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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S Apr 06. 2019

옆집 엄마와 잠시 헤어지려 합니다

이제, 옆집 아이와 비교하지 않으려고요

첫 째 제이는 22개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녔다. 네 살 때 보내려고 했지만 체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져 더 이상 집에 끼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다행히 금방 적응을 했고, 친구들과 노는 것이 재미있었는지 어린이집을 매우 좋아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제이는 사람을 좋아하는 관계지향적인 아이였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에 별로 흥미가 없었고, 항상 엄마 아빠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그래서 함께 집에 있으면 정말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어쩌다 친구가 집에 놀러라도 오면 친구에게 지나치게 관심을 보여 오히려 싸움이 벌어지곤 했다. 이런 아이의 성향 탓에 어린이집에 다니기 전까지 고생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사람에게 질척대는(?)' 아이의 성향을 단점이라 생각했었다. 쿨하지 못하게 대체 왜 저러는지 보고 있노라면 참 답답했다. 그러나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그것을 장점으로 말씀해주셨고, 눈에 거슬리던 행동들이 점점 좋은 방향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제이의 장점인 사회성을 살려주기 위해, 내가 직접 친구들을 만들어 주겠다며 열심히 설쳐대고 다녔다.




4년 전 남편의 직장이 지방으로 이전하는 바람에 임신 9개월의 몸으로 이 곳에 이사를 왔다. 오자마자 첫 아이 제이를 출산했고, 그야말로 독박 육아였다. 친정도 시댁도 친구도 없는 이 곳에서 아이의 친구는커녕 내 친구 하나 만들기도 쉽지 않았다. 나는 일단 친해지면 누구와도 잘 지내는 성격이지만, 낯가림 때문에 아기 엄마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했다. 그래도 사람 좋아하는 이 아이를 위해 나는 기필코 친구를 만들어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제이의 또래 친구들 세 명을 알게 되었다. 낯선 동네에서 독박 육아를 하다 친구들을 사귀게 되니, 새 남자 친구가 생긴 것 마냥 설레고 기뻤다. 우리는 거의 매일 모여 아이들과 함께 놀았고, 육아 정보나 발달 상황 등을 공유하며 점점 더 친해져 갔다.


모든 관계가 그렇지만 엄마들 간의 관계도 적당한 거리 유지가 중요하다. 아이들 때문에 만나게 된 관계라면 더욱 그렇다. 간혹 마음이 잘 맞아 진정한 친구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나는 엄마들과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딱 그 정도 거리에 있을 때가 편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얼마 후, 앞서 말 한 친구들과 너무 친해져버리고 말았다. 그 결과 친함을 빌미로 한 다양한 간섭이 줄지어 훅훅 들어왔다.

A라는 언니는 육아 공부를 즐겨하고, 실제로 여러 육아 이론에 통달한 정보통 언니였다. 문제는 자신의 육아지식을 자꾸 남의 아이에게 적용시켜 조언인 듯 조언 아닌 조언 같은 충고를 남발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제이 개월에는 학습지 시작해야지. 그리고 너네 집에는 책이 너무 없어. 지금부터 책 육아 시작 안 하면 제이 뒤쳐져. 이 책은 일단 꼭 사봐."


이런 식의 교육에 관련된 이야기부터 아이의 자존감에 대한 걱정까지 다양한 충고가 이어졌다.


"네 살이 되면 애들 사이에 유행이 있어. 카봇이나 번개맨이나. 중고로 사도 괜찮으니까 번개맨 옷을 계절 별로 사다 놔."

"그렇군요. 근데 제이는 아직 번개맨 잘 모르는데"

"다른 애들은 다 알아! 너무 영상 안 보여줘도 안된다?! 그리고 네가 제이한테 랄프로렌이나 그런 브랜드 옷 입혀줘도, 다른 애들 눈에는 번개맨 옷이 더 멋져 보여! 반 애들이 다 부러워해. 그거 입혀주면 정말 자존감이 높아진다니까!!"

"아, 네......;;;;;"


그 언니 말대로 어린이집에서 여러 명의 의기양양한 번개맨들을 목격하긴 했다. 그러나 괜한 고집에 제이에게 그 옷을 사주진 않았다. 그 후로도 그 언니는 서 너번 더 번개맨 옷을 사길 나에게 권했다.


또 다른 동생 B는 자신의 아들과 제이를 항상 비교했다. 그 아이는 언어발달이 느린 편이었는데 말이 빨리 트인 제이가 신경 쓰였는지 계속 걱정을 늘어놓았다. 아이 발달이 더딘 것에 대한 B의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전해져서, 만날 때마다 한 동안 힘들었다.

그러나 요즘은 B의 아들이 제이보다 말을 더 잘한다. 심지어 숫자나 한글, 알파벳까지 읽기도 한다. 제이는 숫자라곤 1과 우리 집 층수인 20만 알고 있다. 한글, 알파벳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겠다. 제이에 비하면 영재 수준인 B의 아들을 보면서 내심 안도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그러나 상황이 변하고 나니 은근히 제이 앞에서 장기자랑을 펼치기 시작했다.


"언니! 난 애 하고 놀아주는 게 너무 힘들어서 요즘 숫자 놀이해주는데, 1부터 100까지 카드놀이로 가르쳐 줬더니 금방 따라 하더라고. 우리 도윤이가 제이한테 카드놀이 가르쳐 줄까?"


눈치 없는 제이가 나서기 시작했다.


"난 하나부터 열까지 셀 수 있어! 하나 둘 셋......"

"우와 제이 잘한다! 그럼 우리 도윤이는 영어로 한 번 세어볼까?

" one, two, three....."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이런 패턴이 여러 번 반복되자 왠지 기분이 이상했다. 문제는 나도 그 동생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아이를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지 않겠다고 항상 마음에 새겼는데, 자꾸 보고 듣고 조언받다 보니 도저히 비교를 안 할 수가 없었다. 또한 비교를 하다 보면 자꾸 걱정이 따라왔다.


아이가 다섯 살이 될 때까지는 사교육이든 홈스쿨이든 학습적인 것을 시키지 않고, 오로지 놀게 하겠다는 나름의 소신이 있었다. 그런데 옆집 아이들과 자꾸 비교를 하면서 나의 걱정 릴레이가 줄줄이 이어지게 된 것이다.


"자기야, 옆집 도윤이는 숫자도 100까지 읽고, 한글 학습지도한다는데, 우리 제이는 이대로 둬도 괜찮을까? 이러다 상등신 만들겠어...."


남편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귀찮은 듯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냥 냅둬!"

"지금 내가 남의 애 이야기하냐?"

"엄마가 오버하니까 애들이 이상해지는 거야. 냅둬 좀"


육아에 1도 도움이 안 되는 자 같으니라고. 육아책 좀 읽고 육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 좀 해보라고 한바탕 잔소리를 퍼부어댔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오히려 육아에 무지한 남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했다.




첫 째 제이가 다섯 살인 지금, 나도 이제 제법 친구들이 많다. 아이와 상관없이 오로지 내가 좋아서 만나는 친구들도 생겼고, 여전히 아이를 위해 만나려고 노력하는 친구들도 꽤 있다. 그런데 요즘, 제이를 위한답시고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만나는 그 관계들이 정말 제이를 위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아이 때문에 만남을 유지하는 엄마들에게 전혀 우정을 느낄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들을 만나면 '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아이'에 대한 이야기만 주로 하게 된다. 심지어 어린이집에서 만나게 된 몇몇 엄마들은 아이들과 함께 여러 번 어울렸음에도 서로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이렇듯 우리의 관심은 모두 아이에게만 쏠리는 것이다. 그것은 서로의 아이를 계속 비교하고, 경쟁시키며, 각자의 육아 소신을 점점 안드로메다로 사라지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한 때는 엄마들과 어울리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이제는 옆집 엄마들과 잠시 헤어져야 할 시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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