떠나갔지만, 패러디와 오마주, 그리고 실험과 증명을 통해 그는 증명하려고 노력한다. 과감한 실험정신을 통해 울트라맨을 새롭게 만들어냈고, 고질라 역시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다.
안노의 어린 시절은 암울하기 짝이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나무를 베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는데, 동료의 실수로 다리를 절게 되었고 이에 대한 스트레스는 아들에게 전달되었다. 폭력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안노는 그럴 때마다 TV와 만화에 빠져들었고 그림 실력 역시 갈수록 성장하게 되어 애니메이터로의 첫 시작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가 성장하고 나서도 우울한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작품들 (왕립우주군, 톱을 노려라!)은 연일 호평을 받았지만, 상업적인 실패로 빚더미에 오르자 가이낙스를 창립했더니 새롭게 받은 만화는 온갖 싸움과 시간이 없어 중간 부분이 처절히 망해버리고 빚더미와 그 빚을 갚기 위해 처절한 하청과 후속작들을 위한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나디아는 큰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수익은 방송사에서 가져갔고, 에바는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가이낙스의 운영은 그에게 더욱더 큰 상처로 남게 되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어려운 현실에도 회사는 이를 돕지 않았고, 에바가 종영한 직후 그를 살해하겠다는 글을 보면서 정신적인 충격을 크게 받았던 것도 컸다.
이런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그는 버텨가며, 그리고 감내해가며 작품들의 완성을 해왔다. 물론 그도 사람이기에 같이 만들던 동료들과의 갈등, 그리고 자살 시도와 우울증은 그에게 큰 상처와 아픔으로 남았다. 믿었던 회사의 사건들과 탈세라는 최악의 사건까지. 하지만 그는 아내의 도움과 보살핌, 그리고 또 다른 동료들의 지원으로 버텨가며 다시 얼어서게 되었고, 애니메이터에서 이제는 어엿한 실사 영화의 성공한 감독으로 남았다.
토미노 요시유키와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거장들의 사이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던, 메카 물을 만들면서도 자기만의 작품을 잃지 않은 그는 귀감이 될 수밖에 없다. 그가 미야자키의 정 반대 노선을 선택한 것도 특이한 이야기이다.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과 모노노케 히메의 같은 시기의 개봉, 그리고 모노노케 히메의 '살아라', 엔드 오브 에바의 '그러니까 모두, 죽어버리면 좋은데'의 차이점은 상당히 재밌게 보이는 점인데, 나디아 역시 인간에 대한 희망에서 보이는 여러 어두운 일면을 다루었고, 토미노의 작품에서 나오는 인간의 내면은 언제나 어둡다, 그리고 희망은 언제나 양면성이 있다는 것을 안노 역시 받아들여 만들어 낸 것이 나디아의 전쟁에 대한 에피소드와 죽음, 결정적인 것은 에반게리온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역시 미야자키는 그의 재능을 인정하였고, 실사 영화의 제작 역시 그의 조언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바람이 분다'에서도 우울증에 빠져있던 그를 주인공의 성우로 캐스팅하기도 했다. 여러모로 안노의 곁에는 좋은 사람들도 많고, 그와 충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에서도 아이러니하다. 미야자키는 그의 이야기를 누구보다 공감해주었고, 옆에서는 때론 질책도 하였지만 여러 트라우마를 이겨냈던 이유 중 하나는 그의 곁에, 이러한 스승이 존재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5. Don't forget to try in mind, 그리고 오메데토.
안노 히데아키, 그의 작품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때로는 그의 열정적인 이야기, 때로는 그의 퇴폐적이면서도 어딘가 부족한 듯한 괴담 같은 이야기, 그리고 좋아하는 만화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던 사람이라는 생각을 말이다.
안노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바로 '울트라맨'이다. 오사카 예술대학을 다니던 시기에는 본인이 직접 만든 패러디 영화를 찍었었을 정도로 그의 열정은 도를 텄었다. 창작 욕구를 불태우던 그는 기어코 '왕립우주군'이라는 작품을 시작으로 첫 데뷔를 하였고, 기어코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는 역작으로,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희대의 대작으로 남게 되었다. 물론 에반게리온에서 보여주었던 여러 요소들은 다양한 의견과 논쟁으로 공존하여 지금까지도 그가 욕을 먹는 이유가 되었지만.
그의 특징은 바로 '패러디'와 '오마주'를 적극 활용한다는 점이다. 이데온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 또한 여러 활용폭을 넓히며 나디아에서는 미래소년 코난과 천공의 성 라퓨타를 오마주 하였다. 에반게리온 역시 여러 작품들을 넣으며 그런 요소를 자연스럽게 담았었고, 실사와 애니를 섞어내며 실제의 모습이 애니메이션에도 나오기도 한다. 그런 그의 연출력은 가히 높게 평가받을만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러 논란 역시 많다. 에바의 종영 이후 일명 '오타쿠'를 비판하는 논조의 인터뷰를 자주 하였고, 여러 소비적인 문화 역시 혐오하여 자주 언급을 했었다. 하지만 오메데토의 모습에서도 나왔듯이 그가 말하고 싶은 메시지는 '사회적인 것을 두려워하는, 오타쿠들이 나쁜 것이 아니다. 나도 역시 오타쿠였고 그럼에도 나와서 활동을 하니까 이렇게 살고 있지 않나, 적극적으로, 그리고 용기 있게 살아봐라'라는 식의 비판에 가깝다. 조롱과 비꼬는 식의 이야기는 전혀 아닌 것이다. 오타쿠 같은 팬층을 비판하는 것이 아닌, 사회와 관계 맺기를 두려워하는 히키코모리의 비판에 훨씬 가깝다. 이미 에반게리온의 결말에서도 이를 말했었고, 나디아의 까칠하고 관계 맺음을 두려워하는 성격을 반쯤 드러내기도 했다. 되려 그는 거의 인싸에 가깝기도 했다.
그의 트라우마, 그리고 여러 실패와 회사와의 갈등은 그에게 짙은 상처로 남았을 것이다. 가이낙스를 나오던 이유는 다름 아닌 '더 많은 인센티브를 주기 위해'라는 이유였다. 탈세 이후에도 변하지 않는 회사 상황을 보며 실망을 하던 그였기에, 그리고 많은 명작을 같이 만들었던 미워도 좋고, 좋아도 싫은 가이낙스를 떠나가면서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포기할 수도 있었고, 자신의 꿈을 버릴 수도 있었던 좋은 기회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손을 놓지 않고, 주변의 도움을 버리지 않으며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꿈을 이루어가며 살고 있다. 그는 안노 히데아키였기에 더 일어섰다.
그가 2018년, 삿포로 맥주의 광고에서 남겼던 말이 있다.
이해하기 쉽다면, 거기서 끝나 버리는 것이죠.
안노의 작품은 항상 이해하기 어려운, 그리고 복잡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그런 점을 많이 생각을 하고, 찬사와 비판의 사이에서 의견을 내기도 한다. '가면 우울증에 걸린 예술병', '예술의 극치이자 천재 애니메이터'라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어려운 그의 작품들을 이해하기 어려우면서도, 그 어려운 모습 안에서도 해석을 찾아낸다면, 그리고 안노가 말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깨달아 간다면 그것 만큼 재밌는 일은 없을 것이다. 왕립우주군과 톱을 노려라의 우주를 지나 나디아의 푸른 바다, 에반게리온의 신세기,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의 독특한 일상 이야기를 지나면서 그의 작품은 언제나 살아있을 것이고, 울트라맨과 고지라는 그에게, 그리고 그의 팬들에게 소중한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안노가 건네주었던 손을, 그리고 사회에 나가서 열심히 살고 사람들을 만나면, 그렇다면 자신에게는 또 다른 인연이 다가올 것이고, 암울하고 어두운 시기를 지나간다 생각하면 본인에게 새로운 인생이 열릴 것이라고 믿고 싶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돌보며, 신은 우리를 보며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해 낼 것인지 보며 당신을 도울 것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믿는다면, 누군가는 당신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오메데토'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