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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 페니 Aug 22. 2019

86. 참는 게 미덕은 아니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와 고등학교 6년, 대학교 4년까지 도합 16년을 학교라는 공간에서 배웠다. 그런데 나는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사실 그때그때 보는 시험들에서 나쁘지 않은 성적을 받아왔지만, 공부를 하며 배운 내용들은 시험이 끝나면 잊어먹기 바빴다. 이제 와서 그 시절을 돌이켜보건대 학창 시절 동안 가장 많이 학습한 것은 국영수의 어떤 내용이라기보다는 그 시간들을 견뎌내는 '인내심'이 아니었을까.


하기 싫은 공부도 늦게까지 해내는 법, 자율학습이 아닌 야간 자율학습을 견디는 법, 졸려도 커피를 마시며 버티는 법 같은 것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학습된다. 사회에 나와서 학벌을 보는 이유도 특별한 능력을 보장해주기 때문이 아니라, 적어도 '성실함'과 '인내' 같은 항목에서는 일정 기준 이상을 통과했다고 보기 때문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학습한 성실함과 인내는 사회생활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당장 떼려 치고 싶은 일도 꾹- 참게 되고, 쥐꼬리만 한 월급도 웃으며 받게 되니까 말이다. 그런데 나는 비로소 오늘에 이르러서야 학교가 가르친 그 성실함과 인내가 정녕 나를 위한 덕목이었는가를 되묻게 된다.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의 저자 와타나베 이타루 씨는 참을 수 없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농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했고, 바람대로 유기 농산물 도매회사에서 일하게 된다. 하지만, 꿈꾸던 일을 한다는 설렘은 잠시였고 더 많은 이윤을 내기 위해 각종 비리를 저지르는 회사에 질려 버리게 된다. 더 많은 이윤을 위해서 먹거리마저도 믿을 수 없게 만드는 회사를 보면서 그는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회사 밖을 나와 자본주의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 빵집을 만들겠다고 결심한다.  


자본주의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 빵집은 무엇인가? 첫째, 이윤을 남기지 않는 빵집이다. 이윤은 토지, 기계 같은 생산수단을 가진 자본가가 생산수단을 가졌다는 이유로 가져가는 수익이다. 이타루 씨가 이윤을 남기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이윤은 자본가가 노동자의 노동력을 착취할수록 높아지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이타루 씨는 직원을 고용한 후에도 회사의 재무 상황을 직원들과 투명하게 공유하며, 본인과 아내 마리가 투여한 노동력 이상으로는 이윤을 가져가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 빵집은 둘째, 쉬운 방법을 택하지 않는 빵집이다. 이타루 씨는 이스트 같은 쉬운 방법을 쓰지 않고 천연 효모를 이용한 빵이라는 어려운 길을 선택한다. 그 이유는 이스트 같은 기술혁신이 꼭 노동자에게 이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얼핏 생각하면 기술 혁신을 통해 노동자들이 더 쉽게 일하게 되니, 좋은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는 기술혁신을 통해 노동이 단순해지면 노동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전락해 임금이 떨어지고, 쉽게 노동력을 대체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때문에 이타루 씨의 빵집에서는 천연 효모를 이용해 수고를 들여 제대로 빵을 만든다. 그리고 그 빵을 제대로 된 값을 받고 판다. 그래야 이타루 씨의 빵집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도 제대로 된 임금을 지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 빵집의 마지막 원칙은 팽창하지 않고 순환시킨다는 것이다. 돈은 우리가 물건을 사고, 음식을 사는 '돈'과 이윤을 위해 투자하는 '자본'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돈은 나에게 들어왔다, 나갔다 하면서 순환한다. 반면, 두 번째 돈인 '자본'은 한 곳에서 이윤을 불리며 점점 더 팽창한다. 이타루는 팽창하며 스스로를 배불리 하는 자본보다는 순환하며 여러 사람을 배불리 하는 첫 번째 돈에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빵집 운영에 있어서도 더 많은 이윤을 내서 빵집을 확장시키는 것보다는 지역의 생산자에게 원재료를 구입해오고, 또 그렇게 만든 빵을 지역의 소비자들에게 파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빵집을 운영한다. 


혹자는 말한다. 사회에 부조리한 면, 부정적인 면이 있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이미 자본주의 사회가 이렇게 작동하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한다. 개인이 자본주의를 바꿀 수 있을까? 물론 없다. 하지만, 개인은 적어도 그 개인 한 사람의 삶은 바꿀 수 있다. 이타루 씨의 운영 방식을 통해 세상이 조금이나마 바뀌었는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타루 씨 본인의 인생은 그 전과 백팔십도 달라 보였다.


잡코리아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올해 국내 중소기업에서 채용한 신입사원 10명 중 4명이 퇴사했다고 한다. 누군가는 인내심이 없다고, 끈기가 없다고 그들을 비난한다. 하지만, 그렇게 나오는 사람이 있어야 회사도 무언가 바뀌지 않을까? 모두가 참지 않아도 되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한다. 사람들이 참지 않는다고 해서 일을 안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건강한 상태에서 사회에 이로운 것을 내놓으려고 노력한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일을 하지 못하는 우리 할머니마저도 전화를 하면 매일 같이 자식들이 잘 되라고 기도하신다고 한다. 사람은 그런 존재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것은 참을 수 없다고 나선다면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성실함과 인내에도 장점은 있다. 하지만 나는 택할 수 있다면 언제고 참지 않아도 되는 삶을 택할 것이다. 모두가 참지 않아도 되는 세상은 더 친절하고 따뜻할 거라고, 심지어 더 부유할지도 모른다고 믿는 것은 너무 나이브한 상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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