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진솔하지 않으면 괴로워진다.
사실 돌이켜보면 처음이 어려웠지, 사람을 끊는 것도 어느샌가 연습하다 보면 쉬워진다. 세상에는 무례한 사람이 넘쳐나고 그건 대다수 나와 맞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겠지만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다른 거다. 영원히 닿을 수 없는 평행선 같이.
상대방도 참고, 나도 참았을 것이다. 일방적인 관계야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이제 한 번도 참기 어렵다. 작은 실수야 여러 번 참을 수 있다. 대화를 통해 바꿔 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커다란 실수를 한번 한 사람은 두 번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걸······ 몇몇의 사람을 곁에 20년 두면서 충분히 알아낸 것 같다.
난 정말이지, 그들을 앞날이 막막할 정도로 사랑했으나 우리는 어긋났다. 모두가 흔히 있는 친구 관계라고 했으나 나는 이게 다른 영역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미 나는 흔히 있는 8명의 고등학교 모임에서 빠져나오면서 친구를 모두 잃었다.
학창 시절 때의 친구를 잃는 경험은 모두가 보편적으로 겪는 일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는,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가족이 나의 울타리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유독 친구관계에 더 신경을 썼다. 정확히 말하면 나의 중학교 친구들을 유일한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가족이 아니었다. 물론 20년 된 두 명은 적어도 가족이라는 형식적인 틀 안에 있었다.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학창 시절의 관계가 아니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 고등학교 친구들 무리는 진작에 홀로 떨어져 나왔다.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지극히 ‘보편적인’ 친구 무리의 청산이라는 것이 바로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관계라는 것도 알았다.
그게 다른 점이었는데도 이상하게 타인들은 나의 중학교 친구들과, 고등학교 친구들의 다른 구조를 같은 영역으로 묶으려 들었다. 나는 환멸이 나고 화가 났다. 이건 그동안 내가 부은 사랑을 존중하는 일이 아니다. 어리다고 해서 관계의 형태를 모르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서툴기야 하겠지. 아주 서툴고 미숙할 것이다. 그러나 이해하지 못한다면 놔두기라도 해야 한다. 감히 말을 얹을 것이 아니라.
나는 나를 존중하지 않았던 어른들에게 아주 화가 나 있다. 나는 내가 얼마나 어린지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다. 그러나 분명히 아는 건 내가 그들에게 부었던 사랑은 이제 내 안에만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랑은 언젠가 또 다른 친구나 새로운 가족을 향해 사라져 가겠지. 이제는 붓는 크기를 조절해야 한다.
* * *
한동안은 개인 홈페이지를 남기고 모든 SNS를 지워야 하나 고민했다. 실제로 지우긴 했었다. 결국 다시 일부분만 새로 만들었지만 말이다.
진실로 말하면 모든 관계에 회의가 생긴 것도 사실이다······. 사실 내 테두리 바깥의 타인까지 신경 쓸 마음의 여유가 없다. 나는 주변인만으로도 벅차고 그들도 이미 내게 충분한 스트레스를 준다. 내가 너무나도 민감한 탓이겠으나.
물론 소통하지 않아도 좋다. 어차피 소통할 사람은 소통하러 찾아온다. 내가 찾아가도 되고. 문제는 얕은 관계로 퍼져있는 사람들이다.
물 흐르듯이 지내면 되겠지. 그렇지만 나는 아예 얕은 관계와는 시작만 쉽다. 그 이후는 너무 어렵다. 그리고 그들은 대개 나의 감각 속에서 가짜로 판명된다.
항상 생각한다. 또 생각의 늪에 빠져든다. 나는 세상이 늘 나와 어긋나 있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세상과 어긋나 있다는 사실을 안다. 매 순간 기쁘게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모든 순간이 행복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세계 곳곳에 자리하는 슬픈 행적들이 나를 생각의 늪속으로 밀어 넣는다. 여전히 세상은 나와 어긋나 있고 그 균열을 자리 잡으려면 한참이 걸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걸 맞춰나가는 게 어른이 되는 길일 테다. 그러나 난 어른이 되기 싫다. 정말이지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 싶을 정도로 나는 어른이 되기 싫다.
그동안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나의 청소년 시절을 갉아먹은 사람들이 참 많았다. 그래서 나는 어른이 되기도 싫었고 실제로 나이만 어른인 스무 살이 되자마자 나 자신이 혐오스러워서 치가 떨렸다. 나는 영원히 아이인 채로 머물러 있다. 아마도 여덟 살. 모든 책임과 배려와 통제가 나를 이루었던 그때부터.
경험은 무기여서 때로 폭력이 된다. 물론 좋은 쪽으로도 쓸 수 있다. 그러나 대개는······.
나는 여기에 동조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완전무결한 어린아이로 살고 싶었다. 나는 아직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는데!
단순히 어린 나이로 살고 싶다는 게 아니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그저 내가 받은 상처를 누군가에게 줄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타인의 상처를 왜 네가 걱정해, 하고 물으면 나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그렇게 살면 네가 되려 괴로울걸.”
나와 스무 살 정도가 차이나는 사촌오빠가 한 말이었다. 우리 집은 이모네 가족과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붙어살았으므로 사촌오빠는 사실상 친오빠와 다를 바 없다. 그러니 나는 말했다.
“그렇지만 타인에게 고통을 줬다는 사실이 내게는 더 괴로워.”
그때다. 그 말이 돌아왔다.
“정신 차려.”
나도 안다. 이것은 미친 짓이다. 그런데 적어도 내가 애정하는 사람들이 고통스럽지 않기를 바랄 수는 있잖아. 내가 너무나도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행복하기를 빌어줄 수는 있잖아······.
방법이 잘못됐다. 모두 욕심인 것 같기도 하다. 나만 잘 살면 된다. 그런데 나는 어디 있지 싶기도 하고······.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나를 잊었다. 망각했다. 세상에서 나를 지워버렸다. 나를 삭제한 채 타인과의 정원을 가꾸어 나가고 있었다. 그러니 애초에 정상적인 인간관계가 형성될 리 없다. 그렇다. 나는 나를 모르는 주제에, 내가 어디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주제에 막막할 정도로 타인을 사랑했다!
그러다 보니 20년 지기와 15년 지기 두 명과 관계를 끊고 보낼 때 아주 많이 충격이었다. 한동안은 그들이 아프지 않기를 바랐으나 또 한동안은 그들이 세상 끝으로 처박히길 바랐다. 물론 그 마음이 미래의 나에게 다시 돌아올 것도 알았다. 상관없었다. 이미 나는 눈을 뜨는 순간 흡입하는 공기와 세계가 모두 지옥이었으니까.
언젠가부터는 이 말도 안 되는 나의 삶이 두려워서, 세상이 삼 년 주기로 반복되는 것 같다는 느낌조차 자주 받았다. 전부 끼워 맞추기식의 논리겠지만 이것은 내가 살기 위해 만든 이론일지도 모른다. 물론 터무니없이 말도 안 된다는 것은 뼈저리게 안다. 단지 가끔 의심할 뿐.
그랬었다. 내가 정의하는 내 테두리 안의 친구와 상대방이 의식하는 친구의 정의는 너무 다른 것 같았다. 돌고 돌아 알아낸 것은 난 가족이라고 정의되는 친구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생활동반자······, 또는 그 이상의 것.
* * *
물론 나도 얕은 관계나 흘러가는 관계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천천히 알아가는 중이다. 그냥 내가 믿을 사람을 자꾸 찾아 헤매고 있는지도 모른다. 상대방에게는 그 관심이 부담일 텐데도 나는 자꾸 가족을 찾으려 들고······. 어쩌면 가족 놀이인지도 모른다. 가족을 찾는 게 아니라 가족 놀이. 소꿉친구와 20년간 소꿉놀이를 했듯이.
그러나 진솔하지 않으면 괴로워진다. 내가 걸린 병의 진단서 속 문장일지도 모른다.
언제부터 나는 소수의 공간에서만 진실해지곤 했을까······. 이런 글을 도대체 얼마 만에 쓰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일 년은 훌쩍 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나는 이토록 고통스러운데, 여전히 고통스러워서 잠조차도 오지 않는데, 내가 편지를 쓰거나 일상, 또는 너스레를 떨다가 이런 나의 삶이 가스가 새듯 누출될까 봐 겁이 나곤 한다.
점차 나의 기준을 세워가는 중이다. 이제야 알았다. 내가 삭제된 채 퍼붓는 사랑이란 ‘퍼부었다는’ 기분만 느끼는 거품이라는 것을.
아직 할 이야기가 많다. 차가운 눈동자가 과거를 바라본다. 나는 점차 냉소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리고 망각의 신을 찾는다. 모든 과거를 잊을 수 없는 자에게 망각을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