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소유권이라는 환상

내 것이 아닌 마음을 놓아주는 법

by 강훈

2025년의 끝자락, 우리가 가장 아프게 복기하는 것은 어쩌면 성취의 실패가 아니라 사람의 변심이다. 믿었던 친구가 내가 그토록 혐오하는 이와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을 볼 때, 혹은 나만의 것이라 믿었던 우정의 무게추가 다른 쪽으로 기울어질 때, 우리는 서늘한 배신감을 느낀다. "어떻게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라는 원망은 사실 "너는 내 편이어야만 해"라는 강한 소유욕의 다른 이름이다.


소유의 우정 vs 존재의 우정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그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에서 인간의 태도를 두 가지로 나누었다. '소유적 양식'으로 관계를 맺는 사람은 상대를 내가 가진 영토의 일부로 여긴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그도 싫어해야 하고, 그의 시간과 감정은 오직 나를 향해 독점적으로 흘러야 한다고 믿는다. 여기서 타인은 독립된 인격이 아니라 나의 자아를 확장해 주는 ‘부속물’로 전락한다.

반면 ‘존재적 양식’의 관계는 상대의 독립성을 있는 그대로 긍정한다. 그가 누구와 친하게 지내든, 그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은 그의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배신감이라는 감정의 정체는 사실 상대가 변해서가 아니라, 상대를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나의 ‘착각’이 깨졌을 때 발생하는 파편이다. 관계는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곁에 머무는 기적을 목격하는 일이다.


관계의 등급을 높이는 법: '감정적 비동기화'

내가 싫어하는 이와 내 친구가 가깝게 지내는 풍경은 분명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하지만 진짜 성숙이란 이 고통 앞에서 '나와 타인의 감정을 비동기화'하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내 친구의 인간관계가 나의 적대감과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는 공식은 오만이다.

그가 내 뒤통수를 쳤던 이와 가깝게 지낸다고 해서, 그것이 곧 나에 대한 부정은 아니다. 그저 친구의 세계관과 나의 세계관이 겹치지 않는 영역이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뿐이다. 이 지독한 객관화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관계의 하수'에서 '고수'로 올라선다. 넓은 마음이란 모든 것을 수용하는 호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세계가 나와 다르게 돌아가고 있음을 묵묵히 지켜봐 줄 수 있는 단단한 거리감이다.


2026년, 더 깊고 넓은 우주를 위하여

사람의 마음은 물과 같아서 가둘수록 썩고, 흘려보낼수록 맑아진다. 우리가 2025년에 겪은 그 옹졸한 질투와 배신감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타인을 얼마나 뜨겁게 '소유'하고 싶어 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하지만 이제는 그 뜨거움을 '존중'의 온도로 바꿔야 할 시간이다.

새해에는 누군가를 '내 사람'으로 만들려 애쓰기보다, 그가 누구의 사람이든 상관없이 그와 함께하는 '순간' 자체에 몰입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타인은 결코 나의 소유가 될 수 없으며, 관계 또한 내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재산이 아니다. 타인의 자유를 허용할 때 비로소 나 또한 관계의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텅 빈 손이 쥐는 위대한 자유

2025년 한 해 동안 누군가에게 서운했고, 누군가를 원망했다면 그 마음의 밑바닥을 가만히 들여다보라. 거기엔 상대를 내 틀에 가두고 싶어 했던 어린아이 같은 욕망이 웅크리고 있을 것이다. 이제 그 아이의 손을 놓아주자.

2026년에는 더 넓은 궤도를 가진 인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내 곁을 떠나 다른 별과 공전하는 이들을 축복해 주고, 내가 싫어하는 이의 곁에서도 평안을 찾는 이들을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 관계의 레벨을 높인다는 것은 더 많은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를 거쳐 가는 모든 인연을 '자기 자신'으로 살게 해주는 것이다. 텅 빈 손이라야 비로소 더 넓은 세상을 품을 수 있듯이, 소유를 포기한 자만이 진짜 우정을 얻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