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이라는 이름의 실종

거룩, 획일화된 세계에서 원본으로 남는 법

by 강훈

종교적 문맥에서 '거룩'은 대개 따분한 단어로 취급받는다. 금욕적인 생활이나 경건한 표정, 혹은 일상의 재미를 삭제한 도덕적 결벽증 정도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룩의 본질인 히브리어 '카도쉬(Kadosh)'는 결백함이 아니라 ‘구별됨’ 혹은 ‘분리’를 뜻한다. 이는 단순히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똑같은 트렌드를 쫓고 똑같은 욕망을 전시하는 획일화된 세상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빛을 잃지 않는 실제적 결단을 의미한다.


트렌드라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을 권리

우리는 누구나 유행에 뒤처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남들이 입는 옷을 입고, 남들이 가는 장소에 가며, 대중이 열광하는 가치관을 복사하듯 내면화할 때 우리는 비로소 안전함을 느낀다. 하지만 그 안전함의 대가는 가혹하다. 타인의 욕망을 나의 것인 양 착각하며 사는 동안, 나만의 고유한 서사는 지워지고 만다.

신앙이 주는 거룩의 유익은 바로 이 '유행의 압박'으로부터 우리를 구별해내는 데 있다. 진정한 거룩은 세상을 등지는 것이 아니라, 소란스러운 유행의 한복판에서도 나만의 속도와 방향을 지키는 태도다. "모두가 그렇게 한다"는 집단의 논리에 무비판적으로 동조하지 않고, 오직 나만이 낼 수 있는 주체적인 목소리를 지켜내는 것. 이것이 거룩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첫 번째 주권이다.


‘대중’이라는 이름의 영혼 없는 복제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José Ortega y Gasset)는 현대 사회의 위기를 예견하며, 자기 자신이 남들과 똑같다는 사실에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을 ‘대중인(Mass-man)’이라 불렀다. 이들은 스스로 고뇌하여 가치를 창조하기보다, 그저 다수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휩쓸려 가는 데서 편안함을 느낀다. 이들에게 개성이나 고유함은 오히려 제거해야 할 불편한 장애물이다.

신앙적 거룩은 바로 이 '영혼 없는 복제'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저항이다. 거룩은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다. 세상이 효율과 자극적인 유행을 숭배할 때 정직과 느림의 가치를 지켜내고, 모두가 혐오의 유행에 가담할 때 홀로 사랑의 자리에 머무는 행위는 어쩌면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인간의 고귀함이 증명된다. 거룩은 대중이라는 거대한 기계의 부품이 되기를 거부하는 ‘나만의 정신’의 회복이다.


상처마저 고유함이 되는 원본의 힘

거룩을 도덕적 완벽함으로 오해하면 신앙은 곧 피로가 된다. 그러나 진짜 거룩은 자신의 상처와 약함마저도 유행하는 방식대로 포장하지 않는 정직함에 있다. 세상은 성공과 행복이라는 트렌드에 맞춰 자신의 삶을 보정하라고 강요하지만, 거룩한 개인은 자신의 연약함과 아픔마저도 하나님의 은총이 머무는 고유한 흔적으로 받아들인다.

내가 나인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자각, 남들의 평가나 유행이라는 거울을 깨뜨리고 오직 하나님의 시선 앞에 한 사람으로 서는 평온함. 이 상태에 도달한 사람은 더 이상 타인의 박수에 목매지 않는다. 거룩은 우리를 세상의 유행을 소비하는 부속품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상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원본’으로 꽃 피우게 한다.


세상을 깨우는 고유한 향기

결국 거룩은 나 혼자 깨끗해지는 이기적인 행위가 아니다. 한 사람의 주체적인 삶이 내뿜는 고유한 향기가 주변의 획일화된 악취를 덮고, 그 독립적인 삶의 태도가 다른 이들에게도 "너로 살아도 괜찮다"는 용기를 주는 과정이다. 고인 물처럼 정체된 도덕성이 아니라, 흐르는 물처럼 주변의 획일성을 적시고 다채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 그것이 거룩의 진짜 효용이다.

당신은 지금 누구의 트렌드를 따라 걷고 있는가. 당신의 욕망은 진정 당신의 것인가, 아니면 집단이 주입한 환상인가. 획일화된 행진에서 잠시 발을 빼는 것, 그리고 내면의 하나님의 성품이 가리키는 고유한 길을 선택하는 것. 그 고독하지만 아름다운 이탈이 바로 당신의 생을 빛나게 할 진짜 거룩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