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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미 Jan 10. 2020

 #10. 생전 처음 무당집에 다녀온 날

새해부터 재수가 없다

아주아주 힘들 때마다 가끔씩 철학관도 다녀오고 인터넷으로 사주도 보고 신년운세도 보곤 했다. 생각해보니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 운세를 가장 많이 보지 않았나 싶다.


2016년과 2017년은 내 인생에서 이리도 힘들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여기는 금전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남편의 죽는소리 및 하소연이 큰 역할을 했다. 이때쯤 불안증도 같이 생긴 것 같다. 정말 이혼이라도 해야 이 불안함이 멈출까도 많이 생각했지만, 남편도 오죽 힘들면 그럴까 싶어 나 혼자 꾹꾹 참았다. 일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불안한 마음도 모르고 지나간 것 같다.


작년, 포기할 건 포기하고, 새로 시작할 건 새로이 시작했다. 집도 장만하고 무언가 자리를 잡혀간다 생각했다. 그러니 갑작스레 내 미래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무엇하며 살 것 인가? 나는 어떻게 살 것 인가? 아무래도 남편을 믿고 그에게 의지하기엔 아직 믿음직스럽지 못한 구석이 많았다.



말로만 듣던 유명한 무당집을 갔다.  철학관은 종종 가봤지만 티브이에서 보던 그런 신당이 있는 무속인의 집은 처음이었다. 딱 앉아마자 묻는다.

 

“어디서 왔어요?”

“말레이시아에서 왔어요.”

“한국 오지 마. 딱 그 말이 들리네.”


그 무당 말에 의하면, 나는 운이 지지리도 없는데 한국에 안 살고 외국 살아서 그나마 이 정도로 액땜하며 산단다. 그러면서 내 팔자는 남자 사주로 두 집살림을 해야 한단다. 이게 무슨 해괴망측 한 소린지... 휴.. 한숨이 나온다.. 여기까지는 긴가민가 했다.


“2016-2017년 엄청 힘들었는데? 이때 이혼해야 했어. 아니 어떻게 이혼 안 하고 살았지? 이혼 안 했음 남편 죽었을 텐데..”


아니 이건 또 무슨 시나리오... 남편이 아직 살아 있기에 죽는 건 말이 안 되고, 2016-2017년은 너무 힘들었기에 그건 또 맞는 말이었다. 그 후부터는 혼란의 도가니였다..


“라이미씨는 남자의 사주로 태어났고, 자기가 일해서 자기가 벌어먹어야 하는 팔자예요.. 그동안 돈을 엄청 썼네. 돈 벌면 그보다 열 배가 나갔어. 내년에도 그럴 거야. 그리고 2016년에 이혼을 안 했다고 잘살라는 법이 없어요, 2021년에 또 이혼수가 있어요..”


아휴...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이걸 그냥 웃고 지나치기엔 중간중간 기가 막히게 맞춘 게 있어서 내 마음속의 동요가 심하게 일어났다. 내가 조금 의심하게 되는 부분은 자꾸 뭘 빌래.. 자꾸 기도하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본인한테 부적을 쓰라거나 기도를 하란 말은 하지 않는다.


그러더니 갑자기 “시아버지 돌아가시지 않았어요?”라고 한다. 멀쩡히 건강하게 살아계신데..


내가 살아계신데요.. 그랬더니 “남편이 고등학교 졸업하고 부모랑 떨어졌는데?” 그런다. 이 부분은 또 맞다. 남편은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유학길에 올랐다.


 이 무당집을 다녀오고 제일 찝찝한 부분은 내 팔자엔 자식이 없다는 것이다. 아들놈이 하나 있는데 말이다. 어떻게 아들이 있는지 오히려 신기하다고 한다. 남편 얘기까진 그러려니 했는데 어린 아들놈 얘기가 나오면서 나는 심하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내 마음속의 불안감을 무당은 잘 알았나 보다. 그러면서 2020년에 남편집에 초상이 난단다.


"혹시..... 그게 남편도 해당되나요?"

"아니라고 말 못 하지."

"돈 많이 벌었네. 모은 건 없지만. 어차피 나갈 거 기도에나 써."


그러면서 자기한테 부적 하란 말은 하지 않는다.


"2020년에 남편이 교통사고 날 거야. 피할 수 없네. 상대가 크게 다치던 남편이 다치던 병원신세를 오래 지겠어."


이쯤 되니 온 몸에 힘이 빠지고 정신이 몽롱했다. 난 그저 웃으며 네네 하고 나와 버렸다. 그러곤 한 편으론 잊어버릴까 노트에 빼곡히 적었다.


1. 나는 두 집 살림. 나머지 한 명은 누구니? 기대해야 하는지 고민이다.

2. 남편의 교통사고.

3. 2020-2021년 남편 쪽 초상

4. 2021년 우리 부부 이혼


사실 내가 간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해외로 또 옮길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옮긴다, 만다라는 말 대신 '가도 좋고 안 가고 된다'라는 애매한 말을 했다. 그리고 또 나의 '진로'가 걱정이었다. 이 나이에 무슨 진로를 걱정하냐고 하겠지만, 나도 마흔 넘어하고 싶은 일이 있고, 그것이 경제적 독립으로 연결되길 바랐다. 하지만 황당하게도 무당은 해결책을 주지 않고 정말 신뢰가지 않는 질문을 했다.


"지금 하는 일이 뭐야?"

"가르치는 일을 합니다.."

"응, 괜찮아. 쭉 해."


그렇게 아무 해결책 없이 10만 원을 날렸다.



한 달간 달콤 쌉싸름한 한국에서의 한 달을 보내고 말레이시아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새로 장만한 집을 정리했다. 아이는 2학년을 시작하였고, 나는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난 한국에서 사 온 여러 개의 다이어리에 2020년의 계획을 하나하나 적었다. 그리고 하나씩 실천에 옮기고 있다. 세운 계획들이 너무나 절실해서인지, 준비를 철저히 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가 하고 있는 영어수업도 잘 되고 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는 기분이다.


그 무당집을 나오곤 이틀간 잠을 자지 못했다. 12월 말에 악담이란 악담은 다 들으니 설마 하다가도 '진짜면 어떡하지?' 란 생각이 앞섰다. 며칠 후, 너무나 찝찝한 나머지 또 다른 철학관을 찾았다. 지인을 통해 사주 보는 곳을 갔고, 무속인과 마찬가지로 나의 과거에 대해 몇 개를 맞추며 미래를 아주 좋게 점치길래 이것을 믿겠노라 마음먹고 돌아왔다.


내가 새해에 세운 계획 중에 하나라면, 이젠 사주 같은 건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나의 미래가 정해져 있다면 나는 그것을 더 행복하게, 알차게 보내기 위해 나 스스로가 노력할 것이다.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다고 했다. 남편과 살면 답답하지 않으냐고... 연애까지 거의 20년을 만났다. 답답하지 않으면 그것이 이상하지 않겠는가. 이젠 새해 운세보다는 내가 새로 산 아주 앙증맞은 2020년 다이어리를 믿어 보기로 했다.











Photo by Jen Theodor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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