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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미 Jun 26. 2020

백수 청산한 남편, 난 가정주부가 될 줄 알았다

내가 원했던 나는 내가 아니었다

10년 동안 가장으로 살았다. 공부하는 남편도 돌보고, 태어난 아기도 돌보고, 심한 스트레스로 왼쪽 팔이 찌릿찌릿 마비가 오는 느낌을 받으면서 일했다. 어깨는 항상 돌덩이를 얹어 놓은 마냥 무거웠고, 이 모든 것을 남편 탓으로 돌렸다.


모든 사람들이 한심해하는 '10시에 커피숍에 모여있는 아줌마들'.. 내가 가장 부러워했던 사람들이며 하고 싶던 일이었다. 아침에 아이를 학교 보내고 삼삼오오 짝지어 커피숍에 앉아 간단한 샌드위치와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상상을 10년간 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나도 10년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날이 왔다.


아이를 아침 일찍 학교에 데려다주고 우리는 무리 지어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간단한 아침을 먹고 후식으로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커피숍에서 수다를 떨었다. 아이의 학업을 걱정하고 과외선생님을 찾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나도 드디어 평범한 엄마가 된 것 같았다. 학원에 대해 의논하며 이 학원이 좋더라, 저 학원은 선생님이 나이가 너무 많더라, 자주 바뀌더라, 등등 학원 평을 하는 내가 우습기까지 했다.


난 10년 동안 영어 선생님으로 일했다. 남편이 직장만 가진다면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만두리라 마음먹었었다. 운이 좋아 가르치는 아이들이 대부분 좋은 성적을 받았고, 좋은 대학을 갔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도 당연히 있길 마련이었다. 미라클을 원하는 엄마들, 정중함을 가장한 무리한 요구, 난 지쳐있었다. 미쳐버리기 일보직전에 남편은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난 떠났다.


내가 10년이나 한 곳에서 일했으니 당연히 나와 헤어지기 싫어하는 학생도 있었다. 난 그중에서 나와 가장 잘 맞고, 공부에 열정이 있는 아이들만 몇 명 데리고 온라인 수업을 시작했다. 생각보다 괜찮았다. 벌이도 괜찮았지만, 아이들에게 집중할 수 있고 아직은 내가 쓸모 있는 사람 같았다.



 

2019년 9월, 처음으로 브런치라는 곳을 알았다. 한 번에 통과했고, 첫 글이 다음에 소개되면서 조회수가 10,000이 넘었었다. 극도로 흥분했고, 새로운 재능(?)의 발견으로 난 이미 반 작가가 되어 있었다. 이대로 가면 난 책을 써서 돈을 버는 작가가 될 것 같았다. '그래 이제야 내가 좋아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매일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글을 썼다. 꽤 많은 글들이 다음에 소개되었고, 이참에 직업을 아예 작가로 바꿔버릴까 키득키득 웃으며 즐거운 나날을 3개월 정도 보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회수에 연연하게 되었고, 제목에 신경 쓰게 되었으며, 남들과 비교하는 나를 발견했다. 시작점은 나보다 느리지만 출간 제의를 받은 작가님들, 무던히 노력해서 출간한 작가님들, 계속 비교하다 보니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 보다 싶었다. 난 좋아하는 게 있으면 거침없이 시작하지만 흥미가 사라지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선다. 한마디로 쉽게 시작하고 빨리 그만둔다. 나의 성격답게 글이란 그냥 취미로 가끔 써야겠다 생각하고 브런치에 올리는 글은 뜸하게 되었다. 하지만 가장 큰 고민은 10%남짓한 인세에도 행복할 만큼 글쓰기를 무작정 좋아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베스트셀러 작가님들이야 다르지만, 죽어라 글 쓰고 300만 원 벌면 억울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만한 재능도 없다는 것을 브런치 시작하고 6개월이나 지나서 깨달았다.



블로그를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한지 3개월째다. 왜 시작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저 코로나 때문에 거의 감금상태였기 때문에 무언가라도 해야 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답답해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 브런치에 글을 쓸 수도 있었겠지만, 놀랍게도 하루하루가 아무 일이 없었다. 난 아무 생각 없고, 책을 읽어도 쓸 내용이 떠오르지 않았다. 더구나 글로 돈을 버는 건 포기했기 때문에 브런치에 흥미가 사라진 것 같았다. 대신, 그동안 내가 해오던 영어에 대한 자료를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다. 정보성 글이었지만 반응이 나름 괜찮았다.


난 인정받고 싶었고, 내 경력을 살려 그저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을 블로그에 올렸다. 그러다 스터디 모임을 시작하게 되고, 수업 문의가 폭발적으로 오고, 난 지금 바빠 죽기 일보직전이다.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의 친구에 친구까지 연락이 왔다. 내 이력을 알고 싶어 하는 엄마들에겐 블로그 링크를 보내준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난 7월 말까지 정신없이 바쁠 예정이다.


남편을 많이 원망했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건 알았지만, 가끔은 집에 있는 남편이 부러웠고, 머리라도 쥐어뜯고 싶은 날이 많았다. 불안증이 온 적도 있었고, 불면증이 온 적도 있었다. 드렁드렁 코 골며 자는 남편이 미친 듯이 미운 날도 있었다.


그런데,


그토록 싫어했던 일을, 그만두고 다시는 건들지 않겠다던 일을, 나는 어느 때보다 미친 듯이 하고 있다. 거기다 즐겁기까지 하다.


이쯤 되니 드는 생각이 있다.

'과연 그동안 힘들었던 게 남편 때문이었을까?' 난 오랫동안 혼자 일을 하면 어떨까 생각했었다. 작은 사업이지만 나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꿈꿨었다. 그런데 용기는 없었다. 그러다 코로나로 난 반 강제적으로 일을 시작했고, 더 크게 벌였다. 세상에 살면서 또 이렇게 재밌는 일이 있을까 싶다. 하루 종일 자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다.


같이 일하는 내 짝꿍 파트너가 있다. 그녀가 그랬다.

"이건 그냥 우리 성격인 거야, 남편이 백만장자여도 우리는 일할 팔자야."

그랬나 보다. 몇 달 쉬엄쉬엄 일하며 글도 쓰고, 책도 읽다 보니 난 내가 원하는 걸 찾은 것이다. 솔직히 아주 바쁠 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 정도로 난 생각할 틈도 없었고,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가끔 아무 생각 없이 소처럼 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을 돌아볼 시간도, 가족과 보낼 여유도 없이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팡! 하고 터지면 갑자기 직장을 때려치운다던지, 우울증이 온다.


이런 경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건 어떨까 싶다. 오롯이 나 혼자만의 시간, 단 3일이라도 나만의 시간, 아이는 친정에 보내던 남편에게 통사정을 하던, 아내에게 욕을 먹던, 가족들에게 핀잔을 먹던, 이기적이더라도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천천히 생각해본다.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일까?


난 조금 오래 걸린 것 같다. 내가 남편의 나라, 말레이시아로 정착하고 거의 1년 동안 방황했다. 그동안 별 짓을 다해봤다. 1:1 컨설팅도 받아보고, 유명한 사람들의 유튜브도 보고, 전자책도 몇 권 사보고, 책도 읽어보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 모든 것이 내 발전을 위한 일들이었다.


난 내가 발전하는 걸 원했던 것이다. 백수 남편이 출근하는 순간, 남편 와이셔츠 다리는 가정주부를 하겠다고 다짐했었다. 요리를 배우고, 집을 예쁘게 꾸미고 기가 막힌 도시락을 싸서 아이 손에 들려 보낼리라 마음먹었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난 똑같이 내 일에 미쳐있고, 요리는 못하고, 여전히 스트레스받고 있다.


한 가지 인생의 방향성은 찾았다.

난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고, 일한 만큼 돈 벌어야 하는 사람이고, 여전히 글 쓰는 건 좋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와이셔츠 다리다 포기했고, 요리는 가끔, 아니 자주 시켜먹는다. 다행히 남편은 불만이 없고, 내가 일을 한다는 거에 오히려 고맙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동안 브런치에 백수 남편 욕 엄청나게 한 거 조금(아주 조금) 후회한다. 난 쉴 수 없었다. 소처럼 끊임없이 일해야만 했었다. 모든 원망이 남편에게 갔고, 내가 좋아해서 한 결혼을 후회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아무도 시키지 않는데 또다시 전력질주하고 있다. 이게 그냥 나였던 것이다. 요즘도 똑같이 스트레스받고, 밤에 맥주를 한 잔 마셔야 잠에 든다. 그런데 받아들이는 마음이 다르다. 내가 좋아서 벌인 일이다. 이젠 원망 없이 내 일에 최선을 다 해보려 한다.


언젠가 다시 글쓰기에 미칠 날을 기대하며.. 아직 글쓰기에 미련을 버리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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